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리더, 완벽한 연인? 나르시시스트의 정서적 공허함
겉으로는 멋져 보이지만, 정서적으로 텅 빈 상태
나르시시스트의 내면을 “정서적으로 텅 빈 상태”로 규정해 볼 수 있다. 자신이 이룬 명예, 재력, 혹은 인기를 누리면서도, 진짜 행복이나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외부인의 눈에는 “저 사람은 엄청난 부와 명성을 지녔으니 얼마나 좋을까?”라고 보이지만, 막상 그들은 실질적 만족감이 적다. 순식간에 기분이 다운되거나, 사소한 트러블에도 과민 반응을 보인다. 왜냐하면 자신이 누군가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교감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정서적 공허”는 아이러니하게도 주변 사람들을 더 도구화하도록 만든다.
“내 허무함을 순간적으로라도 달래줄 대상이 필요해.”라는 심리가 생겨나서, 때로는 자극적 이벤트를 벌이거나 새로운 사람을 찾아 관계를 만들고, 그 사람마저 자신의 기분 전환용으로 소진시키면 별 미련 없이 떠난다.
연인을 계속 바꾸거나, 직장에서 ‘신선한 열정을 가진 사람’을 스카우트해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그들에게서 느끼던 흥미가 식으면 가차 없이 내치는 일도 벌어진다.
물론 겉모습만 보면, 이들은 한없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말주변이 좋고, 재치를 발휘하며, “딱 봐도 완벽한 삶을 사는 것 같으니 나도 저 사람에게 배우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게 한다.
사람들은 그 매력에 끌려 가깝게 지내 보고자 하나, 조금만 친밀해져도 그 얼음장 같은 냉담함과 공허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실망감을 느낀다. “어떻게 저렇게 이기적이고, 상대를 사람으로 보지 않을 수 있나?” 하고 말이다.
1. 얼음성 속 나르시시스트, 그리고 우리의 대처
나르시시스트의 정서적 공허함, 냉담함은 단순히 “성격이 조금 못됐다”는 문제 차원이 아니다. 그들은 자기만의 얼음성을 세워 놓고, 누가 들어오든 나오든 별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
다만 필요한 사람이면 불러들여 요긴하게 쓰고,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순간 문을 닫아버린다. 주변인의 감정, 사정, 아픔은 깊이 고려하지 않는다. 이중적 태도로 “처음에는 달콤한 말로 마음을 열게 한 뒤, 나중에는 무정하게 돌아서” 피해자를 당황시킨다.
특히 성공한 CEO나 연인 형태로서, 외부에는 ‘빛나는 인물’로 보이지만, 정작 가까운 이들은 그가 얼마나 차갑고 이기적인지 잘 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이런 사람에게 호감을 느꼈다가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
협업 관계라면 “한 배를 타고 열심히 프로젝트를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모든 성과는 그 사람 몫이 되었고, 문제는 다 내 탓이 됐다”고 푸념하게 된다. 연인 사이에서는 “이 사람만큼 날 뜨겁게 대시한 사람도 없었는데, 어느 날 돌변해 나를 하찮게 여기더라”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런 나르시시스트에게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남는다. 먼저, 상대의 냉담함과 공허함이 본인의 노력으로 쉽게 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많은 이가 “내가 좀 더 사랑을 주면, 저 사람도 달라질 거야”라고 믿지만, 그 바람대로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르시시스트의 문제는 자신이 해결하려고 들지 않으면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스로가 “나는 완벽해”라고 생각하기에,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두 번째로, 일이 지나치게 꼬이기 전에 “적정 거리를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르시시스트의 공허함을 내가 메워 주는 건 불가능하다. 오히려 내가 그들의 분노나 모욕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선에서 상호 작용을 멈추거나, 업무적·형식적 관계만 유지하고, 사적인 깊은 신뢰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 편이 낫다. 사랑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초기에 매력을 느꼈을지라도, 의사결정·감정·미래 계획 등 중요한 분야에서 상대가 얼마나 공감하는 태도를 보이는지 꼼꼼히 살펴본 뒤, “이건 분명 뭔가 이상하다”라고 느껴지면 서둘러 마음을 재정비하는 편이 좋다.
세 번째로, 이미 깊은 상처를 입었다면 “왜 저 사람은 그랬을까?”라며 본인을 탓하기보다는, “나르시시스트에게 이런 특징이 있음을 미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라고 현실을 인정하고 회복을 준비해야 한다.
피해자가 자신을 책임지는 범위를 넘어, 나르시시스트의 얼음장 같은 내면을 녹여 주려 하는 건 본인 에너지만 소진시키는 일이 될 수 있다. 물론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게 인간관계의 미덕일 수 있지만, 그것이 일방적으로 이용당하는 형태가 되면, 결국 피해자만 고갈되고 만다.
마지막으로, 나르시시스트가 스스로 자각하고 변화를 시도하는 경우도 드물게나마 있다. 어떤 사건을 통해 자기 행동이 얼마나 파괴적이었는지 깨닫고, 전문 심리상담이나 코칭을 받으며 조금씩 바뀌어 가는 사례도 완전히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이 선택해야 할 문제다. 주변에서 억지로 “너 이렇게 살면 안 돼, 공감을 배워야 해”라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고 해서, “알겠어, 그러면 내가 달라질게”라고 순순히 반응하지는 않는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나르시시스트가 얼음 같은 마음을 지닌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 내부의 욕구와 공허함은 본인이 해결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는 걸 명심하는 것이다. 괜히 정열적으로 헌신했다가 상처만 깊어지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경계가 필요하다.
