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에게 상처받은 당신에게…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가 끝난 후, 당신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본다.

새벽 2시. 잠은 오지 않고, 머릿속에서는 같은 질문이 맴돈다.

‘내가 너무 순진했나?’ ‘내가 너무 쉽게 믿었나?’ ‘내가 바보였나?’

휴대폰을 켜서 친구들과의 단톡방을 본다. 그들이 몇 달 전부터 보냈던 경고의 메시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 “야, 그 사람 좀 이상한 것 같은데…”
  • “너무 퍼주지 마. 이용당하는 거 아니야?”
  • “정신 차려. 그 사람이 너한테 해준 게 뭔데?”

그때는 몰랐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았다.

당신은 그저 사랑을 믿었고, 사람의 선한 면을 보려 했으며, 관계를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 당신의 가장 좋은 점들이 관계를 망친 가장 큰 약점처럼 느껴진다.

당신의 공감 능력은 어리석음이 되었다. 당신의 신뢰는 경솔함이 되었다. 당신의 헌신은 자기 파괴적 의존이 되었다.

마치 은행강도에게 털린 은행원이 ‘내가 금고 비밀번호를 너무 쉽게 설정했나’ 자책하는 것처럼, 당신은 피해자인데도 스스로를 가해자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진실은 이렇다.

나르시시스트의 세계에서, 당신의 선량함은 존중받아야 할 미덕이 아니라 착취해야 할 자원이었다. 그들은 당신의 빛을 보고 나방처럼 다가왔다. 그 빛으로 자신을 밝히고, 따뜻하게 하고, 특별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빛이 약해지자 다른 빛을 찾아 떠났다.

이것은 당신이 나약해서가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당신이 너무나 온전한 것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선량함이 무기가 될 때: 한 사람의 장점이 착취되는 방식

"나르시시스트가 당신의 장점을 무기로 만드는 방식. 당신의 신뢰는 거짓말의 무대가 되고, 공감 능력은 그의 면죄부가 되며, 책임감은 모든 짐을 떠안게 함."

‘희진’ 씨는 회사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천사’로 통했다.

동료가 야근할 때 같이 남아주고, 친구가 이사할 때 제일 먼저 달려가며, 부모님께는 매주 안부 전화를 드리는 사람. 스타벅스에서 앞사람이 카드를 놓고 갔을 때 끝까지 기다려주고, 택시 기사님께도 “수고하셨어요” 인사를 잊지 않는 사람.

그녀의 연인이었던 ‘성훈’ 씨를 처음 만난 건 친구의 결혼식이었다.

“너처럼 순수하고 착한 사람은 처음이야.”

그가 첫 데이트에서 한 말이었다. 그녀는 그 말에 설렜다. 자신의 선량함을 알아봐 주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선량함은 점점 다른 의미로 변질되어갔다.

그녀의 신뢰는 그의 거짓말을 위한 무대가 되었다

성훈은 자신의 과거를 자주 이야기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야반도주했어. 엄마랑 단칸방에서 라면만 먹으며 살았지.”

희진은 그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 상처를 안고도 이렇게 밝게 살아가는 그가 대견하고 안쓰러웠다.

“전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웠어. 내 친구랑. 그것도 내 생일날.”

또 한 번 희진의 가슴이 아팠다. 그래서 그가 가끔 불안해하는구나. 이해가 됐다. 그녀는 그를 더욱 세심하게 배려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들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가 ‘단칸방에서 살았다’던 동네를 지나가다가, 그가 무심코 말했다. “어, 여기 우리 집 앞 놀이터네. 어렸을 때 여기서 맨날 놀았는데.”

그 동네는 강남의 고급 아파트 단지였다.

전 여자친구의 SNS를 우연히 발견했는데, 그녀는 성훈과 헤어진 이유를 ‘그의 거짓말과 바람’ 때문이라고 적어놓았다.

하지만 희진은 이런 의구심들을 묻어두었다.

‘내가 오해하는 거겠지.’ ‘기억이 헷갈릴 수도 있지.’ ‘SNS에 쓴 건 감정적으로 과장된 거겠지.’

사람을 쉽게 의심하지 않는 그녀의 성품은, 명백한 증거들조차 ‘선의의 해석’으로 덮어버렸다.

나중에 그녀가 알게 된 진실은 충격적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대기업 임원이었고, 그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 전 여자친구들은 모두 그가 먼저 배신했다. 그의 불우했던 과거는 모두 동정심을 얻기 위한 각본이었다.

