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재회상담은 왜 내담자의 독해력부터 볼까?

이별을 겪은 사람은 평소처럼 글을 읽기 어렵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하던 일에도 집중하지 못한다. 상대가 남긴 짧은 말 하나를 두고 여러 뜻을 떠올리다가 하루가 지나기도 한다. 그래서 상담을 찾는다. 혼자서는 생각을 정리하기 어려우니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 재회상담에서는 도움을 주기 전에 내담자의 독해력부터 확인하려 한다. 긴 칼럼을 끝까지 읽지 못하는 사람은 상담을 받아도 소용없다고 말하고, 여러 글을 반복해서 읽어 이론을 익혀야 상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이상한 순서가 숨어 있다. 마음이 무너져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는 사람이 상담을 찾았는데, 상담받을 자격을 얻으려면 먼저 혼자서 복잡한 이론을 이해해야 한다. 도움이 필요한 상태가 오히려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상담을 받기 전에 치르는 시험

세무사에게 세법을 물으러 갔는데 관련 서적을 열 번 읽고 오라는 말을 듣는다면 이상하게 느낄 것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치료 원리를 공부해 오지 않으면 진료가 소용없다고 말해도 마찬가지다.

전문 서비스를 찾는 이유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확인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혼자서는 알기 어려운 것을 설명받기 위해서다.

그런데 재회상담에서는 이 순서가 자주 뒤집힌다. 내담자가 자신의 사연을 설명하기 전에 프레임과 신뢰도, 내적 프레임과 공백기 같은 용어를 익혀야 한다. 상담 내용을 잘 받아들이려면 기본 이론을 숙지해야 하고, 이해가 부족하면 지침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한다.

그때부터 내담자는 고객도, 상담을 받는 사람도 아닌 학생이 된다. 상담자는 설명할 책임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이해도를 채점하는 사람이 된다. 내담자의 사연은 상담의 출발점이 아니라, 이미 정해진 이론을 얼마나 잘 적용했는지 확인하는 문제가 된다.

어려운 설명은 전문성의 증거가 아니다

낯선 용어가 많으면 체계적인 이론처럼 느껴질 수 있다. 평소 표현하기 어려웠던 감정에 이름이 붙으면 답답함이 조금 가라앉기도 한다. 상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던 사람에게 몇 개의 용어로 정리된 설명은 반갑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름을 붙였다고 원인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내적 프레임이 낮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더라도, 그것이 불안정한 애착을 말하는지,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뜻인지, 상대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의미인지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 여러 뜻이 섞인 용어는 어떤 상황에도 갖다 붙일 수 있다.

설명이 모호할수록 질문이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전문가는 그 질문을 평범한 말로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내담자가 알아듣지 못했다면 어디에서 설명이 끊겼는지 살펴야 한다.

어려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상대의 독해력부터 의심하는 것은 전문성이 아니라 설명의 책임을 피하는 방법에 가깝다.

이해하지 못한 것과 동의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상담을 받다 보면 분석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생길 수 있다. 상대를 오래 지켜본 사람은 내담자이고, 상담자는 내담자가 전달한 사연을 토대로 판단한다. 아무리 경험이 많은 상담자라도 한 번의 문서나 짧은 통화만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모두 알 수는 없다.

내담자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지침문자를 보내면 상대가 더 화를 내지 않을까요. 지금 연락을 끊으면 오히려 관계가 끝나지 않을까요. 상담에서 설명한 상대의 성격이 제가 아는 모습과 다른 것 같습니다.

이런 질문은 상담을 방해하지 않는다. 지침이 불러올 결과를 미리 살피고, 상담자의 판단에 빠진 정보가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질문에 답하는 대신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면 대화는 끝난다.

내담자는 의견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이해력이 부족한 사람이 된다. 지침을 걱정하면 불안에 휘둘리는 사람이 되고, 상담자의 판단을 의심하면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사람이 된다. 무엇을 질문하든 질문한 이유가 내담자의 결함으로 돌아온다.

이런 관계에서는 이해한다는 말의 뜻도 달라진다. 내용을 알아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상담자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질문이 사라지면 상담자의 책임도 사라진다

지침을 따랐는데 기대했던 반응이 오지 않을 수 있다. 상대가 답하지 않거나, 화를 내거나, 연락을 차단할 수도 있다. 이때 상담자의 예측이 왜 빗나갔는지 검토해야 한다. 처음부터 정보가 부족했는지, 상대의 성향을 잘못 판단했는지, 지침이 상황에 맞지 않았는지 살펴야 한다.

그러나 내담자의 이해도가 먼저 평가되는 구조에서는 다른 결론이 나온다. 내담자가 지침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거나, 공백기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거나, 불안한 마음으로 행동해 효과를 떨어뜨렸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물론 내담자가 상담 내용과 다르게 행동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모든 실패를 내담자의 실행력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상담자의 판단과 지침에도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결과만 상담자의 실력이 되고 좋지 않은 결과는 내담자의 부족함이 된다면, 상담자는 어떤 결과에도 책임질 필요가 없다. 이론은 언제나 옳고 사람만 번번이 틀린 체계가 완성된다. 그런 체계에서 독해력은 글을 읽는 능력이 아니라, 실패의 책임을 내담자에게 돌리는 데 쓰이는 말이 된다.

상담은 내담자를 작아지게 해서는 안 된다

상담을 받은 뒤 내담자가 모든 일을 상담자의 용어로 판단하기 시작한다면 잠시 멈춰볼 필요가 있다.

상대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내적 프레임이 낮아진 것인지 걱정하고, 사과하고 싶어도 자신의 가치가 떨어질까 두려워한다면 상담은 이미 관계를 이해하는 도구를 넘어선 것이다.

친구의 조언을 들으면서도 그 친구는 이론을 모르기 때문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자신의 느낌보다 칼럼의 설명을 믿고, 상담자의 확인 없이는 작은 행동도 결정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상담을 받기 전보다 자기 판단을 믿기 어려워진 것이다.

상담은 이런 상태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내담자가 상담자의 언어에 익숙해지는 것보다 자기 감정과 생각을 다시 알아차리는 일이 먼저다. 상담자의 해석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을 살펴본 뒤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상담을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복잡한 이론보다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해 보면 된다. 질문했을 때 질문의 내용에 답하는지,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왔을 때 자신의 판단도 다시 살피는지, 지침을 거절하거나 다른 의견을 말해도 내담자를 낮추지 않는지 보면 된다.

여기에 답하지 않고 독해력과 이해도만 거론한다면 문제는 내담자의 읽기 능력이 아니다.

상담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이해되도록 설명해야 한다. 내담자는 이론을 외우러 온 학생이 아니다. 불안한 마음을 맡기러 온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시험이 아니라, 질문해도 작아지지 않는 자리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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