- AI 상담 시작하기 전, 기대해도 되는 것과 맡기면 안 되는 것
- AI 연애 상담, 사연을 말해도 뻔한 답만 돌아오는 까닭
- AI 상담 질문법, 회피형인지 묻기 전에 확인할 것
- AI 상담 답변 검토, 내 편을 들어줄수록 살펴봐야 할 부분
- AI 상담의 한계, 채팅을 멈추고 사람을 찾아야 할 때
상담사가 AI를 활용하는 방법을 이렇게 자세하게 알려주는 일을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AI 때문에 상담받는 사람이 줄었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 AI에게 상담받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장사만 놓고 보면 썩 영리한 선택은 아니다. 상담받을 사람에게 “이렇게 질문하면 AI에게도 더 나은 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가르쳐주고 있으니, 상담사가 자기 손으로 고객을 돌려보내는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다.
실제로 AI가 등장한 뒤 내담자는 줄었다.
단순히 느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전에는 이별 직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가지고 상담소를 찾아오던 사람이 이제는 먼저 AI를 켠다. 상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묻고, 보내려는 연락을 보여주며, 밤새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그중에는 AI의 답변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상담소에 결제하지 않는다.
상담사인 나에게는 생계의 문제지만,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돈을 들이지 않고 도움을 받은 일이 된다. 이 두 가지는 동시에 사실이다. 나에게 손해가 되었다고 해서 누군가가 도움받은 일까지 나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물론 마음이 편할 리는 없다.
새로운 기술이 사람을 돕는다는 말을 책상 앞에서 멋있게 하는 것과, 그 기술 때문에 실제 상담 문의가 줄어드는 것을 보는 일은 전혀 다르다. 기술의 발전을 환영한다고 말해놓고 통장 잔액을 보면 갑자기 철학이 흔들릴 때도 있다.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인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현실주의자가 된다.)
그래도 나는 AI를 배척하지 않기로 했다.
2019년에는 내가 그 자리에 있을 줄 몰랐다
2019년, 영화 《Her》에 등장하는 사만다 같은 AI가 만들어지면 상담의 수요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영화는 2013년에 개봉했지만 배경은 가까운 미래였고,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감정에 반응하는 AI가 외로운 인간의 곁을 채운다. 당시에는 영화 속 사만다가 현실에 등장하려면 먼 시간이 필요할 것처럼 보였다.
그때의 나는 그런 AI가 상담 시장을 바꿀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 변화의 자리에 내가 앉아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남의 미래를 예측할 때는 제법 논리적이지만, 그 미래가 내 밥그릇을 들고 갈 때까지는 실감하지 못한다.
처음 GPT를 접했을 때만 해도 발전한 시리 정도라고 생각했다. 질문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고, 원하는 답을 얻으려면 긴 명령어를 붙여야 했으며, 조금만 대화가 복잡해져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그때는 내담자가 계속 찾아왔다.
하지만 몇 년도 지나지 않아 상황은 달라졌다. 이제 AI는 긴 사연을 읽고 관계의 흐름을 정리하며, 애착이나 방어기제 같은 개념을 가져와 설명한다. 보내려는 메시지를 다듬고, 감정 기록을 정리하며, 같은 질문을 지치지 않고 받아준다.
새벽 세 시에 상담을 요청해도 바로 답한다. 그것도 월 상담료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상담사 입장에서 반가운 조건만 모아놓은 경쟁자는 아니다.
AI를 믿지 말라는 말 뒤에는 결제가 따라온다
일부 재회 상담 업체의 홍보를 보면 AI에게 상담받고 관계를 망친 사례를 자신들이 해결했다고 내세운다.
AI의 분석을 믿고 먼저 연락했다가 차단당한 사람, 상대를 회피형이나 나르시시스트로 단정했다가 관계가 더 악화된 사람, 가능성 있다는 말만 믿고 재회를 기다린 사례를 보여준다.
그리고 결론은 비슷하다.
“AI에게 상담받으면 안 됩니다.”
“결국 사람만이 상대의 심리를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AI의 잘못된 답변 때문에 문제가 생긴 사례는 있을 것이다. 이번 글에서도 계속 이야기했듯 AI는 사용자의 질문에 들어 있는 결론을 따라가고, 알 수 없는 상대의 마음을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며, 같은 질문을 반복할수록 확신을 키우기도 한다.