그녀의 신뢰는 그의 거짓된 서사를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무대 장치였다.

그녀의 공감 능력은 그의 면죄부가 되었다

성훈이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그에게는 황금 패턴이 있었다.

약속 시간에 2시간 늦었을 때: “미안해… 요즘 회사에서 너무 힘들어. 부장이 나만 괴롭히는 것 같아. 어제도 밤 12시까지…”

그녀의 생일을 잊었을 때: “정말 미안해. 엄마가 요즘 아프셔서 정신이 없었어. 병원비도 많이 나오고…”

다른 여자와 단둘이 술을 마신 게 들통났을 때: “그냥 회사 후배야. 실연당해서 힘들어하길래… 너도 알잖아, 내가 남의 아픔을 그냥 못 지나치는 거.”

매번 그의 변명에는 ‘상처’와 ‘고통’이 등장했다. 그리고 공감 능력이 뛰어난 희진은 그의 잘못보다 그의 아픔을 먼저 보았다.

“아, 회사에서 힘들었구나. 괜찮아, 이해해.” “어머니가 편찮으시구나. 내가 뭐 도울 거 없을까?” “그래, 너는 원래 착한 사람이니까.”

그녀는 그를 비난하는 대신 위로했다. 사과를 요구하는 대신 그의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더 나아가, 그녀는 그의 ‘상처 입은 내면’을 치유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내가 더 잘해주면, 그의 상처가 나을 거야.’ ‘내가 더 사랑해주면, 그가 변할 거야.’ ‘내가 더 참으면, 우리 관계가 좋아질 거야.’

그녀의 공감은 그가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면죄부가 되었다.

마치 중세 시대에 돈을 내면 죄를 사해주던 면죄부처럼, 그는 ‘상처’라는 화폐로 모든 잘못을 무마할 수 있었다.

그녀의 책임감은 그의 모든 짐을 대신 짊어졌다

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희진은 즉각적으로 자기 자신을 점검했다.

그가 화를 내면: ‘내가 뭘 잘못했지? 내가 어제 말실수를 했나?’

그가 차갑게 굴면: ‘내가 너무 집착했나? 좀 더 여유를 가져야겠다.’

그가 연락을 끊으면: ‘내가 부담을 줬구나. 더 이해해줘야겠다.’

그녀의 강한 책임감은 언제나 문제의 화살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마치 모든 비를 흡수하는 스펀지처럼, 그녀는 관계의 모든 문제를 자신의 탓으로 흡수했다.

성훈은 이런 그녀의 자책을 한 번도 교정해주지 않았다.

“네가 좀 더 여유 있었으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 “네가 나를 좀 더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네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 관계도 변하지 않아.”

그는 교묘하게 모든 책임을 그녀에게 전가했다. 그리고 희진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그녀는 ‘좋은 사람’이었고, 좋은 사람은 관계를 위해 노력하고, 희생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관계가 끝났을 때, 희진은 자신의 선량함이 자신을 파괴하는 무기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할수록, 관계는 더 깊은 수렁에 빠졌다. 그녀가 이해하려 할수록, 그는 더 많은 이해를 요구했다. 그녀가 책임을 질수록, 그는 더 무책임해졌다.

이 역설을 이해하는 데 그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포식자의 선택: 왜 선량한 사람이 표적이 되는가

"나르시시스트가 선량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는 이유. 텅 빈 자존감을 채울 에너지원, 자신을 비춰줄 완벽한 거울, 그리고 양심 없는 행동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

나르시시스트가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은 착한 사람을 골라 망가뜨려야지’ 계획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존 방식 자체가, 결과적으로 선량하고 공감 능력 높은 사람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마치 모기가 CO2를 감지하고 날아오듯, 그들은 선량함의 냄새를 맡고 다가온다.

1. 빈 그릇은 가득 찬 그릇을 찾는다

나르시시스트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곳은 텅 비어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 스스로의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내면의 나침반이 고장 나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이 공허함은 마치 블랙홀 같아서,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당신의 따뜻함 – 그들의 차가운 내면을 데우기 위해 당신의 확신 – 그들의 불안정함을 지탱하기 위해 당신의 사랑 – 그들의 자기혐오를 덮기 위해 당신의 에너지 – 그들의 무기력을 채우기 위해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애적 보급(Narcissistic Supply)’이라 부른다.

마치 뱀파이어가 피를 필요로 하듯, 그들은 타인의 감정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선량한 사람은 가장 신선하고 영양가 높은 피를 가진 숙주다.

