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와 함께 했던 과거 당신은, 사실 가장 치열한 생존자였다

새벽 세 시의 적막은 유난히 무겁다. 눅눅하게 젖은 등줄기를 느끼며 잠에서 깬다. 악몽은 늘 같은 지점에서 필름이 끊기듯 멈춘다.

그가 당신에게 고함을 지르거나 물건을 던지는 공포스러운 순간이 아니다. 당신의 무의식이 가장 괴롭게 반복 재생하는 장면은, 떠나려는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며 매달리던 당신의 모습이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무릎을 꿇고 빌던 그 비굴한 목소리. 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깎아내리던 그 광대 같은 웃음들. 제발 나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던 그 처참한 눈빛.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당신은 이불을 걷어차며 낮은 신음과 함께 몸을 웅크린다. 차라리 그가 천하의 나쁜 놈이었다는 사실은 견딜 만하다. 외부의 적은 미워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지옥 같은 불구덩이 속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 문을 잠그고, 그 열쇠마저 그에게 쥐여주었던 과거의 자신은 도저히 용서가 되지 않는다. 당신은 지금 그를 미워하는 것보다 백 배는 더 뜨겁고 집요하게 당신 자신을 경멸하고 있다.

어쩌면 당신은 거울을 볼 때마다 묻고 있을 것이다.

도대체 나는 왜 그랬을까. 그토록 명백한 위험 신호들이 있었는데 왜 눈을 감았을까. 나는 왜 그토록 멍청하고, 자존심도 없고, 나약했을까.

이 질문들은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당신의 심장 가장 연한 곳을 찌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그 잔인한 질문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당신이 그토록 미워하는 과거의 그 여자는, 사실 멍청했던 것도, 사랑에 미쳤던 것도 아니다. 그녀는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이다.

당신은 비굴했던 것이 아니라, 살고 싶었던 것이다

인간의 뇌는 행복이나 자존감 따위를 위해 설계되지 않았다. 뇌의 지상 과제는 오직 하나, 생존이다.

포식자 앞에 놓인 초식동물이 취할 수 있는 생존 전략은 몇 가지 없다. 우리는 흔히 싸우거나, 도망치는 것만을 생각한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나 거대하고 압도적이어서 싸워봤자 죽을 것이 뻔하고, 사방이 막혀 도망칠 곳조차 없다고 판단될 때, 뇌는 제3의 스위치를 켠다.

바로 얼어붙기(Freeze)와 비위 맞추기(Fawn)다.

당신이 그에게 매달렸던 순간, 당신의 이성은 마비되었을지 몰라도 당신의 본능은 가장 치열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거대한 곰 앞에서 배를 보이게 뒤집어 눕는 강아지를 보며 우리는 비굴하다고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그것은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다. 복종의 신호를 보냄으로써 포식자의 공격성을 낮추고, 당장의 죽음을 모면하려는 고도로 계산된 생물학적 전략이다.

당신이 그의 비위를 맞추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받아주고, 끊임없이 눈치를 살폈던 그 모든 행위는, 예측 불가능한 심리적 폭력 앞에서 당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뇌가 선택한 최후의 방어기제였다.

당신의 뇌는 그 관계를 사랑이 아닌 재난으로 인식했고, 재난 상황에서는 자존심을 세우는 것보다 일단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었다. 당신은 비굴했던 것이 아니다. 당신의 신경계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작동했다.

당신은 사랑을 한 것이 아니라 인질극을 벌인 것이다.

인질범에게 물을 달라고 사정하고, 인질범이 베푸는 작은 친절에 감동하여 그를 변호하게 되는 스톡홀름 증후군은, 인질이 멍청해서 걸리는 병이 아니다. 그것은 생사여탈권을 쥔 자와 심리적으로 유대감을 형성해야만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인간 유전자에 깊이 각인된 슬픈 생존 본능이다.

그가 당신의 밥줄을 쥐고 있었든, 감정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든, 당시 당신에게 그는 신이자 생명줄이었다. 생명줄을 쥐고 흔드는 자에게 저항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당신은 그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 포식자와 동화되는 길을 택했던 당신의 무의식을 비난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고장 난 브레이크와 조작된 지도

당신이 과거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내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었다는 오만한 착각 때문이다.

내가 조금 더 현명했더라면, 내가 그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단호하게 대처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믿음. 이 믿음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달콤하다. 적어도 내가 무력한 피해자는 아니었다는, 내 인생의 키를 내가 쥐고 있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력감보다는 차라리 죄책감을 택한다. 내가 잘못해서 벌어진 일이라면, 내가 고치면 해결된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내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벼락을 맞았다는 사실은, 세상이 예측 불가능하고 위험한 곳이라는 공포를 준다.

