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의 위험한 매력 “처음엔 완벽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나르시시스트와 소시오패스의 흥미로운 공통점은 ‘가면’이다. 소시오패스도 자신을 “멋지고 친절한 사람”으로 포장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한다.

나르시시스트 또한 “나는 이렇게 훌륭하고 세련된 사람이다”라는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 집중한다.

주위 사람들은 그들의 화려한 자화자찬에 빠져들어서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갖춘 인물인가 보다”라고 생각해 버리곤 한다. 말솜씨도 좋아서, 상대가 자기를 높게 평가하도록 온갖 수사를 동원한다.

허황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도, 듣는 이가 정확히 추궁하지 않으면 “아, 이 사람이 정말 능력자인가?” 싶게 느껴지는 것이다.

즉,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완벽하게 보일 만큼 말재간에 능하다.

이렇듯 나르시시스트와 소시오패스는 주변을 ‘홀리는’ 힘이 있다. 가까워지고 싶은 상대에게만큼은 빛나는 언어와 찬사를 쏟아붓고, 필요하다면 겉치레 선물과 자극적 이벤트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 피해자는 “아, 이 사람은 나를 정말 소중히 여기는 구나. 이렇게까지 해주다니 감동이야”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특히 나르시시스트의 화려한 수사와 애정 표현에 반응하기 쉬운 사람들은 “사랑받고 싶다”는 갈증이 있는 경우가 많다.

무한한 애정과 사랑에 취약한 사람들

과거나 성장기에서 충분한 인정과 칭찬을 받지 못해, 누군가가 무한칭찬을 해 주면 그야말로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버리는 느낌을 받는다.

여기에 나르시시스트는 교묘히 파고들어 “내가 네 상처까지 감싸줄게”라며 감동 스토리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내가 원하는 걸 손쉽게 얻고, 상대를 내 의도대로 움직이려는 욕망”이 깔려 있다는 게 문제다.

한편, 사람들은 때로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나르시시스트가 정말로 자기중심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왜 나는 계속 매력을 느끼는 걸까?” 사실 매력은 합리적 판단과 다르게 작동한다.

우리가 타인을 보며 호감을 느낄 때, 그 사람이 가진 에너지와 카리스마에 빠져드는 경우가 흔하다. 특히 ‘눈빛, 말투, 자신감’이 강렬한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이를 “공감력”이라고 착각하기도 하지만, 실은 “상대를 압도하는 화술과 자신감”에 가까울 때가 많다. 나르시시스트는 그 포인트를 훌륭히 짚어낸다.

상대방이 무엇에 감탄하는지, 어떤 칭찬을 원하는지 기가 막히게 알아채고, 그 부분을 집중 공략한다.

여기에 더해, 처음에는 상대방을 극진히 대하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예고 없이 차갑고 날카롭게 변해 버리는 ‘온도차 전략’을 구사한다. 이럴 때 상대방은 더욱 혼란스럽다.

“뭔가 잘못했나? 왜 갑자기 태도가 달라졌지?”라며 스스로를 책망하게 된다. 나르시시스트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 지점이다. 상대가 죄책감과 두려움에 빠져 ‘내가 뭘 해야 다시 호의를 얻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시작하면, 그들은 더 강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가령 “난 너에게 배신당한 기분이야”라고 징징거리면서, 상대가 고개를 숙이도록 만들거나 “역시 나밖에 없어”라고 말하게 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이런 처지에 놓인 사람이 “도대체 어떤 점에서 나르시시스트와 소시오패스적 특성에 겹치는 매력에 빠지는 걸까?”라는 물음을 던져 보자. 핵심은 우리 모두에게 ‘인정 욕구’가 있다는 사실이다. 인정받고 싶고, 특별하다는 말을 듣고 싶고, 누군가가 “넌 정말 대단해”라고 말해 주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나르시시스트는 바로 이 부분을 예리하게 이용한다.

