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 나르시시스트 가스라이팅
분명히 그의 잘못인데, 이상하게 대화가 끝나고 나면 당신이 사과를 하고 있다.
그의 쌀쌀맞은 태도에 서운함을 표현했을 뿐인데, 어느새 당신은 ‘지나치게 예민하고 피곤한 사람’이 되어 그의 기분을 풀어주고 있다.
그의 거짓말을 지적했을 뿐인데, 대화의 끝에는 당신이 ‘상상력이 풍부하고 의심이 많은 사람’이 되어 그의 신뢰를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
당신은 혼란스럽다. ‘내가 정말 예민한 걸까?’,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모든 게 내 문제일지도 몰라.’
이처럼 스스로를 향한 의심이 싹트는 순간, 당신은 이미 나르시시스트가 파놓은 교묘한 함정, ‘가스라이팅(Gaslighting)’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라는 말은 단순한 의견 차이나 갈등 상황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당신의 현실 감각을 송두리째 흔들어, 당신 스스로 자신의 판단과 감정을 불신하게 만드는 가장 대표적인 심리적 지배 기술이다.
사라진 기억, 뒤바뀐 진실
‘지수’ 씨는 연인인 ‘태훈’ 씨의 휴대폰에서 낯선 여자의 이름과 함께 하트 이모티콘이 포함된 메시지 알림을 우연히 보았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지만, 그녀는 다음 날 차분하게 대화를 시도했다. “태훈 씨, 어젯밤에 혹시…”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태훈 씨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의 말을 끊었다. “무슨 소리야? 너 잘못 봤어. 난 어제 그냥 일찍 잤는데.” 그의 너무나도 태연하고 뻔뻔한 부인에 지수 씨는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아니야, 내가 분명히 봤는데…”
그녀가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말하자, 태훈 씨는 이번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수야, 너 요즘 너무 피곤해서 헛것을 봤나 보네. 왜 그렇게 상상력이 풍부해? 그러다 병나겠다.” 그는 그녀의 의심을 그녀의 ‘컨디션 난조’와 ‘과도한 상상력’ 탓으로 돌려버렸다.
지수 씨는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이 본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자,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차갑게 굳어졌다.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됐어. 그런 사소한 걸로 사람 의심하는 네 태도가 더 문제야. 넌 너무 예민해. 그래서 내가 너랑 있으면 힘들어.”
결국 지수 씨는 그에게 사과하고 말았다. 그를 의심해서 미안하다고, 자신이 너무 예민했던 것 같다고. 그녀는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스스로 부정했다.
그 후로 그녀는 태훈 씨에게 어떤 의심이나 서운한 감정을 표현하기 전에, ‘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라고 스스로를 먼저 검열하게 되었다.
나르시시스트 가스라이팅, 당신의 현실을 훔치는 보이지 않는 손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는 1944년 영화 <가스등(Gaslight)>에서 유래했다. 영화 속 남편은 아내의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집안의 가스등 불빛을 일부러 희미하게 만들어 놓고는 아내가 “어두워진 것 같다”고 말할 때마다 “당신이 잘못 본 거야”, “당신이 예민해서 그래”라며 그녀를 정신적으로 몰아붙인다.
아내는 점차 자신의 지각 능력을 의심하게 되고, 스스로 미쳐가고 있다고 믿게 된다.
이처럼 가스라이팅은 상대방의 현실 인식 능력을 교묘하게 조작하여,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모든 행위를 의미한다. 나르시시스트들이 이 방법을 즐겨 사용하는 데에는 명확한 목적이 있다.
1.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결점이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병적으로 두려워한다. 그들의 내면에 자리한 부풀려진 자아상은 아주 작은 비판에도 쉽게 깨져버릴 만큼 연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거짓말, 외도, 무책임한 행동이 드러났을 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대신 상대방을 ‘예민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 상황을 역전시킨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네가 유별나게 반응하는 게 문제야”라는 논리로, 모든 책임의 화살을 당신에게 돌린다.
2. 관계의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다.
당신이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불신하기 시작하면, 관계의 주도권은 완벽하게 그에게 넘어간다. 이제부터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그가 결정한다. 당신의 감정은 그의 허락 없이는 타당성을 얻지 못한다.
당신이 느끼는 슬픔, 분노, 서운함은 모두 ‘당신의 예민함’ 탓이 되고, 그의 행동은 언제나 ‘정당한’ 것이 된다. 이 불평등한 구도 속에서 당신은 점점 더 무력해지고, 그의 처분에 의존하게 된다.
3. 당신의 목소리를 지우기 위해서다.
가스라이팅은 일종의 심리적 학습 과정이다. 당신은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예민한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반복하면서, 점차 입을 닫는 법을 배우게 된다.
‘어차피 말해도 소용없어’, ‘이야기해봤자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될 거야.’ 이런 생각들이 쌓이면서, 당신은 부당한 상황에서도 저항하거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당신의 침묵 속에서, 나르시시스트는 아무런 방해 없이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를 채워나간다.
결국 그가 당신에게 붙여준 ‘예민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는, 당신의 영혼을 가두는 보이지 않는 감옥이다. 그들은 당신의 감정을 틀렸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영원히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당신은 결코 예민하지 않다. 당신은 미치지 않았다. 당신의 감각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당신의 직관은 누구보다 정확하게 그의 잘못된 행동을 감지하고 있었을 뿐이다.
당신의 ‘예민함’은 문제가 아니라, 건강한 영혼이 보내는 가장 당연하고 올바른 신호다.
그가 당신의 현실을 지우려 할 때, 당신의 기억을 가장 단단히 붙잡아라. 그가 당신의 감정을 비웃을 때, 당신의 마음에 가장 깊이 귀 기울여라.
당신의 혼란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그의 조종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당신의 현실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 자신뿐이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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