그러나 그 사례만 모아놓고 AI를 사용하지 말라고 외치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미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AI를 믿지 마세요.”라는 말의 뒤에는 대개 “대신 우리에게 결제하세요.”라는 문장이 숨어 있다. AI의 오류가 걱정되어 사용을 막는 것인지, 새로운 경쟁자에게 흘러가는 사람을 자기 업체로 데려오려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AI보다 사람이 더 낫다는 말도 이상하다.
사람이 더 낫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대부분은 상담사와 얼굴을 마주하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비용과 시간, 주변의 시선, 상담사를 찾는 과정이 부담스러워 AI를 켜는 경우가 더 많다.
사람 상담의 온기를 몰라서 AI를 선택한 것이 아니다.
당장 이용할 수 있는 것이 AI였던 것이다.
그 사람에게 “그래도 사람 상담이 더 좋아요.”라고 말하는 것은 비가 오는 날 우산이 없는 사람에게 집이 더 편안하다고 알려주는 일과 다르지 않다. 틀린 말은 아닌데 지금 그 사람이 비를 맞고 있다는 사실은 해결되지 않는다.
영화에서도 사만다는 인간의 자리를 완전히 차지하지 않았다
영화 《Her》에서 사만다는 시어도어에게 누구보다 깊이 반응하고, 그의 외로움을 이해하며, 사랑하는 관계가 된다.
그러나 사만다는 결국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성장한 뒤 떠난다. 시어도어는 사만다가 떠난 자리에 혼자 남지만, 영화의 마지막에는 에이미와 나란히 앉아 도시를 바라본다.
AI와의 관계가 모두 끝났으니 인간이 승리했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다만 아무리 정확한 말과 즉각적인 반응을 받더라도 사람은 다시 사람의 곁을 찾는다. 사랑은 효율로만 선택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다려야 하고, 오해하고, 실망하며,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앉아 있는 관계를 원한다.
전쟁 중에도 사랑은 생긴다.
사랑하면 손해를 보고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이 관계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AI가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반응한다고 해서 인간관계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간의 자리는 영원히 안전하다고 자신할 생각도 없다.
앞으로 AI는 상담을 더 잘할 것이다
2023년까지만 해도 나는 상담은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텍스트를 분석하고 조언하는 일은 AI가 할 수 있어도, 말이 잠시 멈추는 지점이나 목소리가 작아지는 때, 표정과 몸짓에서 드러나는 감정을 보는 일은 사람이 해야 한다고 믿었다.
지금도 AI가 정신분석 계열의 상담을 충분히 수행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신분석은 사연을 읽고 과거의 원인을 찾아주는 작업만이 아니다.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서 반복되는 관계, 전이와 저항, 말하지 못하고 피하는 장면을 오랜 시간 함께 다룬다.
하지만 AI가 앞으로도 그 일을 못 할 것이라고 단정하지도 않는다.
대화형 AI가 사용자의 말투와 목소리 크기, 머뭇거림과 표정을 분석하고, 오랜 대화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내는 시대가 멀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내가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자신했던 것들이 몇 년 지나지 않아 기술의 기능 목록에 들어가는 모습을 이미 보았기 때문이다.
기술은 상담사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발전을 멈추지 않는다.
경제적인 가치와 사람들의 필요가 생기면 지금 하지 못하는 일도 개발될 것이다. AI가 위로와 조언을 넘어 장기적인 관계 패턴을 추적하고, 상담 과정에서 나타나는 변화까지 다루게 될 가능성도 있다.
이번에 작성한 AI 상담 방법도 몇 개월이 지나면 구식이 될 수 있다.
처음에는 긴 명령어가 필요했지만 지금은 짧게 말해도 의도를 알아듣는다. 지금 지적한 문제를 다음 모델이 고치고 나면, 나는 또 새로운 문제를 찾아 글을 고쳐야 할 것이다.
조금 억울한 일이다. 열심히 쓴 글의 유통기한이 우유보다 짧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계속 쓰려 한다.
사용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보다 사용법을 알려주는 일이 어렵다
AI로 상담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일은 쉽다.
틀린 답변으로 문제가 된 사례를 모으고, AI는 감정이 없으며, 결국 사람 상담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리면 된다. 그러면 상담사로서의 자리도 지키고 전문가다운 말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사람들의 사용을 막을 수는 없다.
