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화사하게 쏟아지는 주말 오후, 연남동의 통유리 디저트 카페. 달콤한 케이크를 앞에 두고 당신은 어제부터 벼르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전날 그의 친구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그가 당신의 직장을 은근히 깎아내리며 웃음거리로 삼았던 일이 못내 상처가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낄낄대며 받아칠 때 그도 함께 웃었다. 그 웃음이 밤새 귓속에서 맴돌았다.

  • “어제 오빠 친구들 앞에서 내 회사 얘기 농담처럼 한 건 좀 서운했어. 다음부터는 안 그랬으면 좋겠어.”

목소리가 떨릴까 봐 며칠을 다듬은 말이다. 당신은 이 대화가 잘 풀리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사과 한마디면 되는 거니까. “미안, 생각이 짧았다” 그 한마디면 이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는 케이크를 찌르던 포크를 내려놓고 미간을 찌푸린다.

  • “아니, 분위기 띄우려고 가볍게 한 농담이잖아. 넌 왜 그렇게 매사를 다큐로 받아들여? 진짜 예민하다.”

잘못을 지적한 건 당신인데, 순식간에 공기가 뒤바뀐다. 사과를 기대했던 당신에게 ‘예민함’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상처받은 마음을 말했을 뿐인데, 졸지에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별것도 아닌 일에 죽자고 달려드는 피곤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입술이 달싹거린다. 그 뒤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

“넌 예민해”, 그 한마디면 끝이다

내현성 나르시시스트가 갈등 상황에서 즐겨 쓰는 수법이 있다. 상대방을 ‘유별나고 예민한 사람’으로 모는 거다. 자신의 행동이 도마 위에 오르는 걸 못 견딘다. 잘못을 인정하면 자기가 쌓아올린 고상한 자아에 금이 가니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이들이 자기 잘못을 모르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안다. 자기가 무례했다는 걸 안다. 친구들 앞에서 연인의 직장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게 잘한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누구나 안다. 문제는 그걸 알면서도 인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내가 틀렸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자기 안에서 뭔가가 무너지는 기분이 드는 거다. 그래서 대화의 방향을 슬쩍 틀어버린다.

문제의 본질인 ‘자신의 무례한 행동’은 쏙 빼고, ‘그 행동에 반응하는 당신의 감정’을 문제 삼는다.

  • “다른 사람들은 다 웃고 넘기는데 너만 유난이야.”

이 서늘한 한마디면 당신의 분노는 신경질이 된다. 논점이 바뀐다. 원래 주제는 ‘그가 당신을 공개적으로 깎아내린 것’이었는데, 어느새 ‘당신이 왜 이렇게 예민하냐’로 넘어가 있다. 가스라이팅이다.

이 수법이 교묘한 이유가 있다. 예민하다는 말은 반박이 거의 불가능하다. “나 예민하지 않아”라고 부정하면 더 예민해 보인다.

“예민한 게 아니라 네가 잘못한 거야”라고 정면으로 가려 해도, 그는 “거봐, 또 이렇게 과하게 반응하잖아”라며 되받아친다. 어떤 방향으로 가도 당신이 지게 되어 있는 구조다.

차분한 가해자와 미쳐가는 피해자

억울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내가 왜 기분이 나빴는지, 그 말이 왜 상처가 되는지 필사적으로 설명하려 애쓴다. 답답한 마음에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눈에는 억울한 눈물이 맺힌다.

반면 그는 테이블에 팔짱을 끼고 앉아,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당신을 내려다본다. 일부러 그러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나르시시스트는 의도적으로 차분해진다.

당신이 격앙될수록 자기는 더 냉정하게 굴면서, 둘 사이의 온도 차이를 벌려놓는다. 카페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이 이 장면을 슬쩍 본다고 생각해 보자.

보이는 건 뭔가. 차분한 남자 앞에서 혼자 흥분해 울먹이는 여자다. 그가 노리는 그림이 바로 이거다.

당신의 감정이 가장 흔들리는 순간, 한마디를 더 얹는다.

  • “거봐, 또 혼자 흥분해서 소리 지르지. 넌 감정 조절이 안 돼? 내가 이래서 너랑 대화하기가 싫은 거야.”

숨이 턱 막힌다. 방금 전까지 무례한 농담을 던지던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눈앞에는 ‘감정적인 연인 때문에 피곤해하는 이성적인 남자’만 앉아 있다. 화를 불러일으킨 건 그 사람인데, 당신만 미친 사람이 되어 있다.

결국 당신이 먼저 꼬리를 내린다. “미안해, 내가 너무 흥분했지…”

돌이켜보면 이상한 일이다. 공개적으로 연인을 깎아내린 사람은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고, 상처를 표현한 사람이 사과를 했다. 대화는 당신의 사과로 끝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올라온다. 그런데 뭐가 잘못된 건지 정확히 짚을 수가 없다. 그 느낌 자체가 가스라이팅이 먹혀들고 있다는 증거다.

왜곡된 거울 앞에서 나를 검열하다

이런 대화가 반복되면 당신의 내면에 이상한 습관이 생긴다.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느끼기 전에 먼저 점검하게 된다. ‘이걸 말하면 또 예민하다고 할까.’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가야 정상인가.’ ‘다른 사람이라면 상처받았을까, 아니면 나만 이상한 건가.’

자기 감정을 느끼는 데 허락이 필요해지는 거다.

분명 내 감정이 다쳤는데도, 자꾸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내가 진짜 너무 예민한가?’, ‘내가 마음이 좁아서 이 사람의 농담을 못 받아주나?’ 감정의 온도계가 고장 났다고 믿게 된 당신은, 이제 서운한 일이 생겨도 입을 꾹 닫는다. 또다시 ‘예민한 사람’ 취급을 받으며 비참해지느니, 혼자 속을 끓이고 참는 쪽을 택한다.

점점 생기를 잃고 눈치만 보는 사람이 되어간다. 친구들을 만나도 웃음이 어색하고, 뭔가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각 자체가 흐릿해진다.

자기 취향도, 자기 감정도, 자기 판단도 믿지 못하는 사람. 그가 만들어낸 당신의 모습이 바로 그거다. 그리고 그는 갈등 없이 조용해진 이 관계를 ‘우리 요즘 잘 지내지?’라고 부른다.

당신은 예민하지 않다

예민한 게 아니다. 타인을 깎아내려야 직성이 풀리는 무례한 사람의 말에 상처받는 건 정상이다. 칼에 찔려 아프다고 소리치는 사람에게 “너만 엄살이 심하다”고 말하는 쪽이 이상한 거다.

한 가지 기준이 있다. 그 사람과 대화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내가 나를 더 싫어지게 되는지를 보면 된다. 좋은 대화 뒤에는 마음이 가벼워진다. 나쁜 대화 뒤에는 자기 자신이 작아진다. 매번 대화 뒤에 자책이 따라온다면, 문제는 당신의 예민함이 아니라 그 사람이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세워 제 허물을 덮으려는 사람에게, 당신의 상처를 설명하려 애쓸 필요 없다. 그가 내미는 왜곡된 거울 속 ‘예민하고 꼬인 나’는 진짜 당신이 아니다.

그 거울을 깨면 된다. 당신의 감정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람 곁에서 억지로 웃어주는 일은, 오늘로 끝내면 된다. 일어서면 된다. 당신의 감정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람 곁에서 억지로 웃어주는 일은, 오늘로 끝내면 된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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