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쓰고 있는 ‘비극 시나리오’에 대하여

이별 후 당신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그가 떠났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다. 당신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상영되고 있는 한 편의 영화, 바로 ‘그들의 완벽한 행복’이라는 비극 시나리오다.

당신은 상상한다. 그가 나에게는 보여주지 않았던 다정함을 그녀에게는 쏟아붓고 있을 것이라고. 나와는 매일 싸우던 그 문제가, 그녀와는 눈 녹듯 사라졌을 것이라고. 어쩌면 내가 ‘연습 게임’이었고, 그녀가 그의 ‘진짜 운명’이라서 저토록 빨리 환승한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이 상상은 당신을 지옥으로 밀어 넣는다. 당신은 버려진 ‘구형 모델’이 된 것 같고, 그들은 세기의 사랑을 하는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당신은 그들의 SNS를 염탐하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바뀔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과연 쟤네는 얼마나 갈까?” 저주를 퍼부으면서도, 혹시라도 그들이 결혼까지 골인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감정을 걷어내고 냉정한 ‘심리의 눈’으로 그들을 들여다보자. 과연 그들의 관계는 당신의 상상만큼 견고한 콘크리트일까? 아니면 화려한 페인트만 칠해진 부실 공사 건물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환승으로 시작된 연애는 태생적으로 ‘치명적인 유전자 결함’을 안고 태어난 생명체와 같다. 겉으로는 건강해 보일지 몰라도, 그 속은 이미 병들어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들의 사랑이 ‘모래성’인 이유

환승이별은 ‘사랑’이 아니라 ‘도피’다. 이 명제 하나만으로도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

1. ‘마취제’로서의 연애: 해결되지 않은 짐

그는 당신과의 관계에서 생긴 문제들(권태, 성격 차이, 자신의 결핍)을 해결하거나, 이별 후의 고통을 직면하는 과정을 생략했다. 대신 그는 ‘새로운 여자’라는 강력한 마취제를 선택했다.

새로운 연애가 주는 도파민은 일시적으로 그의 모든 문제를 덮어버린다. 그는 지금 행복한 게 아니라, ‘약물’에 취해 있는 상태다.

하지만 마취가 풀리면 어떻게 될까? 그가 짊어지고 있던, 해결되지 않은 성격적 결함과 관계 패턴은 고스란히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가 당신에게 했던 그 이기적인 행동, 회피하던 태도. 그것은 그 사람의 본질이다. 상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본질이 변하진 않는다. 그는 짐을 푼 적이 없다. 그저 짐을 든 채로 집만 옮겼을 뿐이다.

2. ‘반동 형성(Rebound Effect)’의 거품

환승 연애의 초반은 유독 뜨겁고 화려해 보인다. 이는 ‘반동 형성’이라는 심리 기제 때문이다. 그는 전 연인(당신)에게서 느꼈던 죄책감과 부채감을 털어내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환승이 ‘정당한 사랑’이었음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보란 듯이 행복한 척을 해야만 한다.

SNS에 올리는 그들의 럽스타그램은 행복의 증거가 아니라, “우리는 틀리지 않았어”라고 세상에 외치는 필사적인 변명에 가깝다. 진짜 행복한 사람은 굳이 행복을 전시하여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3. 신뢰라는 기초 공사의 부재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신뢰’다. 그 새로운 여자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그녀는 그가 전 여자친구(당신)를 얼마나 쉽게 버리고 자신에게 왔는지 목격한 유일한 증인이다.

지금은 사랑에 눈이 멀어 그 사실을 “나를 너무 사랑해서”라고 합리화하겠지만, 갈등이 생기는 순간 그녀의 무의식에는 사이렌이 울릴 것이다. “나에게 질리면, 이 남자는 또 다른 여자에게 환승하겠지?” 시작부터 의심의 씨앗을 품고 있는 관계다.

‘어떻게 얻었느냐가 어떻게 잃을 것인가를 결정한다(How you get them is how you lose them)’는 말은, 연애 시장의 불변의 법칙이다.

비교의 유령은 사라지지 않는다

당신은 그가 당신을 완전히 잊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인간의 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습관’은 무섭다.

