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사 바꿔서 전 연인 마음을 돌린다? — SNS 전략의 심리학적 허구
스마트폰 사진첩을 수십 번 넘기며 스크롤을 오르내린다. 목적은 단 하나다. 헤어진 전 연인이 보게 될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고르는 것. 너무 꾸민 티가 나면 안 된다.
아주 자연스러우면서도 행복해 보이고, 전보다 살짝 더 생기 있는 모습이어야 한다. 재회 상담 업체에서 일러준 이른바 ‘SNS 지침’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다.
연락하지 않고 기다리는 동안, 프사와 상태 메시지로 나의 가치를 증명하라는 조언은 거의 모든 재회 칼럼의 단골 메뉴다.
전시된 행복이 주는 착각
업체들은 이별 직후 당신의 일상을 화려하게 포장해 전시하라고 부추긴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서 와인 잔을 부딪치는 사진, 혹은 새로운 취미에 몰두하며 환하게 웃는 사진을 올리라는 식이다.
그들은 이것이 상대방의 상실감을 자극하고, ‘나 없이도 저렇게 잘 지내다니’ 하는 호기심과 조바심을 불러일으킬 거라 장담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손실 회피 편향’을 자극하겠다는 얄팍한 계산이다. 자기가 버린 물건의 가치가 갑자기 올라가면 배가 아파서라도 다시 찾고 싶어질 거라는 논리다.
사람의 마음을 벼룩시장 매대 위에 올려둔 중고 물품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 조언은 내담자에게 묘한 안도감을 준다. 내가 먼저 매달리지 않고도, 그저 사진 한 장 올리는 것만으로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달콤한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투명하게 꿰뚫리는 방어기제
과연 상대방이 그 바뀐 프사를 보고 땅을 치며 후회할까.
당신과 수개월, 혹은 수년을 만나며 가장 내밀한 감정까지 공유했던 사람이다. 이별 직후 갑자기 올라오는 작위적인 설정 샷들은 오히려 속내를 투명하게 비춘다.
“나는 너 없이도 완벽하게 행복해”라고 외치는 사진일수록, 그 이면에는 “제발 이 사진을 보고 내게 연락해 줘”라는 절박한 비명이 깔려 있다는 걸 상대도 직감적으로 안다.
진짜 미련 없이 훌훌 털어버린 사람은 굳이 자신의 평온함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상대를 의식해서 올린 사진은 아무리 정교하게 연출해도 부자연스러운 티가 나기 마련이다.
매력을 발산하기는커녕, 애써 쿨한 척 연기하는 당신의 처절한 방어기제만 실시간으로 생중계될 뿐이다. 프사 뒤에 숨어 상대의 눈치만 보는 수동적인 태도는 오히려 남은 매력마저 깎아내린다.
나 자신을 전시품으로 전락시키는 비극
이 SNS 전략이 품은 가장 뼈아픈 부작용은 그 화살이 결국 당신 자신을 향한다는 데 있다.
사진을 업데이트하고 나면, 당신의 일상은 완전히 볼모로 잡힌다. 업무를 보다가도,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도 수시로 스마트폰을 켜서 확인한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사진을 올렸다면, 조회한 사람 목록을 분 단위로 새로고침하며 그 사람의 아이디가 뜨기만을 기다린다.
상대방이 사진을 읽고도 아무 반응이 없으면 지옥이 시작된다. ‘이 사진이 별로였나?’, ‘너무 꾸민 티가 났나?’, ‘다른 각도로 찍은 걸 올렸어야 했나?’ 하며 끝없는 자기 검열의 늪에 빠져든다. 당신의 소중한 일상은 누군가의 시선을 끌기 위한 전시용 세트장으로 쪼그라든다.
이별의 상처를 보듬고 내 마음을 돌봐야 할 애도의 시간마저, 오직 단 한 명의 관객을 위한 피 말리는 연극 무대로 변질되어 버리는 거다. 내 삶의 주인이 나 자신이 아니라 떠나간 사람의 시선이 되어버리는, 완벽하고도 비참한 주도권의 상실이다.
심사숙고 끝에 고른 사진을 기어코 프로필에 등록한다.
화면 속 당신은 그럴싸한 배경을 뒤로한 채 아주 매끄럽고 여유롭게 웃고 있다. 이 잘 세팅된 한 장의 이미지가 업체의 장담대로 기적처럼 상대방의 호기심을 찔러, 어느 날 새벽녘 짧은 안부 문자를 하나 끌어냈다고 치자.
수백 번의 새로고침과 피 말리는 기다림 끝에, 내 진짜 슬픔은 전부 숨겨둔 채 오직 누군가에게 전시되기 위해 빚어낸 그 얄팍한 환상의 얼굴로, 당신은 정말 진실된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는가.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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