2. 나르시시스트의 정서적 공허함 뒤에 숨은 진짜 얼굴
얼음 같은 나르시시스트의 세계는 역설적이다. 처음에는 화려함과 멋진 이미지로 사람들을 끌어당기지만, 막상 그의 내면은 텅 비어 있다. “나를 숭배하라”는 자기중심적 욕구에 사로잡혀 있고, 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상대를 도구로 삼는 데 거리낌이 없다.
높은 지위와 인기를 누릴수록 그의 자신감은 폭등하며, 주변을 대하는 태도는 더욱 일방적으로 변한다. “내가 원하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라는 분위기를 풍기면서, 작은 반발이나 불순종도 용납하지 않으려 든다.
이런 사람들의 현실 속 모습은 CEO, 정치인, 예술가, 교수, 심지어 종교 지도자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들은 일상에서 “이중성”을 펼치며, 누구에게는 따뜻한 언사를 건네지만, 다른 누구에게는 가차 없이 냉정하다.
그 냉정함이 꼭 감정이 없는 건 아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면 얼마든지 감정을 흉내 낼 수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공감’이나 ‘연대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그 이면에는 허전함과 불안정성이 깔려 있어,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과 숭배를 갈망한다.
피해자들은 “처음에는 왜 그렇게 완벽해 보였는데, 지금은 나를 이렇게 내쳐?”라고 절망하거나 분노한다. “내가 뭘 잘못했기에?”라고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논리나 정당성이 들어갈 여지가 적다.
나르시시스트에게는 사람을 온전히 존중해야 한다는 도덕 규범이나 죄책감이 희미하다. 오직 “이 사람이 내게 도움이 되느냐, 불편을 초래하느냐”로 가치를 매긴다. 도움이 된다면 친밀하게 대하고, 아니라면 차갑게 외면하거나 몰아세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가 나르시시스트를 “무조건 나쁜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만은 없다. 그들 역시 어쩌면 어릴 때부터 과도한 기대와 칭찬, 혹은 정반대로 무관심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 “자기애성 인격”이 고착됐을 수 있다.
자기 자신을 아이돌처럼 높이 평가하고, 그 인형 같은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주변을 제물로 삼는 습관이 굳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심리적 배경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이 정당화되거나 피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왜 이런 이들에게 끌려서 상처를 입고,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된다.
특히 그들이 겪는 “공허함”을 애틋하게 여기고, “내가 그 마음을 채워 줄 수 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는 이는 조심해야 한다. 나르시시스트의 공허함은 외부에서 채워 주기가 어렵다.
잠깐은 훈훈한 교감처럼 느껴져도, 시간 지나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네가 날 충분히 숭배하지 않는다”라는 불만을 제기한다.
요컨대 “얼음장 같은 마음”은 주변이 아무리 불을 지펴도 용해되지 않는다. 본인이 그 얼음을 녹이겠다고 결심하고 실천해야 변화 가능성이 생길 뿐이다.
이어지는 3편의 글에서는 나르시시스트의 냉담함과 공허함,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높은 지위나 매력적인 이미지를 무기로 주변을 대하는지 자세히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얼음성에 갇힌 사람을 억지로 끌어내려 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사람이 자신의 공허와 이기심을 해결할 의지가 없는 상태라면, 거리를 두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얼음성을 확실하게 부수는 정답 같은 건 없지만, 최소한 내가 지나치게 빠져들어 정신적·정서적 파탄을 맞는 일은 막아야 한다.
나르시시스트의 이런 모습은 3장, 4장 등에서 다룰 다른 주제(가스라이팅, 조종 기법, 피해자들이 겪는 심리적 패턴 등)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결국 얼음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은 “나를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고, 타인을 수단화한다”는 전제를 움직이기 힘들게 고집하고, 그 과정에서 교묘한 심리 조종을 활용한다. 상대가 “우리 사이가 왜 이렇게 삐걱거리는지 모르겠다”라고 할 때도, 나르시시스트는 “네가 아직도 날 제대로 숭배하지 않았기 때문이야”라는 식으로 몰고 간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궁금할 것이다. “그럼 이들은 결국 만족하지 못하고 계속 얼음장 속에 남아 있는 건가? 혹은 언젠가 깨달음을 얻고 소중한 관계를 형성하게 될 수도 있는 건가?” 실제로 자기애가 강한 이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뼈아픈 실패나 외로움을 겪으면, 그제야 본인을 성찰하는 계기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고, 주변의 지인과 전문가의 도움도 상당히 필요하다. 보통은 본인의 노력이 없으면 얼음성이 점점 더 견고해질 뿐이다.
정서적으로 텅 빈 상태가 결국은 나르시시스트 스스로에게도 불행이겠지만, 더 큰 문제는 그 여파로 주변인들이 겪는 상처다. 이 부분이 앞으로 서술될 “피해자가 왜 자꾸 자책하게 되는가,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가”라는 화두와 직결된다.
사람들은 얼음성 안의 사람에게 “따뜻함을 줄 수 있지 않을까?”라며 진심을 투자했다가, 차갑게 쫓겨나면서 자기 존재 자체가 무가치해진 듯한 감정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건, “상대의 냉담함은 그 사람 내면의 문제”이지, 결코 피해자 자신의 가치가 부족해서 생긴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얼음성의 주인은 누구든 스스럼없이 내쫓을 수 있고, “너는 내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몰아세운다.
거기에 일일이 흔들릴 필요는 없다. 설령 내가 때론 부족한 면이 있더라도, 그렇다고 함부로 사람을 차가운 시선으로 대하거나 상처를 주는 태도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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