그래서 당신은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듦으로써 역설적으로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려 한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일은 쓰다. 인정해야 한다. 당신은 통제할 수 없었다. 나르시시스트는 당신의 현실 감각을 조작하고, 죄책감을 심어주고, 당신의 언어를 빼앗았다. 그 게임은 애초에 당신이 이길 수 없도록 설계된 사기도박이었다.

안개가 자욱한 낭떠러지 위에서, 눈이 가려진 채 운전을 했던 사람에게 왜 사고를 냈느냐고 묻는 것은 가혹하다.

당신은 핸들을 쥐고 있었지만, 그 차는 이미 당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상태였다. 당신의 잘못은 운전 미숙이 아니라, 조수석에 앉은 그가 지도를 조작하고 브레이크를 고장 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뿐이다.

도박꾼의 뇌, 그리고 간헐적 보상이라는 마약

당신이 과거의 자신에게 느끼는 혐오감의 기저에는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농간도 숨어 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당신은 영원히 자신을 미련한 중독자로 취급하게 된다.

나르시시스트가 제공하는 간헐적인 보상, 즉 지옥 같은 학대 중간에 가끔 던져주는 천국 같은 다정함은 인간의 뇌를 도박 중독자의 뇌처럼 개조한다.

행동주의 심리학의 실험을 보자. 쥐에게 레버를 누를 때마다 먹이를 주면, 쥐는 배가 부르면 멈춘다. 하지만 열 번 중에 한 번꼴로, 그것도 언제 나올지 모르게 무작위로 먹이를 주면, 쥐는 배가 터져 죽을 때까지, 혹은 굶어 죽을 때까지 그 레버를 미친 듯이 눌러댄다.

예측 불가능성이 주는 쾌락은 안정적인 보상보다 훨씬 더 강렬한 도파민을 분비시키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를 떠나지 못하고 레버를 눌러댔던 것은 당신의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당신의 뇌가 그 불규칙한 보상 체계에 생물학적으로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알코올 중독이나 마약 중독과 정확히 같은 기제다.

굶주린 사람이 썩은 빵이라도 허겁지겁 입에 넣는 것을 보고 탐욕스럽다고 비난할 수 없다. 당신의 영혼은 굶주려 있었고, 그는 그 허기를 이용해 당신을 사육했다.

그 강력한 화학적 결속을 끊고 제 발로 걸어 나온 지금의 당신이 기적일 뿐, 그 안에서 허우적대던 과거의 당신은 중독된 뇌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던,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을 보인 피해자였다.

진흙탕을 기어 나온 패잔병을 껴안으며

그러니 이제 그만 거울 속의 그녀를 노려보기를 멈춰라.

헝클어진 머리에 멍한 눈을 하고, 자존심 따위는 내팽개친 채 살려달라고 비명 지르던 그 여자를 향해 돌을 던지지 마라.

그녀는 죄인이 아니다. 그녀는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동료들이 다 죽어 나가는 와중에, 진흙탕을 기어서라도 살아남아 구조 헬기를 타려고 했던 생존자다.

그때의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당신이 가진 정보, 당신의 심리적 상태, 당신의 에너지 수준에서 내릴 수 있는 유일한 결정을 내렸다.

만약 그때 당신이 그에게 대들었다면, 혹은 도망치려 했다면 더 끔찍한 폭력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당신의 비굴함은, 당신을 살리기 위한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그녀가 그토록 비굴하게 굴었기에, 그녀가 자존심을 굽히고 납작 엎드렸기에, 오늘 당신이 여기서 숨을 쉬고 이 글을 읽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존엄을 땔감으로 써서 당신이라는 생명을 지켰다. 가장 더럽고 비루한 모습으로, 가장 숭고하게 당신을 지켜냈다. 그녀가 버텨준 덕분에, 오늘의 당신이 다시 웃을 기회를 얻었고, 다시 밥을 먹을 기회를 얻었다.

용서는 우아한 악수가 아니다. 진흙투성이가 된 패잔병을 껴안고 우는 일이다. 피 냄새와 땀 냄새가 진동하는 그 몸을 끌어안고, 같이 바닥을 구르는 일이다.

과거의 당신을 침대에 눕혀라. 따뜻한 이불을 덮어주고, 상처 투성이가 된 손을 잡아주어라. 그리고 말해주어라.

네가 부끄러운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아 줘서 고맙다. 네 덕분에 내가 살았다. 너는 틀리지 않았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흉터는 평생 당신의 살갗에 남아 비가 오는 날이면 욱신거릴 것이다. 하지만 그 흉터는 당신이 멍청했다는 수치심의 낙인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악마의 아가리 속에서도 끝내 소화되지 않고 뱉어져 나왔다는, 그 질기고 강인한 생명력의 증거다.

당신은 살아남았다. 그것 하나만으로 과거의 당신은 자신의 몫을 다했다. 살아남은 자는 말이 없다지만, 살아남은 자만이 자신을 용서할 자격을 가진다.

이제 그 자격을 행사할 시간이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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