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는 성공을 잘한다? “성공한 CEO나 연인, 그들의 두 얼굴”
나르시시스트의 대표적 이미지 중 하나는 바로 “성공한 CEO”다. 매체에서도 자주 등장하는데, 수많은 사람 앞에서 연설하며 회사를 혁신적으로 이끌어 가는 리더, 혹은 엄청난 매출을 올리는 재벌가 출신이 그 예시다.
이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 직원들은 소중한 가족”이라고 말하거나, 각종 자선행사를 열어 사회적 이미지를 개선하려 들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사내 분위기를 살펴보면, 직원들이 뒷말을 자주 한다. “
저 사람은 사람을 위하는 척하지만, 막상 뒤에선 모든 걸 자기 공으로 돌리고 책임을 전가한다”는 식이다.
회장 혹은 CEO가 높은 지위와 재력을 과시하면서 “나를 따르라”는 메시지를 직접 내비치지 않아도, 그의 행동 전반에서 그런 기류가 스며나온다. 예를 들어, 조금만 성과가 눈에 띄지 않으면 “넌 정말 형편없군”이라고 면박을 주고, “이 회사가 어디 덕분에 돌아가는지 알아?”라고 떠벌린다.
가끔은 회식 자리에서 “난 직원들과 소통을 좋아해”라며 친근한 척 굴지만, 회사가 위기에 빠지면 가장 먼저 자르는 건 해당 직원들이 된다. 그러고도 “회사 경영을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라고 변명하면서, 자신의 결정을 지지해 주지 않는 사람에겐 “너는 배은망덕하다”라는 낙인을 찍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다. 그가 워낙 탁월한 언변과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고, 때로 미디어 노출을 통해 훌륭한 리더로 비춰지니, 바깥 세상에서는 “참 대단한 분”이라고 찬양받을 때가 많다.
정작 가까운 사람들만 “저분 정말 무섭고 냉정한 사람이야. 잘못 보이면 인간 취급도 안 해”라고 수군댄다. 이렇듯 이중적인 얼굴을 동시에 지니는 탓에, 외부인은 그 얼음 같은 내면을 미처 알아채지 못한다.
비슷한 예시는 “매력적인 연인” 유형에서도 발견된다. 처음에는 상대를 꿈같이 대하며, 한껏 로맨틱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장미꽃 다발을 준비하고,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해 ‘특별한 날’을 만들어 준다. “내 인생에 이런 사람은 처음이야”라는 말로 마음을 흔든다.
상대는 그 말에 감동해서 “나도 이 사람에게 모든 걸 주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그런데 잠시 뒤,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나르시시스트가 차가운 면모를 드러낸다.
상대의 고민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요구가 통하지 않으면 “날 실망시켰어”라는 말로 죄책감을 부추긴다. “당신이라면 내가 원하는 걸 다 해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압박하는 것이다.
상대가 “이건 좀 과하잖아”라고 말하면, “내게 그 정도 희생도 못 해 주는 거야?”라거나 “너도 나 사랑한다면 이렇게 해줄 수 있겠지” 같은 언어로 반격한다. 결국 상대는 “내가 사랑이 부족한 걸까?”라며 스스로를 의심한다.
어느새 억지스럽게 자기 희생을 감수하면서, 나르시시스트의 까다로운 욕구를 맞춰 주게 된다. 바로 이 장면이, 얼핏 겉보기에는 ‘이 커플 참 다정하고 예뻐 보인다’고 느껴지는 동시에, 실제 관계 안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지배와 착취가 일어나는 이유다.
그렇게 종합해 보면, 성공을 거머쥐거나 매력적인 이미지를 구축한 나르시시스트일수록, 대외적 평가나 인기는 상당히 좋게 포장된다. 그가 냉담하고 공허한 내면을 감추기 위해 각종 이벤트나 연출을 벌이기 때문이다.
이중적 태도로 주변을 조종하고, 조금이라도 위협을 받는 듯하면 가혹할 정도로 상대를 내친다. 마치 얼음성에 홀로 군림하고, 누군가가 성벽을 두드리면 처음에는 미소를 지으며 맞아들이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냉정하게 내쫓아 버리는 왕 같은 느낌이다.
1. 피해자의 시선: “그들의 진짜 실체를 깨닫는 순간”
이제 피해자 관점에서 이 상황을 살펴보자. 처음에는 “아주 멋진 사람을 만났다”라는 흥분과 기쁨이 크다. 직장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상사를 만나면, 부하직원은 “내가 이분에게 인정받으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거야”라는 부푼 기대를 갖는다.
연인 관계에서도 “이렇게 배려해 주고,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사람이라면 평생 나를 행복하게 해 주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또는 어떤 특정 계기를 맞이하면, 나르시시스트의 냉담함과 공허함이 가시처럼 드러난다. 예컨대, 프로젝트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을 때 상사가 보여 주는 태도가 “네가 왜 이걸 제대로 못했어?”라는 힐난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는 가족 행사에서 본인만 주인공이 되려 하고, 다른 사람들은 일절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을 보며 “이건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게 된다. 연애 상대라면, 내가 아프거나 슬플 때 거리를 두거나 “그건 네 문제고 난 관여하기 싫어”라고 말해 온정을 거부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게 된다.
