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먼저 받는 상담

약속은 보통 책임을 맡은 사람이 한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이야기를 함부로 판단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자신이 제공하는 상담의 범위와 한계를 설명한다. 내담자의 정보를 보호하고, 예상과 다른 일이 생기면 함께 검토하겠다는 약속도 상담 관계에 포함된다.

그런데 아래 메시지에서는 약속해야 하는 사람이 내담자뿐이다.

한 재회상담 업체는 문제를 제기한 내담자에게 더 이상 상담을 신청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고 알렸다. 그러면서 다시 상담받고 싶다면 다섯 가지 조건에 동의할 수 있는지 물었다.

컴플레인이나 환불을 요구하지 않을 것. 상담사의 지침을 100퍼센트 지킬 것. 원하는 결과가 없어도 긍정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할 것. 칼럼과 이론을 반복해서 공부할 것. 자신의 내적 프레임을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

이를 지키지 않으면 모든 서비스가 즉시 중단된다는 조건까지 붙었다.

이것은 상담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몇 가지 당부가 아니다. 앞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말할 수 있고, 누가 판단하며, 누가 책임질지를 미리 정해두는 문서에 가깝다.

그리고 그 권한은 모두 한쪽에만 주어진다.

다섯 가지 약속에서 사라진 것들

첫 번째 조건은 내담자에게서 말할 권리를 가져간다.

상담을 받다 보면 불만이 생길 수 있다. 설명과 실제 상담 내용이 다를 수도 있고, 지침이 자신의 상황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약속된 서비스가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이때 내담자는 무엇이 불편했는지 말하고 답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업체는 컴플레인 메일을 보냈다는 사실 자체를 신뢰가 사라진 증거로 판단했다. 문제 제기의 내용보다 문제를 제기한 행동을 먼저 평가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불만을 말하는 순간 신뢰할 수 없는 내담자가 된다. 상담을 계속 받고 싶다면 불만이 있어도 침묵해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선택할 권리를 가져간다.

상담사의 지침을 참고하는 것과 100퍼센트 복종하는 것은 다르다. 사람의 관계는 상담 문서에 적힌 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상대가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일 수도 있고, 내담자가 지침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멈추고 다시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지침을 절대적으로 지키겠다고 약속하면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을 바꾸는 순간 약속을 어긴 사람이 된다.

지침이 내 관계에 적절한지 묻는 일보다 내가 상담사의 말을 제대로 따르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앞선다. 내담자는 상담의 주체가 아니라 지침을 실행하는 사람이 된다.

세 번째 조건은 결과를 평가할 권리를 가져간다.

좋은 결과가 없더라도 긍정적인 과정으로 생각하겠다는 약속은 어떤 결과가 나오든 상담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겠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연락이 오지 않아도 배운 것이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재회하지 못해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경험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침 이후 관계가 악화되어도 그 과정에 긍정적인 의미를 붙여야 한다.

내담자가 힘든 경험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찾는 것과 업체가 서비스 제공의 조건으로 긍정적인 해석을 요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서비스가 도움이 되었는지 판단하는 사람은 서비스를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 업체가 미리 결론을 정해줄 수는 없다.

네 번째 조건은 의심할 권리를 가져간다.

칼럼과 이론을 반복해서 학습하라는 요구는 상담사의 판단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준비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컴플레인을 제기한 내담자에게 이 조건이 붙으면 뜻이 달라진다.

상담 내용에 의문이 생긴 이유가 설명의 부족이나 지침의 문제가 아니라 내담자가 이론을 충분히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전제가 만들어진다. 납득하지 못했다면 더 읽어야 하고, 반대한다면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

이론이 현실에 맞는지 검토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이론에 맞춰 이해할 때까지 반복해서 읽게 된다.

다섯 번째 조건은 자신의 감정을 해석할 권리를 가져간다.

상담에 실망하거나 지침이 불안하게 느껴질 때, 그 감정은 상담 방식을 돌아보게 하는 신호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불편함을 내적 프레임의 불안정과 연결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화가 나는 것은 부당한 일을 겪어서가 아니라 내적 프레임이 흔들렸기 때문이 된다. 상담자를 믿기 어려운 것은 설명이 납득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기 때문이 된다.

상담에 대한 문제 제기가 다시 내담자의 심리 문제로 돌아온다.

이렇게 다섯 가지 조건을 모두 받아들이면 내담자는 말할 수도, 거절할 수도, 결과를 평가할 수도, 이론을 의심할 수도 없다.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마저 업체가 만든 용어로 해석해야 한다.