“내가 너를 완전히 인정해 줄게. 넌 정말 특별한 존재니까.”라고 말하며 먼저 마음의 문을 활짝 열도록 유도한다. 그 말을 믿고 감격하는 순간, 이미 나르시시스트는 마음속에 발판을 얻는 셈이다.

문제는 이 관계가 일방적으로 흘러가면서, 언젠가부터 피해자가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른다는 점이다. 칭찬과 사랑에 눈이 멀어 있을 때는 몰랐던 부분들이 이후에 차차 드러난다.

예컨대, 스스로를 과시하기 위해 피해자를 ‘장식품’처럼 대하거나, 상대의 사소한 실수를 트집 잡아 “난 너한테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어”라며 몰아붙이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들의 욕구를 해결해주면 예전 사랑을 다시 보여주겠지…

그때 피해자는 과거에 받았던 달콤한 칭찬을 떠올리며 “내가 저 사람에게 맞추면, 다시 예전처럼 사랑해 주겠지”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시점부터 나르시시스트의 가면 뒤 공감 결여가 분명해진다.

“내가 잘못했든 안 했든 상관없이, 이 사람은 나를 도구로 여기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결국 “보이지 않는 가면 속 진짜 얼굴”이라는 말을 다시금 상기하게 된다. 가면은 말 그대로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도구다. 나르시시스트가 인위적으로 만든 이 가면은 때때로 화려하고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아무리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듯한 공감 부재”가 숨어 있다.

상대의 아픔이나 고통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면서, 겉으로만 “난 널 이해해”라고 얄팍하게 말할 줄 아는 능력이 있을 뿐이다.

이럴 때 피해자는 “정말 이 사람이 날 이해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달콤한 말만 하는 걸까?”라는 의문을 뒤늦게나마 품게 된다.

사람이 한 번 깊숙이 마음을 열고 의지하면, 그 상대가 악의를 지닌 인물일 거라고 쉽게 추측하지 못한다. 서로가 성숙한 배려를 나누는 관계라면, 대화로 문제를 풀고 상호 성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에게는 그런 지속적 공감이 실질적으로 없다. 겉으로 “미안해”라고 말하더라도 진심이 담기지 않는다.

그 말은 어디까지나 다음 작전을 위한 준비일 뿐이고, 필요하면 몇 번이고 번복할 수 있는 “가짜 유감 표현”일 때가 많다. 나르시시스트는 “상대에게 감동을 주는 척”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고, 관계의 우위를 확보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결국 주변에서는 “근사한 사람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 가까이서 그와 진정한 정서적 연결을 느낀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나르시시스트가 공유하는 감정이 기만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화로, 어떤 나르시시스트가 회사에서 굉장히 능력 있고 ‘인간미 넘치는 임원’이라고 평가를 받았는데, 막상 퇴근 후 가족에게는 엄청나게 가혹하고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그 가족 구성원들은 밖에서 그를 칭송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세상이 아는 그 모습은 가짜”라는 괴리에 시달렸다.

이처럼 나르시시스트는 대중 앞에서 “다정하고 인자한 리더”처럼 굴지만, 사적인 공간에서는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려 하며, 작은 일에도 분노하거나 경멸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나중에 “당신이 내 기대에 부응 못 해서 그렇다”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해 버리기도 한다.

소시오패스적 특성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즉, 죄책감이 없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아무리 큰 문제를 일으켰어도 “나는 잘못이 없다”거나 “그걸 왜 내 탓으로 돌리느냐”라는 태도를 유지한다.

혹여 주변에서 증거를 들이대며 추궁하면, 거짓 눈물을 흘리거나 가짜 반성을 하는 연기를 하다가, 상황이 넘어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가면”이라는 단어가 절묘한 이유는, 이들이 다양한 가면을 언제든 썼다 벗었다 하며 사람들의 시선을 농락하기 때문이다.

사랑꾼 가면을 쓰다가, 재능 있는 엘리트 가면을 쓰다가, 다시 희생자 가면을 쓰고, 필요하다면 사과하는 가면도 쓴다. 이처럼 변덕스러운 모습에 휘둘리는 사람은 혼란스러워진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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