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에 젖은 운동복 차림으로 스마트폰 카메라를 켠다. 화면 속 내 모습을 꼼꼼히 확인하고 그럴싸한 필터를 입힌다. “오늘도 나를 이겨냈다”는 식의 작위적인 문구를 덧붙여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린다.
재회 상담 업체에서 입이 마르도록 강조하는 이른바 ‘자기계발 지침’을 수행하는 중이다. 그들은 이별 후 매달리며 우는 대신, 운동을 하고 책을 읽으며 완벽하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라고 주문한다.
당신이 이렇게 멋지게 변했다는 걸 알게 되면, 전 연인도 땅을 치며 후회하고 돌아올 거라는 달콤한 약속과 함께.
타인의 시선을 위한 쇼윈도
이별의 고통 속에서 자신을 돌보라는 조언 자체는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재회 업체가 말하는 성장은 방향이 완전히 뒤틀려 있다.
진정한 의미의 성장은 오롯이 나의 내면을 향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그러나 업체의 지침을 따르는 순간, 당신의 자기계발은 철저히 전 연인의 시선을 의식한 쇼윈도 전시품으로 전락한다.
다이어트를 하고,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고, 자격증 공부를 하는 모든 행위의 목적지가 ‘나’가 아니라 ‘떠나간 그 사람’이 된다.
상대방이 나의 이 멋진 모습을 보고 매력을 느껴주기를, 그래서 자존심을 굽히고 다시 연락해 주기를 바라는 얄팍한 계산이 깔려 있다. 이것은 성장이 아니다. 나 자신을 미끼로 삼아 상대를 낚아보려는 처절한 구애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주인이 뒤바뀐 동기부여
심리학에서는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힘을 ‘내재적 동기’와 ‘외재적 동기’로 나눈다.
스스로의 만족과 즐거움에서 우러나오는 내재적 동기는 지치지 않는다. 반면, 타인의 인정이나 보상 같은 외재적 동기에 기대어 움직이는 사람은 목표가 사라지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성장해서 돌아가라”는 지침은 당신의 삶을 지탱하는 동기를 전부 외재적 보상으로 치환해 버린다. 아무리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리고 수십 권의 책을 읽어도 마음 한구석은 텅 비어 있다.
당신의 노력에 대한 채점표를 떠나간 연인의 손에 쥐여주었기 때문이다.
스토리를 읽은 사람 목록에 그 사람의 아이디가 없으면 그날 흘린 땀방울은 전부 무의미한 쓰레기가 된다. 내 삶의 궤도를 수정하는 숭고한 과정마저 오직 타인의 반응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는, 지독한 조건부 자존감의 늪에 빠지는 거다.
과거에 묶인 발목과 성장의 역설
이 기형적인 조언이 품고 있는 가장 큰 모순은, 당신을 영원히 과거에 가둬둔다는 점이다.
사람이 정말로 성장하고 내면의 결핍을 채워 단단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낡은 관계의 패턴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게 된다.
과거에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 나의 가치를 몰라보고 떠난 사람에 대한 미련이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는 것이 정상적인 치유의 수순이다.
하지만 업체의 지침은 끊임없이 당신의 시선을 뒤통수 너머의 과거로 돌려세운다. 당신이 쏟아부은 뼈를 깎는 노력의 최종 보상이 결국 ‘나를 버린 사람과의 재회’라는 낡고 병든 결말에 고정되어 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달리고 있다고 믿지만, 실상은 전 연인이라는 거대한 말뚝에 밧줄을 매달고 빙글빙글 도는 다람쥐 쳇바퀴에 불과하다.
진짜 성장은 나를 옭아매는 그 밧줄을 끊어내는 데서 시작된다. 과거의 누군가에게 복수하거나 증명하기 위해 사는 삶은 결코 온전한 내 것이 될 수 없다.
다시 헬스장 전면 거울 앞이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땀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화면 속 자신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억지로 끌어올린 입꼬리와, 반응을 기다리며 조마조마해하는 불안한 눈빛이 거울 속에 선명하다.
그들이 시키는 대로 외모를 가꾸고 스펙을 쌓아 기어코 상대가 당신을 다시 우러러보게 만들었다고 치자.
그렇게 당신이 피땀 흘려 완성해 낸 반짝이고 단단해진 세계를, 굳이 당신의 가장 초라했던 시절을 매몰차게 버리고 떠났던 사람의 발밑에 전리품처럼 바쳐야 할 이유가 대체 어디에 있는가.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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