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사랑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어찌 보면 식물을 대하는 것보다 사랑을 모르는 듯하다. 적어도 우리가 식물을 키울 땐 그 식물이 얼마큼의 물을 주어야 하는지, 햇볕은 얼마나 필요한지, 온도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식물의 특성, 식물이 원하는 것을 비교적 명확하게 알고 있다.
물론 잘 알고 있고 주의를 했음에도 식물이 내 마음대로 자라지 않는 경우도 발생하지만 대부분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식물은 문제없이 잘 자란다.
식물과 사랑의 공통점

당신이 식물을 키우는데 식물의 특성에 대한 고민 없이 “식물은 물이 필수야”는 논리로 식물에게 많은 양의 물을 준다면 어떤 식물은 잘 자랄 수 있겠지만 반대로 어떤 식물은 뿌리가 상해 죽게 될 것이다. 그 반대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랑에도 식물을 키우는 것과 공통점이 있다.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이 아주 많더라도 상대방이 이를 받아줄 수 없다면 이는 부담으로 이어진다. 많은 사람들이 돌려받지 않아도 되니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상대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면 감정의 부채로 남게 된다.
아무리 돌려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도 자신의 노력에 비례해서 기대를 갖기 마련이다. 상대는 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한 컵이지만 내가 많이 가지고 있으니 더 주겠다고 두 컵을 주면 한 컵은 그저 밖으로 흘러넘쳐 버려지게 된다.
나중에 서운한 마음을 갖는 이유가 나는 두 컵을 주었는데 상대는 나에게 한 컵만 주었다는 식으로 표출되는데 이는 상대가 가진 컵의 크기를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내가 원하는 만큼(혹은 받고 싶은 만큼) 주었기 때문에 발생한다.
나는 노력했는데 그 사람은 왜 떠나갔을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과하게 상대에게 사랑을 주었음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 사랑이 물이라 한다면 햇볕은 상대가 원하는 환경이다. 어떤 식물은 햇볕이 강해야 잘 자라지만 반면 어떤 식물은 햇볕에 너무 오래 노출되면 잎사귀가 말라죽는다. 사랑에서도 연인이 원하는 행동이나 언어 선택, 공감 등 사랑 이외에도 행동적으로 조절해야 할 것이 있다.
대부분 사랑에 실패한다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물과 햇볕을 주었는데 왜 식물이 죽었냐고 하소연하는 것과 같다. 그들이 필요한 정도를 파악하지 못하다 보니 나름의 노력을 했는데도 사랑을 이루지 못하거나 떠나보낸다.
보통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인터넷을 찾아보거나 낭만적인 영화를 참고하거나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식물과 나의 식물이 다르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좋다는 것을 따라 하기만 한다.
‘얼마큼 줄 수 있느냐’가 아닌 ‘얼마큼 받을 수 있느냐‘

우리가 사랑을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나의 마음의 크기가 아니다. 내 마음이 아무리 큰 들 상대가 받아줄 수 있는 여력이 없다면 이는 넘쳐 버려지는 물과 다름없다. 연락을 자주 안 하는 사람에게 아무리 바빠도 화장실 갈 시간에 연락도 못하냐고 화를 내기도 한다.
집중하면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사람도 있고 너무 바쁜 나머지 심리적으로 연락을 할 여력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나의 기준에 맞춰 상대가 맞춰주길 바라다보면 상대는 자신은 채워줄 수 없다는 이야기로 관계를 종결하려 한다.
뒤늦게 연락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지만 이미 나는 연락을 자주 원했던 사람이기에 상대는 그걸 참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아서 그 말은 통하지 않기에 아무리 설득해도 관계가 회복되지 못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생각해야 할 중요한 요소는 내가 얼마큼 사랑하느냐가 아닌 상대가 얼마큼 받아줄 수 있느냐를 고려해야 한다. 식물을 키우듯 사랑하라, 적어도 우린 식물을 키울 때 그 식물이 얼마큼의 물과 햇볕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
상대가 얼마큼의 사랑(물)과 어떠한 행동(햇볕)을 원하는지 먼저 고려할 때 당신의 사랑은 보다 기능적인 사랑으로 발전할 것이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