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친구는 널 진심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
“네 가족들은 너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거 아니야?”
“나는 너만 있으면 되는데, 넌 아닌가 봐.”
연애 초반, 이런 말들은 달콤한 독약처럼 스며든다. 나를 누구보다 아끼고 이해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나조차 몰랐던 내 주변 사람들의 단점을 예리하게 짚어내는 그의 모습에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신뢰를 보낸다.
그렇게 하나둘씩 주변 사람들과의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하고, 가족 행사에 불참하며 오직 그 사람과의 시간에만 몰두한다. 당신은 이것을 ‘집중’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세상 소음을 차단하고 둘만의 견고한 성을 쌓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착각하지 마라. 이것은 성을 쌓는 것이 아니라, 감옥을 짓는 과정이다. 그는 지금 당신의 세계를 넓혀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둘러싼 울타리를 좁히며 퇴로를 차단하고 있다.
그가 쳐내는 것은 당신을 힘들게 하는 인간관계가 아니다. 그의 통제력이 미치지 않는 ‘외부의 눈’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사랑이라는 가위를 들고 당신의 팔다리를 하나씩 잘라내는 잔인한 가지치기가 시작된 것이다.
목격자가 사라진 밀실의 공포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이나 통제광들이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고립’이다. 그들이 당신의 친구를 비난하고 가족을 깎아내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해줄 목격자를 없애기 위해서다.
당신의 친구는 당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야, 그건 아닌 것 같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당신의 가족은 당신이 울고 있을 때 당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울타리다.
그는 바로 이 ‘객관적인 시선’을 두려워한다. 자신의 가스라이팅이 먹혀들지 않는 제3자가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래서 교묘하게 이간질을 시작한다. “그 친구 만나고 오면 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더라.” “네 가족들은 우리 사이를 방해만 해.”
이런 세뇌가 지속되면 당신은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다. 그 사람과 싸우지 않기 위해, 혹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는다. 그렇게 당신의 세계에는 오직 그 사람의 목소리만 남는다.
비교 대상이 사라진 당신은 판단력을 잃는다. 그가 화를 내도 “내가 잘못해서 그렇구나”라고 믿게 되고, 부당한 요구를 해도 “사랑하니까 그럴 수 있지”라고 합리화한다. 외부의 공기가 차단된 밀실에서, 그의 비정상적인 논리는 유일한 법이 되고 진리가 된다.
무인도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

“우리 둘만 아는 곳으로 떠나자.” “남들 시선 신경 쓰지 말고 우리끼리만 행복하자.” 이 말들은 낭만적인 청혼이 아니라, 무인도로 가자는 유배 명령이다.
건강한 관계는 두 사람의 세계가 만나 더 큰 우주로 확장되는 것이다. 서로의 친구를 소개하고, 상대의 가족과 어울리며 나의 세계가 상대방으로 인해 풍요로워지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반면, 병적인 관계는 수축하고 쪼그라든다. 기존에 당신이 맺고 있던 사회적 관계망을 모두 끊어내고 오직 그 사람 하나만 바라보게 만든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기생’이다. 당신을 숙주 삼아 당신의 모든 에너지를 독점하려는 기생충의 생존 방식이다.
고립된 피해자는 경제적, 정서적으로 가해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헤어지고 싶어도 돌아갈 곳이 없다는 공포가 발목을 잡는다. 친구들에게 연락하자니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고, 가족들에게는 그 사람을 변호하느라 상처를 줬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당신은 그가 만든 무인도에 갇힌 로빈슨 크루소가 된다. 구조 신호를 보낼 방법도, 배를 타고 나갈 용기도 잃어버린 채 그가 던져주는 야자수 열매 하나에 감사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는 당신에게 “너는 나 없으면 안 돼”라고 속삭이지만, 사실은 “내가 널 그렇게 만들었어”가 맞는 말이다. 당신을 무력하게 만듦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것. 그것이 그들이 말하는 ‘단둘만의 낙원’의 실체다.
감옥 문을 여는 열쇠는 당신에게 있다

지금 휴대전화 주소록을 열어보라. 그를 만나기 전에는 매일같이 수다를 떨던 친구, 밥은 먹었냐고 묻던 선배, 주말마다 보던 가족들의 이름이 보일 것이다. 그들과의 거리가 멀어진 이유가 오직 ‘그 사람의 싫어함’ 때문이라면, 당신은 지금 위험한 상태다.
사랑은 당신을 숨기지 않는다. 당신이 맺고 있는 모든 관계 속에서 당신이 빛나기를 바란다. 당신의 친구를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사랑하는 친구라면 자신도 존중하려 노력하는 것이 정상이다.
“너를 위해서”라는 핑계로 당신을 외딴섬에 가두려는 사람에게 속지 마라. 낙원은 폐쇄된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다. 바람이 통하고, 햇살이 들고, 사람들이 오가는 개방된 곳에만 행복은 깃든다.
지금 당장 그가 싫어하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라. 가족에게 안부를 물어라. 그가 화를 낸다면, 그 분노가 바로 그가 당신을 통제하려 했다는 증거다. 그의 허락을 구하지 말고 당신의 관계를 복원하라.
외부와 연결된 다리가 하나라도 남아있다면 당신은 언제든 그 섬에서 탈출할 수 있다. 감옥의 문은 밖에서 잠긴 것이 아니다. 당신이 두려움 때문에 안에서 걸어 잠갔을 뿐이다. 빗장을 풀고 세상 밖으로 나와라.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직 거기에 있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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