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붐비는 프랜차이즈 카페의 구석 자리.

식어버린 아메리카노 옆에 놓인 스마트폰 화면이 반짝인다. 헤어진 연인에게서 온 짧은 안부 메시지다. 당장이라도 보고 싶었다고, 나도 힘들었다고 답장하고 싶은 충동이 목끝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애써 화면을 엎어두고 시계를 본다. 재회 업체의 칼럼에서 배운 대로 정확히 4시간을 기다렸다가 무미건조한 단답형 답장을 보낼 참이다.

상담사는 나의 ‘프레임’이 너무 낮아서 이별을 당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상대방보다 밑바닥에 있으니, 이제부터는 철저하게 차갑고 도도한 태도로 프레임을 높여야 한다고 했다.

연애를 권력 투쟁으로 바꾸는 마법

프레임이라는 단어는 본래 심리학과 사회학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을 뜻하는 중립적인 용어다. 하지만 재회 업체들은 이 단어를 가져다 철저한 서열과 권력의 척도로 변질시켰다.

그들의 논리 속에서 연애는 더 이상 두 사람이 마음을 나누는 안식처가 아니다. 누군가는 위에 서서 군림하고, 누군가는 아래에서 매달려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다. 프레임이 높다는 것은 상대를 덜 사랑하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는 뜻으로 포장된다. 반대로 상대를 더 아끼고 관계에 헌신하는 태도는 프레임이 낮은 호구의 찌질함으로 전락한다.

이 기형적인 이론을 받아들이는 순간, 사랑했던 사람은 내가 밟고 올라서야 할 경쟁자로 바뀐다. 어떻게 하면 내 마음을 덜 들키면서 상대를 안달 나게 만들지 궁리하는 차가운 머리싸움이 시작된다.

취약함을 거세당한 관계

건강하고 깊은 애착은 서로의 취약함을 기꺼이 내보이는 과정에서 자라난다. 나의 못나고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어도 상대가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믿음, 그 단단한 신뢰가 사랑의 본질이다.

하지만 프레임을 높이라는 조언은 사람의 가장 자연스러운 감정 표현마저 죄악으로 만든다. 서운함을 토로하거나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내 프레임을 깎아먹는 패배자의 행동이 된다. 상처받지 않은 척, 너 없이도 완벽하게 잘 살고 있는 척 두꺼운 가면을 써야 한다.

슬픔을 억누르고 가짜 여유를 연기하다 보면 마음의 병이 든다. 겉으로는 상대의 연락을 통제하며 주도권을 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 가면이 벗겨져 내 진짜 초라한 밑바닥이 들통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지독한 불안에 시달리게 된다.

조종자의 탄생과 훼손되는 자아

프레임 이론의 가장 끔찍한 점은 내담자를 교묘한 심리 조종자로 만든다는 것이다.

업체는 프레임을 올리기 위해 상대방의 질투심을 유발하거나, 은근슬쩍 죄책감을 심어주거나, 상대의 단점을 짚어내어 자존감을 깎아내리라고 가르친다.

내가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서 가치를 증명하는 게 아니다. 상대의 심리적 빈틈을 찌르고 불안감을 착취해서 나에게 매달리게 만드는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의 수법이다.

이런 조언을 충실히 따르며 상대의 반응을 조종하다 보면 묘한 전능감에 취하기도 한다. 상대가 내 계산대로 움직여주고 굽히고 들어올 때 짜릿한 승리감을 느낀다.

하지만 타인의 감정을 장기말처럼 다루는 데 익숙해질수록, 정작 내 안의 인간적인 공감 능력과 순수함은 메말라간다. 누군가를 통제하려 들수록 나 자신 역시 그 통제의 굴레에 갇혀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엎어두었던 스마트폰을 다시 뒤집어본다.

시곗바늘은 아직 그들이 정해준 4시간에 다다르지 않았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수십 번 고쳐 쓴 차갑고 뾰족한 문장들이 맴돈다. 이 완벽하게 계산된 타이밍과 연출된 태도로 기어코 상대의 자존심을 꺾고 그 잘난 프레임의 꼭대기에 섰다고 치자.

그렇게 타인의 불안과 결핍을 쥐어짜 내어 억지로 얻어낸 굴복 앞에서, 당신은 과연 단 한 순간이라도 온전하게 사랑받는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을까.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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