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양심’ 이 있을까? 무양심과 공감 부재의 심리학

사람은 누구나 양심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갖고 있다. 이 목소리는 때때로 “이건 옳지 않아”라고 경고하거나, 때로는 “이 행동은 네가 책임져야 하지 않겠어?”라고 묻는다. 이를 두고 “마음속 반짝이는 빛”이라고 부르는 이도 있고, “내면의 경찰관”이라고 표현하는 이도 있다.

한편, 어떤 이들은 “양심은 타고나는 걸까, 만들어지는 걸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품기도 한다. 분명 양심은 보이지 않지만, 눈앞의 유혹이나 잘못을 저지르는 순간 자각되는 강력한 감각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오감(五感)이나 직관(제6감)과 구분하여 “제7감”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인간됨을 구성하는 가장 큰 요소가 바로 이 양심, 즉 죄책감과 책임감,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심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정말 모든 사람에게 양심이 존재할까? 주변을 살펴보면, 남을 이용하거나 배신하고도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 듯 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는 사소한 일로 타인을 괴롭히거나 혹은 이득을 취하고도 태연하게 지낸다.

누군가가 그에게 “이건 부당해 보이는데”라고 말하면, 되레 “네가 뭔데 날 평가해?”라며 적반하장 태도를 취한다.

이런 사람은 마음 한편에서 “이건 잘못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 걸까? 또, ‘타인에게 해를 끼쳤다’는 사실을 바라보면서도 괴롭지 않은 걸까? 실제로 “무양심”으로 표현되는 사람들은 죄책감을 못 느낀다고 한다.

소시오패스나 나르시시스트에게 나타나는 이 특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들이 타인을 마음대로 조종하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과정을 거치면서도 별다른 거리낌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이번 글은 “양심이라는 제7감”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위해 준비되었다. 전작 글에서 “우리는 왜 나르시시스트에게 끌리고 상처받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졌다면, 이번에는 ‘무양심’ 내지 ‘공감 부재’ 상태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본다.

나르시시스트의 내면에 정말 “양심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혹은, 죄책감과 동정심이 없는 상태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양심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양심이 자리 잡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부터 살펴보자.


1. 양심이란 무엇인가?

양심은 간단히 말해, “내가 타인에게 해를 끼쳤을 때, 혹은 도덕적 규범을 어겼을 때 느끼는 죄책감”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누군가를 속였다거나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혹은 진실을 왜곡한 일이 들통 났을 때, 우리 안에 있는 내부의 알람이 울리는 셈이다.

이 알람은 불안감, 죄의식, 미안함 등으로 나타나며, 그 자체가 불쾌한 감정이라서 “난 다시 이런 행동을 하면 안 되겠다”라고 다짐하게 만든다. 바로 이 기능이 우리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인간답게” 살도록 해 주는 토대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사소한 장난으로 친구에게 상처를 줬을 때를 떠올려 보자. 잠시 통쾌하거나 웃겼을지 모르지만, 금방 마음이 편치 않아진다.

“괜한 짓을 했나?”라는 후회가 올라와, 친구에게 미안해하며 사과를 건네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죄책감이 무거워 몇 날 며칠 잠을 설치기도 한다. 이런 죄책감은 우리를 “다음에는 친구를 더 소중히 여기고, 함부로 대하지 말자”라고 가르치는 내면의 교과서다.

그렇다면 양심은 태어날 때부터 자동으로 주어지는 걸까? 어떤 학자는 인간에게 “선천적인 도덕 감각”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반면, 누군가는 “사회적 학습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부모나 주변 어른들에게 ‘착하게 행동해라’, ‘잘못했으면 사과하라’는 말을 자주 듣고, 이에 맞춰 행동하면서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발달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양심은 선천적인 기질과 후천적인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형성된다고 볼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지닌 기질이 있고, 그 기질 위에 ‘공감과 배려’를 강조하는 부모의 양육, 그리고 사회적 규범이 더해져 “양심”이라는 인격적 능력이 조성된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자주 이런 경험담이 들린다. “저 사람은 남에게 큰 해를 끼치고도 밤잠을 잘만 자더라.” 또는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면서, 마치 정의로운 사람인 양 포장한다.” 이럴 때 사람들은 “어떻게 양심의 가책을 하나도 못 느끼지?”라며 당혹해한다.

바로 이 지점이 소시오패스나 나르시시스트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 이들은 공감 능력이 부족하며, 상대방이 당하는 고통을 진정으로 함께 느끼지 못한다.

설령 피해자가 눈앞에서 울부짖어도, “저건 저 사람 문제지, 내 알 바 아니야”라든가 “적당히 달래 주면 되겠지” 같은 반응을 보인다. 결국 ‘내 잘못이 아니다’라는 태도로 일관하며, 죄책감을 덜어낸다.