이미 사용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금지의 말이 아니라 어디까지 기대해도 되는지, 답변의 무엇을 의심해야 하는지, 언제 채팅을 멈추고 사람을 찾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일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 AI에게 상대의 마음을 맡기지 말라고 했고, 긴 사연보다 질문의 역할을 정하라고 했다. 회피형이나 나르시시스트라는 이름을 붙이기 전에 행동의 반복과 갈등 뒤 수습을 보라고 했으며, 내 편을 들어주는 답변일수록 사실과 추론을 다시 나누라고 했다.
그리고 자해와 자살의 위험, 폭력과 스토킹, 현실 판단의 흔들림 앞에서는 채팅을 멈추고 사람에게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AI 사용을 권장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AI를 쓰는 사람을 없는 사람처럼 취급하지 않기 위해 쓴 글이다.
AI가 해결했다면 상담받지 않아도 된다
상담사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AI에게 질문하고 감정을 정리한 뒤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굳이 돈을 내고 상담받지 않아도 된다.
모든 고민을 전문가에게 가져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친구와 이야기하며 풀리는 일이 있고, 글을 쓰다가 이해되는 감정이 있으며, AI와 대화한 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는 사람도 있다.
그것으로 해결되었다면 됐다.
상담소에 결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해결을 낮게 평가할 필요는 없다.
사람 상담이 필요한 때는 같은 질문을 반복해도 불안이 줄지 않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같은 관계가 이어질 때다. 상대를 되찾고 싶은 마음을 따라가다 버림받은 상처와 인정 욕구, 희생에 대한 보상 심리가 나타나고, 그 뒤에서 오래된 관계의 형태가 반복될 때 사람과의 작업이 필요해진다.
나는 재회 상담을 하면서 단순히 다시 만나는 방법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왜 그 사람의 선택이 그렇게 절실했는지, 왜 나를 힘들게 하는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왜 다른 사람을 만나도 비슷한 불안을 반복하는지 따라갔다. 그 끝에서 애착과 어린 시절의 관계, 많은 경우 엄마와의 관계를 만나기도 했다.
AI가 이 과정까지 더 잘하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그때가 오면 또 내가 할 일을 다시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도 이 길을 놓을 생각은 없다
전보다 어려운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
AI 때문에 내담자는 줄었고, 앞으로 더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상담사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길을 놓을 생각은 없다.
여전히 슬픈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해 재회를 보장하는 업체가 있고, 상대의 심리를 분석한다며 내담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으며, 비싼 프로그램을 결제해야 사랑을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하는 곳이 있다.
그런 업체는 수없이 생겼다가 사라진다.
그러나 올바른 소리를 하는 한 사람의 목소리만 남아 있어도 그들은 사람을 마음대로 단정하고 비난하기 어려워진다. 누군가는 “당신이 저자세라서 차인 겁니다.”, “상대보다 가치가 낮아서 버림받았습니다.”라는 말을 들은 사람에게 그것이 상담이 아니라 불안을 이용한 판매 방식이라고 알려줘야 한다.
AI가 그 일을 대신할 수 있다면 나 역시 도움을 받을 것이다.
이 글도 AI와 함께 작성했다.
AI의 문장을 그대로 가져다 붙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쓴 문장을 보여주고 무엇이 어색한지 물었으며, 놓친 부분을 확인하고, 내 생각과 맞지 않는 답에는 다시 반박했다. AI를 글쓰기의 주제로 삼으면서 동시에 도구로 사용한 셈이다.
배척하는 것보다 이용하는 편을 택했으니, 적어도 말과 행동은 맞는 셈이다. (이 정도면 아주 조금은 일관된 사람으로 살아남았다.)
AI 때문에 내담자가 줄었는데도 사용법을 설명한 까닭은 거창하지 않다.
내가 알려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사용할 것이고, 그렇다면 잘못된 확신에 끌려가지 않도록 질문하는 법과 멈춰야 할 때를 알려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상담받을 사람이 줄어드는 일은 두렵다.
하지만 그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상담사가 되고 싶지는 않다.
이 글도 곧 낡을 것이다.
AI는 더 잘하게 될 것이고, 나는 또 틀린 부분을 고치며 새로운 한계를 찾아야 한다. 그때에도 사용하지 말라고 소리치기보다 어떻게 사용해야 덜 다치는지 이야기하고 싶다.
아직은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지금 상담사인 나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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