그들은 당신의 선량함을 존경해서 다가오는 게 아니다. 그들은 당신의 선량함을 소비하기 위해 다가온다.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고르듯, 그들은 가장 신선하고 풍부한 재료를 고른다. 그리고 그것을 남김없이 먹어치운 후, 빈 접시만 남기고 떠난다.

2. 완벽한 거울을 찾는 나르키소스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는 물에 비친 자기 얼굴에 반해 죽었다.

현대의 나르시시스트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자신을 비춰줄 거울을 찾아 헤맨다. 그런데 그들이 원하는 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비추는 정직한 거울이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건 포토샵 필터가 100개쯤 적용된, 완벽하게 보정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선량한 사람은 이런 왜곡된 거울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당신은 그의 거만함을 ‘자신감’으로 해석한다. 그의 무책임함을 ‘자유로움’으로 포장한다. 그의 잔인함을 ‘상처 때문’이라고 변호한다. 그의 거짓말을 ‘창의성’이라고 미화한다.

관계 초반, 당신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찬란하다. 당신의 순수한 감탄, 진심 어린 칭찬, 무조건적인 지지. 이것들은 그가 갈망하던 최고급 거울이다.

“너는 정말 특별해.” “너같은 사람은 처음이야.” “너는 천재인 것 같아.”

당신이 이런 말을 할 때, 그는 마약을 맞은 것처럼 황홀해한다.

하지만 주의하라. 그가 사랑하는 건 당신이 아니다. 당신의 눈에 비친 완벽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다.

당신은 사람이 아니라 거울이다. 그리고 거울은 언젠가 깨지거나 흐려지면 버려진다.

3. 양심이라는 브레이크가 없는 자동차

일반적인 사람은 양심이라는 브레이크를 가지고 있다.

남을 속이려다가도 ‘이건 아니지’ 하고 멈춘다. 상처를 주려다가도 ‘너무했나’ 하고 돌아본다. 이용하려다가도 ‘미안한데’ 하고 주저한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이 브레이크가 고장났거나 아예 장착되지 않았다.

반면 선량한 사람은 브레이크가 너무 예민하다.

‘혹시 내가 상처 줬나?’ ‘내가 너무 이기적인가?’ ‘내가 더 양보해야 하나?’

이 조합은 치명적이다.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브레이크만 밟는 자동차가 만났을 때, 결과는 뻔하다. 한쪽은 무한정 질주하고, 한쪽은 계속 밀린다.

나르시시스트는 당신의 양심을 악용한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면 → 당신은 ‘의심하는 내가 나쁜 사람인가’ 자책한다 그들이 화를 내면 → 당신은 ‘내가 뭘 잘못했나’ 반성한다 그들이 무시하면 → 당신은 ‘내가 더 노력해야겠다’ 다짐한다

당신의 양심은 그들에게 무한정 자유를 준다. 어떤 반칙을 저질러도, 어떤 규칙을 어겨도, 당신이라는 심판은 항상 그들에게 유리한 판정을 내린다.

4. 트로피 수집가의 심리

나르시시스트는 단순히 약한 사람만 노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그들은 특별한 사람을 원한다. 똑똑하고, 성공적이고, 매력적이고, 주변에서 인정받는 사람. 왜? 그런 사람을 ‘소유’하는 것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수석 졸업한 여자. 해외 유학을 경험한 여자. 스타트업 CEO인 남자. 모두가 부러워하는 미인. 재력과 배경을 갖춘 엘리트.

이들은 나르시시스트에게 최고급 트로피다.

  • “내 여자친구는 서울대 출신이야.”
  • “내 여자친구는 어릴 때 캐나다에서 유학생활을 했어”
  • “내 남자친구는 연봉이 억대야.”
  • “내 파트너는 모델 제의도 받았어.”

이런 자랑거리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강한 사람을 무너뜨리는 쾌감.

자존감 높던 사람을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들고, 독립적이던 사람을 자신 없이 못 살게 만들며, 밝던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과정. 이것은 나르시시스트에게 마약과 같은 쾌감을 준다.

마치 길들이기 힘든 야생마를 길들이는 것처럼, 그들은 당신의 강인함을 하나씩 부수는 과정을 즐긴다. 그리고 완전히 길들여졌을 때, 싫증을 느끼고 떠난다.

당신이 강하고 능력 있었다는 것은 약점이 아니라 당신의 장점이었다. 단지 그것을 파괴하려는 사람을 만난 것이 비극이었을 뿐이다.

