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끝났습니다. 당신은 그 지옥에서 탈출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분명히 그는 당신의 삶에서 물리적으로 퇴장했는데, 당신은 여전히 그에게 붙잡혀 있습니다.

그가 당신의 집을 떠난 것이 아니라, 아예 당신의 머릿속으로 이사를 들어온 것 같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볼 때, 당신은 당신을 보지 못합니다. 당신은 그가 당신을 바라보던 그 경멸적인 시선으로, 당신 스스로를 바라봅니다. ‘이러니까 내가 그 모양이지.’, ‘살은 또 언제 이렇게 쪘어.’, ‘누가 이런 나를 사랑하겠어.’

이 목소리. 이 날카롭고, 비판적이며, 당신의 결점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는 이 냉혹한 목소리. 이거, 정말 당신의 목소리인가요?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목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당신의 내면에 심어놓고 떠난, 일종의 ‘심리적 기생충’ 입니다. 그는 당신의 자존감이라는 집을 통째로 무너뜨린 것도 모자라, 그 폐허 위에 자신의 목소리라는 유령을 상주시키고 떠났습니다.

당신이 지금 겪고 있는 이 극심한 자기혐오와 무가치함은, 당신의 본래 성격이나 결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가 아주 치밀하고, 체계적이며, 악의적으로 설계한 심리적 식민화의 후유증입니다.

자존감을 다시 세운다는 것은, 긍정적인 자기 암시를 몇 번 외치는 그런 안일한 작업이 아닙니다. 이것은 당신의 영토를 불법 점거하고 있는 그 ‘내면의 비평가’를 식별하고, 그를 당신의 머릿속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아주 치열하고 거룩한 ‘독립 전쟁’ 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스스로를 미워하게 되었나

이 전쟁에서 이기려면, 우리가 어떻게 졌는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왜 지금, 스스로를 이토록 미워하게 되었을까요? 당신이 원래부터 자존감이 낮았던 걸까요?

천만에요. 당신은 아마도 그 반대였을 겁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책임감이 강하며, 사랑을 줄 줄 아는, 단단하고 빛나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랬기에 그는 당신을 ‘타깃’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는 당신의 그 빛을 부러워했고, 그것을 훔치고 싶어 했습니다.

그의 파괴 공정은 지극히 정교했습니다.

1단계: 당신을 신전에 올리다 (이상화) 그는 당신을 숭배했습니다. “당신 같은 여자는 내 생전 처음이야.”, “당신은 너무 완벽해, 너무 똑똑해.” 그는 당신의 모든 장점을 돋보기로 확대해 찬양했습니다. 당신은 이 모든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죠.

하지만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루밍(Grooming)’ 이었습니다. 그는 당신을 아주 높은 신전의 제단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그곳에서 당신을 밀어 떨어뜨릴 때, 그 낙차가 훨씬 더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당신에게 **‘완벽해야만 한다’**는 보이지 않는 족쇄를 채웠습니다.

2단계: 당신의 결함을 발명하다 (평가절하) 당신이 그 완벽함에서 단 한 치라도 벗어나는 순간(물론, 인간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죠), 그는 돌변했습니다. 당신이 피곤한 기색을 보이거나, 그와 다른 의견을 내는 순간, 그의 숭배는 차가운 비난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신, 생각보다 별거 아니네.” “요즘 왜 이렇게 예민해? 살쪄서 그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멍청한 것 같아.”

당신은 그가 설정한 ‘완벽한 여성’이라는 기준에서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잘못이라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은 그 신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의 비난을 모두 수용하고 스스로를 ‘수정’하기 시작했습니다.

3D단계: 당신 스스로 당신을 공격하게 하다 (내면화) 이것이 가장 잔인한 마지막 단계입니다. 당신은 그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그보다 먼저 당신 자신을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당신의 살찐 것을 지적하기 전에, 당신이 먼저 거울을 보며 스스로를 경멸했습니다. 그가 당신의 실수를 비웃기 전에, 당신이 먼저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탓했습니다.

축하합니다. 그는 이제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당신이, 그를 대신해, 당신 스스로를 학대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가 떠난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 남은 그 날카로운 목소리는, 바로 이 마지막 단계에서 당신이 스스로를 공격하기 위해 학습했던 ‘그의 목소리’입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대본은 여전히 당신의 무의식 속에서 24시간 내내 상연되고 있습니다.


당신 안의 그 목소리, 비평가를 해고하는 법

자존감을 다시 세우는 첫 번째 작업은,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것이 아닌 것을 ‘분리’ 하고 ‘버리는’ 것입니다. 당신의 집을 청소하려면, 일단 쓰레기부터 내다 버려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첫째, 그 목소리를 ‘타자화’해야 합니다. 당신의 내면에서 “너는 정말 한심해”라는 생각이 들 때, 그것을 당신의 생각으로 받아들이지 마세요. 그 즉시 멈춰 서서, 그 생각에 이름을 붙이세요. “아, 또 그(혹은 그의 이름) 가 말하기 시작했네.” 혹은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비평가’ 의 목소리네.”