2. 무양심 상태로 보는 나르시시스트의 내면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애성 인격”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사랑한다. “나는 특별하다, 우월하다”는 믿음이 강하고, 이를 위해 남을 이용하기도 한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는 도구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어떤 나르시시스트는 주변 동료들의 역량을 가로채 자기 공으로 포장하거나, 가족이나 연인을 ‘자신의 이미지를 빛낼 액세서리’ 정도로 여긴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책임을 지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대신, “넌 내가 시킨 대로 하지 않아서 이 사단이 났어”라며 책임을 전가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진정 양심이 없는 걸까, 아니면 단지 무시하는 걸까? 학계에서는 나르시시스트가 “공감 결여”를 심하게 보이고, 따라서 타인에게 해를 주어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이는 소시오패스의 무감각과 유사하게 보이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나르시시스트는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말이나 조종을 일삼으면서도 별다른 가책이 없는 상태”를 자주 연출한다. 누군가는 “그런 태도가 정말 미안함 자체가 없는 걸까?”라고 묻지만, 나르시시스트는 남을 속이거나 이용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고, 어느새 그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된다.

왜 그러냐면, 나르시시스트의 머릿속 우선순위는 언제나 “나는 잘나야 한다”, “나는 특별해야 한다”라는 데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내가 옳고, 내가 빛나야 하며, 내게 반대하는 사람은 틀렸다”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지니곤 한다.

자연스레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고 상처를 주었을 때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야?” 하고 치부해 버린다. 게다가, 주변에서 거세게 비판을 하거나 따져 물어도, 적당한 변명 또는 반격으로 넘어가려 한다. 가령 “내 진심을 몰라주니 너희가 더 문제”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결과적으로, 죄책감이란 감정은 자기중심적 사고에 밀려나게 된다. 죄책감은 내가 누군가에게 불편을 주었거나 해로운 행동을 해서,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감정이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에게는 “내가 이런 상황에서 책임을 질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우선적으로 깔려 있지 않다. 그보다는 “나는 잘못이 없어. 상대가 예민한 거야. 혹은 상대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 거야”라는 식의 자기합리화가 앞선다. 그러니 무양심자로 보이기 십상이다.

물론 모든 나르시시스트가 똑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이들이 대체로 상대의 고통을 크게 개의치 않고 죄책감 없이 행동한다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3. 현실 사례: ‘양심의 존재’ vs. ‘무양심자’의 결정적 차이

한 상담 사례를 가정해 보자. A라는 사람이 잦은 갈등 끝에 배우자 B에게 화를 내었다. 그러자 B가 눈물을 흘리며 방에 틀어박혔다.

시간이 지나면서 A는 “내가 너무 심했나?”라는 생각을 하고 미안함을 느낀다. A는 사과를 건네고, 행동을 개선할 의지를 표현한다.

이렇듯 “미안하다”고 느끼는 건 마음속에서 “내가 지금 상대에게 해를 끼쳤구나”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A는 그 감정을 통해 “다음엔 조절해야겠다”라는 성찰로 이어진다.

그렇지만 무양심 상태라면, 이 상황이 전혀 다르게 펼쳐진다.

가령 나르시시스트 성향의 사람 C가, 배우자 D에게 심한 모욕과 비난을 쏟아붓고, D가 울어도 “네가 어리석게 굴었으니 그 정도는 당연하지 않나?”라고 한다.

D가 “이건 너무 심하지 않아?”라고 항변하면, C는 “내가 심했다고? 말도 안 돼. 네가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거잖아”라고 역공한다.

이때 C는 조금의 미안함도 없이, 책임을 오히려 D에게 뒤집어씌운다.

둘의 결정적 차이는 A는 자신이 끼친 피해를 돌이켜 보고 죄책감을 느끼지만, C는 자기합리화로 무마하고 죄책감에서 도망간다는 데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죄책감을 느끼는 건 아니다. 무양심자는 “아예 못 느끼는 건지, 아니면 생길 만하면 곧바로 무시해 버리는 건지” 애매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둘 다 같은 모습으로 드러난다. 상대가 상처를 받든 말든, 책임은 나 몰라라 하고,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네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어떤 나르시시스트는 대외적 이미지 관리를 위해 “표면상 사과”를 할 때도 있다.

예를 들어, “그래, 알았어, 미안해”라고 말은 하는데, 그 뒤로 전혀 행동을 고치지 않는다. 입에 발린 사과라는 점이 곧 드러난다. 그리고 이는 ‘실질적인 죄책감’과 거리가 멀다.

이렇듯, 양심의 존재 여부가 인간관계에서 얼마나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 알 수 있다. 양심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실수했을 때 바로잡으려 하고, 남에게 더 이상의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애쓴다.

반면 양심이 거의 작동하지 않는 나르시시스트나 소시오패스는 누군가에게 상처를 줘도 그저 “이득만 챙기면 되지” 하는 태도를 보이거나, 심지어 상대가 항의하면 “우습군” 하고 뒤돌아설 수 있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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