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이 일하면 더 높은 성과를 받고 더 많은 보상을 얻게 된다.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거나 시키는 사람도 없건만.. 나는 나의 자유 의지로 죽도록 일하고 그 결과로 죽을 만큼 피로해 진다.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과연 주인인가 노예인가?
한병철의 피로사회
철학으로는 이례적이게 베스트 셀러에 올랐던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의 내용중 일부이다. 이 글은 우리가 피로에 대해 새롭게 자각 하도록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였고, 그 문제는 변화하는 사회의 패러다임 속에서 발생하고 있다 이야기 한다.
현재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키는 것만으로도 잘 하고 있다는 수동적인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다. 교육의 과정을 보게 되더라도 주입식 교육이라는 말이 있듯 지시하고 따르고 이를 반복하고 따라가는 것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기준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변화해 가고 있는 지금 우리의 사회는 어떠한가? 현재 주입식 교육 환경 속에서 능동적인 활동을 바라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규칙과 규율을 지키는 것이 당연시 되었기에 과정 보다는 결과, 즉 성과를 중요시 하는 상황으로 전환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하지 않아야 인정 받던 시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해야지만 인정받는 사회로의 변화가 타인들에 비해 뒤쳐질 수 있는 현실이 되어 스스로를 옭아맨다는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흔한 우울증의 요소는 호르몬의 변화와 같이 생화학적 요소, 유전적인 요소, 환경적 변화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로 인하여 우울증을 야기 한다고 하지만 공통적인 현상은 삶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에선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가 말하는 성과사회에 관련하여 스스로 조여 오는 삶에서 나타나는 우울증에 관련하여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시작점이 다르다는 흙수저와 금수저, 외모와 성별에서 오는 차별, 학연 지연 등 당신이 처한 모든 사회가 해당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나는 이 피로사회에서 벗어났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노력함에도 쫓아지 못하는 상황에 우린 다른 곳에 귀인하려는 핑계를 찾고 있지 않았을까?
한계라는 틀에서 나타나는 우울이라는 감정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혹은 해소할 수 없다면 나락으로 빠지는 결말을 맞게될 것이고, ‘나’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강해질 때 낮은 자기애성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때문에 우리는 이런 사회적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해야만 한다. 스스로 가해자를 만들어 내지 않도록 하며, 스스로 피해자를 자처하지 않도록.
이 길의 끝이 절벽이라고 해서 다른 방향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두려움이라는 명목에 시도라는 가능성을 억압하고 누르는 가해자가 된다면 다른 길을 찾을 시야를 확보할 자격조차 갖추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성과사회, 현재의 피로사회에서 나 자신을 향해 채찍질을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로 인한 피로함과 우울함을 억지로 외면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현실을 직시하는 순간 벗어날 것이다’는 메시지가 조금이나마 전달되었으면 한다.앞으로 만날 그대들이 한계라는 단어를 사전적 의미로만 사용하지 않기를 바라는 작은 바람, 더 넓은 시야를 갖기를 바라는 작은 희망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다.
이 글은 한 때 더 나은 삶과 희망을 함께 꾸었던 채송화양의 이야기를 다시 구성, 작성하였으며 이 글의 저작권 또한 채송화양에게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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