이것은 아주 강력한 인지적 분리 기술입니다. 당신은 그 생각과 당신 자신 사이에 안전거리를 확보하게 됩니다. 당신은 그 생각이 아니라, 그 생각을 ‘관찰’하는 사람이 됩니다. 당신이 그를 당신의 내면에서 쫓아낼 수는 없어도, 그를 거실 중앙이 아닌, 현관 앞 먼지투성이 발 매트 위에 세워둘 수는 있습니다.

둘째, 그 목소리에 ‘반박’해야 합니다. 분리에 성공했다면, 이제는 대응할 차례입니다. 그 목소리가 “넌 이것밖에 안 돼”라고 말할 때, 예전처럼 “맞아, 난 이것밖에 안 되지…”라며 수긍하지 마세요.

아주 작고, 유치하더라도, 반드시 반박하세요. “아니. 난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 아니야.” “난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전쟁을 치르고 살아남은 사람이야.” “닥쳐. 그건 네 생각이지, 내 생각이 아니야.”

이것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뇌는, 당신이 입 밖으로 내는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그가 심어놓은 거짓된 신경 회로를 끊어내고, 진실에 기반한 새로운 신경 회로를 다시 연결하는, 일종의 뇌 수술을 하고 있는 겁니다. 소리 내어 말할수록, 그 효과는 강력해집니다.


‘나’를 찾는 아주 사소한 고고학

그의 목소리라는 거대한 쓰레기를 치우고 나면, 당신의 내면은 아마 텅 빈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모든 것이 그를 중심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가 사라진 지금,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원하며, 어떤 사람인지조차 가물가물할 겁니다. (62번 글, ‘정체성 실향민’ 상태와 연결됩니다.)

괜찮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텅 비어버린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채울 수 있는 깨끗한 공간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자존감을 다시 세우는 두 번째 작업은, 잃어버린 ‘나’의 조각들을 되찾아오는 ‘고고학’ 입니다. 당신은 그가 묻어버린 당신의 원본을 발굴해야 합니다.

거창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자존감은 ‘나는 위대하다’는 거대한 구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내가 마실 커피를 선택할 수 있다’는 아주 사소한 자기 결정권의 합에서 옵니다.

그를 만나기 전, 당신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그가 “유치하다”고 비난해서 끊었던 드라마가 있나요? 오늘 밤 당장 그 드라마를 정주행하세요. 그가 “시끄럽다”고 해서 듣지 못했던 댄스 음악이 있나요? 지금 당장 이어폰을 끼고 볼륨을 높이세요. 그가 “돈 아깝다”고 해서 사지 못했던 예쁜 쓰레기, 혹은 향초가 있나요? 오늘 당신을 위해 그것을 선물하세요.

이것은 단순한 ‘기분 전환’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가 짓밟았던 ‘당신의 취향’을 복권(復權) 시키는 행위입니다. 그가 묵살했던 ‘당신의 욕구’를 존중하는 행위입니다.

이 사소하고도 구체적인 선택들이 하루하루 쌓일 때, 당신의 뇌는 다시 학습합니다. “아, 나의 선택은 존중받아 마땅하구나.”, “나의 욕구는 중요한 것이구나.”

자존감은, 바로 이 ‘존중받는 경험’ 이 내 안에 축적될 때 자라나는 근육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불을,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당신은 그동안 그에게 쏟아부었던 그 모든 에너지를 이제 당신 자신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당신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공감 능력을 가졌을 겁니다. 당신은 그의 그 미묘한 기분 변화까지 알아채고, 그의 상처를 보듬으려 애썼습니다. 그의 그 차가운 내면을, 당신의 온기로 어떻게든 데워보려고 당신 자신을 태웠습니다.

이제 그 따뜻한 불을, 당신 자신에게 돌려주세요. 당신은 지금,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습니다.

당신이 실수할 때, 그가 하던 방식대로 당신을 몰아세우지 마세요. “바보같이, 왜 또 그 생각을 했어?” (X)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넌 지금 아주 힘든 시간을 견뎌내고 있는 중이야.” (O)

당신이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에 빠졌을 때, “넌 정말 게을러 터졌어.” (X) “정말 고생 많았어. 오늘은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자. 그래도 돼.” (O)

당신은, 당신이 그토록 돌보고 싶어 했던 그에게 했던 것의 백 분의 일이라도, 이제 당신 자신에게 해주어야 합니다. 당신이 그에게 주려 했던 그 가장 따 ‘뜻한 이불을, 이제는 당신이 덮으세요.

당신이 스스로를 대하는 방식이, 세상이 당신을 대하는 방식이 될 겁니다.

거울을 다시 보세요. 그곳에는 더 이상 그의 경멸 어린 시선도, 그에게 주눅 든 당신도 없습니다. 그저, 지독한 전쟁에서 살아남아, 폐허 위에 다시 집을 짓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위대한 생존자가 서 있을 뿐입니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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