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한 척의 대가 — 감정 노동(Emotional Labor)과 자기소외(Self-Alienation)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고개를 든다. 세면대 위에 놓인 스마트폰에는 방금 전송한 문자가 떠 있다. “그래, 네 선택 존중할게. 나도 내 생활에 집중하려고. 그동안 고마웠어.”
속으로는 제발 내게로 돌아오라고 오열하고 있으면서, 텍스트로는 세상 누구보다 이성적이고 미련 없는 사람인 척 연기한다.
재회 업체가 귀에 못이 박이도록 강조하는 이른바 ‘고프레임’의 완성이다. 그들은 매달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쿨하게 돌아서는 것만이 상대의 주도권을 빼앗는 유일한 길이라고 가르친다.
타자의 욕망을 흉내 내는 꼭두각시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이토록 쿨한 척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나의 진짜 본성이거나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태도여서가 아니다. 재회 업체라는 거대한 권위(대타자)가 “이런 도도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야만 상대방이 너를 다시 원할 것”이라고 주입했기 때문이다.
이별의 고통 속에서 길을 잃은 우리는, 상대방이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짐작되는 그 가상의 이미지를 맹목적으로 흉내 낸다.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날 것의 슬픔과 애착은 철저히 무시당한다.
그 자리에 남이 써준 대본 속의 ‘매력적이고 독립적인 주인공’을 연기하는 지독한 감정 노동만 남는다. 상대를 조종하고 있다고 믿지만, 실상은 정체불명의 연애 칼럼이 만들어낸 환상에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일 뿐이다.
거울 속의 가짜 자아와 철저한 소외
라캉의 ‘거울 단계(Mirror Stage)’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거울에 비친 완벽하고 매끄러운 자신의 이미지를 자아로 착각하며 성장한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결핍투성이고 통제되지 않는 존재이기에, 거울 속의 완벽한 이미지와 현실의 나 사이에는 필연적인 분열과 소외가 발생한다.
재회 지침을 따르는 과정도 이와 완벽하게 겹친다. 메신저 화면 너머로 빚어낸 ‘쿨하고 이성적인 나’는 흠집 하나 없이 완벽해 보인다. 상대방에게 상처받지 않은 척, 이미 내 일상을 잘 살아가고 있는 척 두꺼운 가면을 쓴다.
하지만 그 가면 뒤에 숨은 현실의 나는 어떤가. 보낸 문자의 ‘읽음’ 표시가 사라졌는지 1분마다 확인하며 손톱을 물어뜯고, 상대의 SNS 접속 상태에 심장이 내려앉는 나약한 존재다.
쿨함을 연기하면 할수록, 화면 속의 당당한 텍스트와 화면 밖의 무너져 내린 나 사이의 끔찍한 괴리감은 커진다. 이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된다. 가짜 자아를 유지하느라 내면의 진짜 상처가 보내는 구조 요청은 무참히 묵살당한다.
억눌린 실재의 폭력적인 귀환
라캉은 상징계(언어와 규칙)로 덮어씌울 수 없는 날 것의 세계,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맹목적인 충동과 고통의 영역을 ‘실재계(The Real)’라고 불렀다.
아무리 잘 다듬어진 쿨한 텍스트(상징계)로 나를 포장해도, 찢어질 듯한 상실감과 불안이라는 실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의 밑바닥에 차곡차곡 쌓인다. 그리고 반드시 가장 기괴하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귀환한다.
멋지게 안부 문자를 던져놓고는 밤새 불면증에 시달리거나, 상대방의 의미 없는 프로필 음악 하나에 불안을 일으키는 것이 그 증거다.
쿨한 척은 감정을 다스리는 성숙한 태도가 아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에 안고 그 위에 위태롭게 앉아 눈을 가리는 짓이다.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를 억지로 꿰매고, 그 위에 쿨함이라는 매끄러운 화장을 덧칠해 기어코 상대방의 얄팍한 호기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치자.
그렇게 타인의 욕망에 철저히 기생하며 빚어낸 가짜 얼굴로 헤어진 연인을 다시 품에 안았을 때, 그 사람이 사랑하고 있는 것은 과연 진짜 당신인가, 아니면 당신이 피를 말려가며 연기해 낸 정교한 껍데기인가.
By. 나만 아는 상담소.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나만 아는 상담소 프리미엄 콘텐츠 에서 더 깊이 있는 심리학적 조언을 확인하세요.
또한, 나만 아는 상담소 네이버 블로그 에서도 다양한 주제의 심리 칼럼을 만나보세요.
- 쿨한 척의 대가 — 감정 노동과 자기소외쿨한 척의 대가 — 감정 노동(Emotional Labor)과 자기소외(Self-Alienation)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고개를 든다. 세면대 위에 놓인 스마트폰에는 방금 전송한 문자가 떠 있다. “그래, 네 선택 존중할게. 나도 내 생활에… 자세히 보기: 쿨한 척의 대가 — 감정 노동과 자기소외
- 관계에서 ‘이기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 Gottman의 네 기수 이론관계에서 ‘이기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 카트먼의 의 네 기수 이론 마지막으로 다투던 날의 날 선 말들이 화면에 가득하다. 내가 더 많이 사과해서 졌고, 상대방이 기선을 제압해서 이겼다는 자괴감이 든다…. 자세히 보기: 관계에서 ‘이기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 Gottman의 네 기수 이론
- ‘고프저신’, ‘저프고신’ — 조합어가 만드는 가짜 정밀함의 환상‘고프저신’, ‘저프고신’ 가짜 심리학의 환상 노트북 화면 옆에 출력해 둔 상담 결과지를 펼쳐본다. 빼곡한 글씨 사이로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를 쳐둔 낯선 단어가 눈에 띈다. ‘고프저신(고프레임 저신뢰감)’. 상담사는 내 연애가 실패한… 자세히 보기: ‘고프저신’, ‘저프고신’ — 조합어가 만드는 가짜 정밀함의 환상
- 전화 통화보다 카톡을 선호하는 애인의 심리문자를 보내기가 무섭게 당신은 통화 버튼을 누른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혹은 타자로 길게 치기 귀찮아서다. 하지만 신호음이 끊어질 때까지 전화를 받지 않던 애인은 잠시 후 얄미운 카톡 하나를 띡… 자세히 보기: 전화 통화보다 카톡을 선호하는 애인의 심리
- 읽씹과 안읽씹,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읽씹과 안읽씹 어떻게 대처할까 카카오톡 말풍선 옆에 붙어 있는 작고 노란 숫자 ‘1’. 현대인들에게 이 숫자만큼 잔인하고 피 말리는 고문 도구가 또 있을까. 우리는 메시지를 보내놓고 1분에 한 번씩 화면을… 자세히 보기: 읽씹과 안읽씹,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