환승한 남자들은 필연적으로 ‘비교’의 늪에 빠진다. 새로운 여자가 주는 설렘이 사라지는 시점(보통 3~6개월)이 오면, 그는 그녀의 단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 당신의 장점이 유령처럼 되살아난다.

“전 여친은 내 개그 코드 하나는 잘 받아줬는데.” “걔는 적어도 식성은 나랑 잘 맞았는데.”

그는 당신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이 놓친 것과 자신이 가진 것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며 만족하지 못하는, 영원한 갈증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당신과의 관계를 제대로 매듭짓지 않고(애도 기간 없이) 떠났기에, 당신이라는 존재는 그의 무의식 속에 ‘미해결 과제’로 남아 끊임없이 그를 괴롭힐 것이다. 그는 당신에게서 도망쳤지만, 역설적으로 당신의 그림자 속에 갇힌 꼴이다.

왜 당신은 그들의 결말을 궁금해하면 안 되는가

그들이 헤어지든, 혹은 (최악의 경우) 결혼을 하든, 그것이 왜 당신의 삶에 1%의 영향도 미쳐서는 안 되는지 이야기해야 한다.

1. 당신은 관객이 아니다

그들의 SNS를 보며 “언제 헤어지나”를 감시하는 동안, 당신은 그들의 인생이라는 3류 막장 드라마의 가장 성실한 시청자가 되어 있다.

그들은 주연 배우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살아가는데, 당신은 어둠 속에서 팝콘을 씹으며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반응하는 엑스트라로 전락한다.

이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당신의 시간, 당신의 감정 에너지는 오직 당신이라는 영화를 찍는 데 쓰여야 한다. 그들이 망하길 비는 시간조차 아깝다.

2. 쓰레기차는 원래 화려하다

그들이 오래 만난다고 해서, 결혼한다고 해서 그게 ‘승리’일까? 하자 있는 물건(그 남자)을 평생 떠안고 살아야 하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그 새로운 여자다.

당신은 그 ‘폭탄’을 그녀에게 넘겨주고 탈출에 성공한 생존자다. 폭탄이 터지지 않고 오래간다고 해서 부러워할 일이 아니다. 그 폭탄은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든 그들의 삶을 흔들 것이다.

당신은 그 폭탄 제거 현장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안전한 구역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해야 한다.

3. 복수는 ‘그들이 망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여성이 “그들이 불행해졌으면 좋겠다”고 빈다. 하지만 진정한 복수는 그들의 불행이 아니다. “그들이 행복하든 불행하든, 당신이 전혀 관심조차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가 깨지든 말든 당신이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그가 당신에게 아무런 감정적 파동을 주지 못하는 ‘무가치한 존재’가 되었을 때, 당신은 비로소 그 지옥 같은 비교의 감옥에서 해방된다.

부러워하지 마라, 그들은 지금 벌을 받고 있다

환승이별을 한 그 커플은 과연 오래갈까? 통계적으로, 심리적으로 그 확률은 매우 낮다. 리바운드 관계(Rebound Relationship)의 90%는 1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1

하지만 그들이 예외적으로 오래간다 해도 상관없다. 그 남자는 평생 ‘혼자서는 설 수 없는 나약함’이라는 벌을 안고 살 것이고, 그 여자는 ‘언제 버려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라는 벌을 안고 살 테니까.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사진들에 속지 마라. 그것은 불안을 감추기 위한 포장지일 뿐이다.

당신은 그 썩은 동아줄을 놓았다. 아니, 그가 놓아주었다. 그 덕분에 당신은 이제 튼튼한 두 다리로 온전히 혼자 서는 법을 배우고 있다. 고통스럽지만 이 시간을 견뎌낸 당신은,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도 스스로 빛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이다. 그 남자가 당신을 버린 게 아니라, 당신의 인생이 더 좋은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그를 ‘분리수거’ 했다는 것을.


By. 나만 아는 상담소

  1. ‘리바운드 관계’ 연구 퀸즈 칼리지의 클라우디아 브럼보(Claudia Brumbaugh)와 일리노이 대학의 크리스 프레일리(R. Chris Fraley)
    ‘”Too fast, too soon? An empirical investigation into rebound relationships” (2011, 2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