당신의 선량함을 되찾는 일

"나르시시스트에게 착취당한 후 선량함을 되찾는 법. 순수한 선량함을 경계선을 아는 현명한 선량함으로 발전시켜, 공감과 책임감을 건강하게 사용하는 치유 과정."

이제 당신은 거울을 보며 스스로를 탓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 “내가 바보였어.”
  • “내가 너무 만만했나 봐.”
  • “다시는 누구도 믿지 않을 거야.”

이런 말들은 그의 파괴 작업을 당신 스스로 완성시키는 것이다.

그가 당신을 선택한 이유는 당신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당신이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온기, 당신의 신뢰, 당신의 공감능력, 당신의 책임감. 이 모든 것들이 그에게는 꿀단지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이제 차갑고 냉소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그의 게임에 최종적으로 패배하는 것이다. 그가 당신에게서 훔쳐간 것들을 영원히 되찾지 못하는 것이다.

순수한 선량함에서 현명한 선량함으로

당신의 과제는 ‘순수한 선량함’을 ‘현명한 선량함’으로 진화시키는 것이다.

순수한 선량함:

  • 모든 사람을 무조건 신뢰한다
  • 모든 상처를 내가 치유해줄 수 있다고 믿는다
  • 내가 더 노력하면 상대가 변할 거라 기대한다
  • 상대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한다

현명한 선량함:

  • 신뢰는 시간을 두고 쌓아간다
  • 상처받은 사람을 도울 수는 있지만, 그를 구원할 책임은 없다
  • 사람은 스스로 변하고 싶을 때만 변한다는 것을 안다
  • 건강한 경계선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이해한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당신의 공감 능력은 여전히 보물이다

당신의 공감 능력을 버리지 마라. 그것은 여전히 당신의 가장 큰 장점이다.

다만 이제는 선별적으로 사용하라.

공감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

  • 당신의 감정도 똑같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
  • 진정한 사과를 할 줄 아는 사람
  • 변화를 위해 실제로 노력하는 사람

공감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

  • 항상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사람
  •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는 사람
  • 말만 하고 행동은 바뀌지 않는 사람
  • 당신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사람

당신의 공감은 선물이다. 아무에게나 뿌리지 말고, 그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에게만 주어라.

책임감의 재분배

당신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그것도 장점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책임감을 올바르게 분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당신의 책임:

  • 당신 자신의 행복
  • 당신 자신의 성장
  • 당신이 한 선택의 결과
  • 당신의 감정 관리

당신의 책임이 아닌 것:

  • 다른 사람의 기분
  • 다른 사람의 과거 상처
  • 다른 사람의 성장
  • 관계의 모든 문제

특히 관계에서는 50:50이 원칙이다. 당신이 51%를 책임지는 순간, 상대는 49%만 책임진다. 당신이 80%를 책임지면, 상대는 20%만 책임진다.

결국 당신이 100%를 책임지게 되고, 상대는 0%가 된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일방적인 봉사다.

새로운 시작

치유의 과정은 이렇다.

먼저, 당신이 겪은 일에 정확한 이름을 붙인다. “나는 감정적 착취를 당했다.” “나의 선량함이 악용되었다.” “이것은 내 잘못이 아니었다.”

다음으로, 잃어버린 것들을 애도한다. 순수했던 시절, 무조건적으로 믿을 수 있었던 시절, 상처받기 전의 당신. 이것들을 충분히 슬퍼할 권리가 있다.

그리고 천천히, 새로운 당신을 건설한다. 더 현명하고, 더 강하며, 더 균형 잡힌 당신. 여전히 따뜻하지만 이제는 자신을 지킬 줄 아는 당신.

마지막으로 기억하라.

당신은 나쁜 사람을 만났기 때문에 고통받은 것이지,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고통받은 것이 아니다.

당신의 선량함은 죄가 아니다. 그것을 악용한 사람이 죄인이다.

세상에는 여전히 당신의 선량함을 소중히 여기고, 같은 온기로 화답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만날 때까지, 당신의 빛을 꺼뜨리지 마라.

단지 이제는, 그 빛을 비출 대상을 신중히 선택하라. 당신의 선량함은 특별한 사람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 되어야 한다.

모두를 위한 무료 나눔이 아니라.

By. 나만 아는 상담소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나만 아는 상담소 프리미엄 콘텐츠 에서 더 깊이 있는 심리학적 조언을 확인하세요.

또한, 나만 아는 상담소 네이버 블로그 에서도 다양한 주제의 심리 칼럼을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