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같은 이유로 또 헤어지는가 ?

술잔을 기울이며 친구에게 하소연한다. “왜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이 모양일까?”

첫 번째 연인은 바람을 피웠고, 두 번째는 잠수를 탔으며, 이번 연인은 당신을 가스라이팅 했다. 겉모습은 달랐지만 그들이 당신에게 준 모멸감의 맛은 소름 끼치도록 똑같다. 당신은 운이 없었다고 자책하거나,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었냐며 씁쓸하게 웃어넘긴다.

상대는 매번 바뀌는데 결말이 같다면, 범인은 그들이 아니다. 이 지루한 비극을 기획하고 연출한 총괄 감독은 바로 당신이다.

우리는 우연히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무의식 속에 정교하게 설계된 각본에 따라 배역을 맡을 사람을 정확히 골라낸다. 당신의 연애가 늘 같은 절벽에서 추락하는 건, 당신이 그 절벽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익숙한 지옥이 낯선 천국보다 낫다

뇌는 행복을 추구하지 않는다. 생존을 추구한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 낯선 쾌락보다는 익숙한 고통이 생존에 유리하다. 예측 가능한 불행은 대비할 수 있지만, 겪어보지 못한 행복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당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자. 부모가 무관심했거나 감정 기복이 심했다면, 당신의 뇌는 그 불안정한 긴장을 ‘사랑의 기본값’으로 저장한다.

성인이 된 당신 앞에 다정하고 안정적인 사람이 나타났다고 치자. 머리로는 그가 좋은 사람인 걸 안다. 하지만 가슴은 반응하지 않는다. 지루하다. 설레지 않는다. 뇌가 기억하는 사랑의 맛(불안과 긴장)이 안 나기 때문이다.

반면, 나를 헷갈리게 하고 연락이 잘 안 되는 사람이 나타나면 뇌는 반짝인다. 심장이 쿵쿵 뛴다. 당신은 이걸 운명적 끌림이라 착각하지만, 사실은 편도체가 울리는 경고음이다.

“여기 내가 아는 그 익숙한 냄새가 난다!” 당신은 사랑을 찾아간 게 아니다. 고향 집의 눅눅한 곰팡이 냄새를 찾아갔을 뿐이다. 프로이트는 이걸 ‘반복 강박’이라 불렀다. 우리는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기어이 그 상처를 다시 줄 사람을 찾아내고야 만다.

상대에게 쥐어준 대본

설령 멀쩡한 사람을 만났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당신은 기어코 그를 당신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게 만든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투사적 동일시’라고 한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상황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상대를 조종하는 거다.

  • “너 마음 식었지?”
  • “나 질리지?”
  • “다른 사람 생긴 거 아니야?”

당신은 확인받고 싶어서 묻는다. 하지만 상대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의심받는다는 모욕감을 느낀다. 처음에는 아니라고 달래주던 사람도 반복되는 추궁에 지쳐간다. 당신의 불안은 상대의 목을 조르고, 결국 그는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그 말을 내뱉는다. “지친다. 그만하자.”

그 순간 당신은 오열하며 생각한다. “거봐, 내 예감이 맞았어. 결국 떠나잖아.”

예감이 맞은 게 아니다. 당신이 그 멀쩡하던 사람을 지치게 만들어서 떠나보낸 거다. 당신은 그에게 ‘나를 버리는 나쁜 사람’ 역을 맡겼고, 그는 당신의 연출 의도대로 충실히 연기했을 뿐이다. 당신은 피해자가 아니다. 당신은 이 이별을 완성시킨 공범이다.

내 안의 그림자를 사랑하다

우리는 종종 내가 억누른 모습을 가진 사람에게 끌린다.

평생을 모범생으로 살아온 여자는 제멋대로 사는 남자에게 끌린다. 내가 참아온 일탈을 그가 대신해 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의 자유분방함이 해방구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바로 그 점 때문에 싸운다. “너는 왜 그렇게 책임감이 없어?”라고 비난하지만, 사실 싸우고 있는 대상은 그 사람이 아니다. 내 안에 억눌린 무책임함이다.

반대로 우유부단한 사람은 통제적인 사람에게 끌린다. 내가 못 내리는 결정을 그가 내려주길 바란다. 처음에는 그의 리더십이 든든하지만, 곧 그 숨 막히는 간섭에 질려버린다.

헤어지는 이유는 만난 이유와 정확히 일치한다. 당신의 결핍이 그를 불렀고, 그 결핍이 채워지지 않자 그를 버렸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 게 아니라, 내 욕망을 투사할 스크린으로 썼을 뿐이다. 영화가 끝나면 스크린은 꺼진다. 남는 건 허무함뿐이다.

대본을 찢고 무대 밖으로

“똥차가고 벤츠 온다”는 말은 반만 맞다. 당신이 서 있는 곳이 폐차장이라면, 오는 차는 전부 똥차일 수밖에 없다.

당신의 연애가 반복되는 건 운명이 아니다. 습관이다. 익숙한 맛만 찾는 편식이다. 이 고리를 끊으려면 맛없어 보이는 음식을 씹어 삼키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루해 보이는 사람을 견디고, 불안할 때 상대를 찌르는 대신 내 불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물론 혼자서 자신의 대본을 객관적으로 읽는 건 어렵다. 우리는 모두 자기 인생이라는 병 속에 갇혀 있어서, 병 밖의 라벨을 읽지 못한다.

내 연애가 왜 자꾸 같은 곳에서 고장 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면, 병 밖에서 라벨을 읽어줄 사람을 찾는 것도 방법이다.

지도를 볼 줄 아는 사람과 함께라면, 늪을 피해 단단한 땅을 밟는 일이 조금은 수월해질 테니까.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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