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는 말로 상황을 덮어버리는 나르시시스트의 이기심
주말 저녁, 차 안. 며칠 전부터 속을 끓이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그가 친구들과 술을 마실 때마다 연락이 끊기는 문제다.
- “오빠, 어제도 새벽까지 연락 안 된 거 걱정 많이 했어. 다음부터는 중간에 문자 한 통이라도 남겨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가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인다.
- “어, 알았어. 미안해. 내가 잘못했네. 이제 그만 얘기하자.”
사과라는 이름의 입막음
사과를 받았는데 마음이 더 답답해진다. 이 대화에서 그가 내뱉은 ‘미안해’라는 단어는 반성이 아니다. 귀찮은 상황을 빨리 넘기고 싶을 때 누르는 종료 버튼에 가깝다.
내현성 나르시시스트는 갈등 상황에 머무르는 것 자체를 피곤해한다. 내 행동의 어떤 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짚어보고 고치는 수고를 하느니, 가장 빠른 지름길인 사과를 던져 대화를 차단해 버린다. 갈등의 원인을 해결하려는 의지 없이, 단지 지금 이 불편한 공기를 없애기 위해 내놓는 이기적인 회피다.
화를 내던 사람이 눈치를 보게 될 때
-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잖아. 매번 이러니까…”
말을 이어가려 하자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인다.
- “아니,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대체 나보고 어떡하라고 이래? 무릎이라도 꿇을까?”
순식간에 대화의 초점이 어긋난다. 문제의 핵심이었던 ‘연락 두절’은 사라지고, 사과를 쿨하게 받아주지 않는 옹졸함만 남는다.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받고 행동의 변화를 원했을 뿐인데, 졸지에 지난 일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피곤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기가 질려 입을 다물면 그는 그제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차창 밖을 내다본다. 대화의 흐름을 강제로 끊어내고 상황을 자기 뜻대로 통제했다는 안도감이다. 기분 나쁜 행동을 한 건 그 사람인데, 눈치를 보며 분위기를 살피는 건 남겨진 사람의 몫이 된다.
의미 없는 사과를 받아주지 않을 때
얼마 후,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 또다시 연락 없이 늦은 그가 집에 돌아와 겉옷을 벗으며 툭 던진다.
- “늦어서 미안해. 피곤하다, 자자.”
예전 같으면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며 서운함을 설명하려 애썼을 거다. 이번에는 짧게 대답하고 침대 옆 스탠드 불을 끈다.
- “알았어. 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그를 남겨두고 먼저 눈을 감는다.
영혼 없는 “미안해”로 상황을 무마하려는 사람에게 매달려 내 감정의 타당성을 입증하려 애쓸 필요 없다. 애초에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 진심을 쏟아붓는 일은 멈추는 게 맞다.
빈껍데기 같은 사과를 던져놓고 스스로를 관대한 어른이라 포장하는 얕은 수작에 더 이상 장단을 맞춰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굳게 닫힌 입술과 단호한 행동이, 백 마디 설명보다 내 평온한 일상을 지켜내는 훨씬 확실한 방법이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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