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한 시, 진동 소리와 함께 화면에 짧은 알림이 뜬다.
“자니?”
헤어지자고 모질게 돌아섰던 전 연인에게서 온 메시지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이 문자의 의미를 해독하기 위해 포털 사이트에 검색어를 입력하고 이내 재회 상담 업체의 칼럼을 발견한다.
그들은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중모션(Double Motion)’이라는 그럴싸한 전문 용어로 명쾌하게 진단한다.
이별을 통보해 놓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다가왔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상태. 상대방의 ‘프레임’이 흔들리고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이니, 섣불리 매달리지 말고 지침을 지키며 조금만 더 버티면 완벽한 재회를 이룰 수 있다는 달콤한 해설이 이어진다.
절망의 늪에 빠져 있던 사람에게 이 단어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처럼 느껴진다.
양가감정이라는 평범하고 보편적인 진실
인간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니다. ‘사랑함’과 ‘헤어짐’이라는 두 가지 흑백 논리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수개월, 혹은 수년을 곁을 내어주며 살을 맞대던 사람과 인연을 끊어내는 일은 이별을 통보한 쪽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와 상실감을 동반한다.
단호하게 돌아섰더라도 불현듯 밀려오는 죄책감, 익숙함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공허함, 혹은 단순히 늦은 밤의 외로움 때문에 감정이 파도를 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그저 자연스러운 ‘양가감정(Ambivalence)’이라고 부른다.
헤어진 연인이 술에 취해 전화를 걸거나 애매한 안부 문자를 보내는 것은 당신과 다시 연애라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지겠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이별의 후폭풍이라는 감정의 과도기를 지나며 겪는 일시적인 혼란일 뿐이다.
하지만 재회 업체들은 이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나약함을 ‘이중모션’이라는 교묘한 단어로 포장해 특별한 신호로 둔갑시킨다. 이것이 당신의 매력(프레임) 때문이라고 치켜세우며, 무너진 자존감에 헛된 뽕을 놓는다.
간헐적 강화가 만드는 도박 중독
이중모션이라는 진단표를 받아 든 내담자는 그 순간부터 지독한 희망고문의 늪에 빠진다.
심리학자 B.F. 스키너(B. F. Skinner)의 쥐 실험을 떠올려보자. 지렛대를 누를 때마다 일정한 규칙 없이 어떨 때는 먹이가 나오고 어떨 때는 빈껍데기만 나오게 (간헐적 강화, Intermittent Reinforcement) 세팅해 두면, 쥐는 먹이가 매번 나올 때보다 훨씬 더 미친 듯이 지렛대에 집착하게 된다.
언제 보상이 주어질지 모른다는 맹목적인 기대감 때문이다.
전 연인의 애매한 행동은 바로 이 간헐적 강화의 완벽한 미끼가 된다. 어제는 다정하게 카톡을 받아주다가 오늘은 읽고 무시한다. 이 알 수 없는 패턴 속에서 당신은 피가 마른다.
하지만 이중모션이라는 단어에 세뇌된 뇌는 이 고통을 ‘승리가 가까워졌다는 징조’로 왜곡해서 받아들인다.
상대의 감정이 요동치고 있으니, 내가 여기서 흔들리지 않고 업체의 지침대로 쿨한 척을 유지하면 결국 대박(재회)을 터뜨릴 수 있을 거라는 도박사의 오류에 빠지는 거다.
확증 편향의 감옥
이 덫에 걸리면 모든 현실 감각이 마비된다. 확증 편향이 발동하여 자신이 믿고 싶은 대로 세상을 해석하기 시작한다.
상대방이 단호하고 차갑게 선을 그으면 “내 프레임에 눌려 억지로 센 척하며 방어기제를 치는 것”이라고 합리화한다.
반대로 상대가 미안함에 밥이나 한 끼 먹자고 다정하게 나오면 “마침내 내 가치를 깨닫고 굴복한 것”이라며 환호한다. 무슨 짓을 해도 결론은 ‘상대는 나를 잊지 못했다’로 귀결된다.
재회 업체는 이 무적의 논리로 무장한 채, 상황이 풀리지 않으면 당신이 지침을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해 프레임 관리에 실패한 탓이라며 교묘하게 책임을 전가한다.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퍼즐의 정답을 찾기 위해, 내담자는 수십, 수백만 원을 갖다 바치며 이별이라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 소중한 애도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허비한다.
화면 위로 여전히 숫자 1이 지워지지 않은, 섣불리 답장하지 못한 채 남겨둔 메시지 창을 가만히 내려다본다.
상대의 사소한 변덕과 외로움의 찌꺼기를 이중모션이라는 화려한 포장지로 감싸 안은 채, 기어코 상대가 나의 가치를 깨닫고 무릎 꿇을 날이 머지않았다고 믿는 그 눈물겨운 정신 승리는 참으로 처절하다.
하지만 그렇게 그 알량한 단어에 기대어 피 말리는 눈치 게임을 버텨내고 한 줌의 요행 같은 재회를 이루어냈다고 치자.
언제 다시 차갑게 식어버릴지 모르는 상대의 모호한 감정의 파도 위에서, 의미 없는 텍스트 하나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매일 밤 그 마음을 분석하고 통제해야만 간신히 유지되는 그 관계를, 당신은 과연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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