무엇이 일어나도 업체는 틀리지 않는 구조

이 약속에는 결과에 따른 여러 갈래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도착하는 곳은 하나다.

재회에 성공하면 상담사의 분석과 지침이 정확했던 것이 된다. 재회하지 못하면 내담자가 지침을 완벽하게 지키지 않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지침을 그대로 따랐는데도 결과가 없다면 좋은 결과만큼 가치 있는 긍정적인 과정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내담자가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이론을 충분히 학습하지 않았거나 내적 프레임이 불안정한 사람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불만을 말하면 처음부터 신뢰가 없었던 사람이 된다.

어떤 결과에서도 상담자의 판단은 검토 대상으로 남지 않는다.

오직 내담자의 신뢰, 수행 능력, 이해도와 마음가짐만 평가된다. 상담이 기대한 결과를 만들지 못했을 때조차 업체가 설명해야 할 일은 사라지고, 내담자가 반성해야 할 이유만 늘어난다.

이런 구조는 나중에 상담을 옹호하게 만드는 힘도 갖는다.

상담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인정하려면 자신이 했던 다섯 가지 약속 가운데 하나를 깨야 하기 때문이다. 결과가 나빴다고 말하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는 약속을 어긴 것이 된다. 지침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100퍼센트 믿고 따르겠다는 약속에서 벗어난다. 화가 난다고 말하면 내적 프레임을 안정시키지 못한 사람이 된다.

업체를 의심하기보다 자신을 탓하는 편이 약속을 지킨 ‘좋은 내담자’로 남기 쉽다.

상담을 받은 뒤에도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저에게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말하게 되는 배경에는 이런 언어가 놓여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정말 자신의 결론인지, 미리 요구받은 결론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동의했으니 괜찮다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 이유

업체는 내담자에게 조건을 보여주고 동의 여부를 물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내담자가 스스로 동의한 뒤 상담을 신청했다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동의가 어떤 상황에서 이루어지는지도 봐야 한다.

이별로 불안한 사람에게 해당 업체의 상담이 재회를 위한 마지막 방법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미 상담료를 지불했고, 오랫동안 칼럼과 후기를 읽었으며, 이곳만이 상대의 심리를 제대로 이해한다고 믿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모든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선택지는 겉으로 두 개다. 다섯 가지 약속에 동의하고 상담을 계속하거나, 신뢰가 없는 내담자로 남아 모든 서비스를 포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담자가 이 업체 없이는 재회할 수 없다고 믿는 상태라면 두 선택의 무게는 같지 않다. 조건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상담받을 기회를 잃지 않기 위해 동의할 수 있다.

동의 버튼을 눌렀다는 사실만으로 그 관계가 대등해지는 것은 아니다.

신뢰는 책임을 면제하는 말이 아니다

신뢰는 상대가 언제나 옳다고 믿는 상태가 아니다.

상대가 잘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잘못이 생기면 설명하고 책임질 것이라고 믿는 것이 신뢰다. 질문했을 때 무시당하지 않고, 의견이 달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으며, 문제를 말해도 관계가 즉시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경험에서 생긴다.

컴플레인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신뢰가 아니다. 지침을 100퍼센트 지키겠다는 약속도 신뢰가 아니다. 결과가 나빠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는 말은 더더욱 신뢰가 아니다.

그것은 상담자의 판단을 검토하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정말 신뢰를 회복하고 싶었다면 약속은 업체도 해야 했다.

내담자가 제기한 문제에 답하겠다. 지침이 적절했는지 다시 살펴보겠다.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상담자의 판단도 검토하겠다. 내담자가 질문하거나 거절하더라도 이해력과 성격의 문제로 돌리지 않겠다.

그러나 캡처된 메시지에는 그런 약속이 하나도 없다.

내담자에게는 침묵과 복종, 긍정적인 해석과 반복 학습을 요구하면서 업체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문제가 다시 생겼을 때 무엇을 설명하고 어떻게 책임질지도 말하지 않는다.

신뢰 관계를 원한다는 문장 뒤에서 실제로 요구한 것은 책임을 묻지 않는 관계였다.

상담은 내담자가 상담자의 이론을 지켜주는 일이 아니다. 상담자의 설명과 지침이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는지 검토받는 일이다.

내담자가 입을 다물어야 유지되는 상담이라면, 신뢰가 부족한 쪽은 질문한 사람이 아니다.

질문을 견디지 못한 상담이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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