그 순간 피해자는 혼란에 빠진다. “이 사람이 원래 이렇게 차가운 사람이었나? 왜 전에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날 아껴 주더니, 지금은 무심하게 구는 거지?” 하고 의아해한다.
게다가 나르시시스트가 갖고 있는 “말솜씨” 덕분에, 상대를 되레 죄책감에 빠뜨리는 일이 벌어진다. “네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면, 이런 식으로 대하지 않았을 거야”라면서 역공을 펼치면, 피해자는 자기가 뭔가 크게 잘못한 줄 알고 자책한다.
이런 상태가 반복되면, 피해자는 점점 자존감이 무너지고 우울감과 무기력에 빠진다. 주변 사람에게 털어놓아 봐도 “그 사람 꽤 괜찮은 사람 아니야?”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가해자(나르시시스트)는 겉으로 멋진 이미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피해자는 “내가 이상하게 느끼는 게 잘못이었나”라고 다시 의심한다. 그러나 직관적으로는 “저 사람, 정말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구석이 있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다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 그 냉혹함이 명백히 드러나는 순간, 피해자는 극심한 배신감에 시달린다. “내가 이렇게까지 헌신했는데, 어떻게 나를 이렇게 내동댕이칠 수 있지?”라는 충격이다. 이 지점이 바로, 피해자가 그들의 “진짜 실체”를 알아채는 순간이다.
더 나아가, 일부 피해자는 나르시시스트에게서 벗어나려 할 때 극심한 비난이나 위협에 시달린다. “감히 날 배신해?” “네가 날 무시하면 큰코다친다” 등, 협박성 언행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냉담함의 극단적 형태가 바로 그런 방식으로 폭발한다. 관계를 유지할 때는 단지 차가운 태도로 일관했다면, 관계를 청산하려 들 때는 피해자를 악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내가 너에게 얼마나 많은 걸 베풀었는데, 네가 나를 배신하다니”라는 말을 뱉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허위 사실을 퍼뜨리거나 노골적으로 괴롭히기도 한다.
그렇기에 피해자 입장에서는 “도대체 저 얼음같이 냉정한 사람에게서 어떻게 빠져나오고, 내 상처를 회복하지?”라는 고민이 생긴다. 우선적으로 중요한 점은, “그들의 공허함을 내가 채워 주려고 애쓸 필요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의 내부 결핍은 주변인이 어떻게 해도 메워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결핍은 상대적 부족감이 아니라,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고, 타인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아무리 애정을 베푼들, 그들은 여전히 “나를 숭배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또 한 가지는, “저 사람이 왜 이렇게 공허하고 차가운지 이해해 보려고 깊이 파고드는 것보다, 우선은 지금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돌보는 게 더 시급하다”라는 개념이다.
피해자는 종국에는 스스로를 지키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냉담하고 공허한 사람이 본인의 문제를 인식하여 노력하지 않는 이상, 그 상황이 갑작스럽게 개선되긴 어렵다.
2. 높은 지위·인기를 누리면서도 정작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배경
이제 “어떻게 나르시시스트는 저렇듯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도, 공감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남는다. 보통은 어느 정도 교류와 호의를 주고받아야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협업도 가능해진다고 믿는다.
그런데 나르시시스트 가운데는 이런 공식과 정반대의 인생을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대기업 임원, 정치인, 연예인, 학계의 스타 교수 등, 여러 분야에서 성취를 이루며 인기를 끌지만, 실제 대인관계는 피상적이고 공허한 경우다.
학자들은 이 현상을 “성공과 자기애성 인격장애가 맞물렸을 때 나타나는 역설”이라고 설명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자기 어필과 자기 과시에 매우 능숙하고, 목표지향적 추진력이 강하다.
실패에 대한 죄책감이나 두려움보다는, “나는 무조건 잘해야만 해”라는 자기 욕망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무모할 정도의 도전을 감행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특성이 운 좋게 맞아떨어지면, 대중이 “참 대범하고 탁월한 인물”이라고 평가해 준다. 그는 이런 성과를 발판으로 더 큰 영향력을 얻는다.
그런데 그것이 곧 “공감 능력”이나 “정서적 성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얻은 성취를 “나의 위엄과 우월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을 깔보거나 이용하기가 더 쉬워진다.
회사 경영진에게 인정을 받으면,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갈까?”에 골몰할 뿐, 동료의 애로 사항이나 프로젝트 진행 시 피어나는 협력 문제에는 무심하다.
정치인인 경우,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으면 “내가 잘나서 당연히 이긴 거야”라고 생각하고, 공약이나 민의를 현장에서 지키려는 관심은 줄어든다.
나르시시스트가 공감 능력을 키우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존 성공 모델이 “내가 남을 이해하지 않아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들은 대담하고, 때론 비인간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성과를 획득해 왔다.
그래서 “굳이 타인에게 감정적으로 공감할 필요 없다”라고 학습된 셈이다. 오히려 공감이 자신에게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상대가 힘들어할 때 마음 쓰면, 내 추진력이 약해지지 않을까?”라고 여긴다.
나아가 관계 안에서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늘 타인에게 돌리는 방식으로 살아왔으니, 양심과 죄책감이라는 감정도 크게 발달하지 않는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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