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와의 이별, 그것은 진짜 이별이 아니었다.
주변 사람들은 말합니다. “시간이 약이야.”, “더 좋은 사람 만나면 잊혀져.”, “세상에 남자는 많아.” 평범한 연애를 끝낸 이들에게는, 그 상식적이고 따뜻한 조언들이 정말 약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적당히 슬퍼하고, 친구들과 욕도 하다가, 앨범을 정리하고, 결국엔 다음 사랑으로 나아갑니다.
이별을 한 지 몇 달, 혹은 몇 년이 지났는데도, 당신은 여전히 그가 남긴 보이지 않는 유리 파편 속을, 그 그림자 속을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건 이따금씩 찾아오는 그리움이나 슬픔의 차원이 아닙니다. 이건 마치 당신이라는 사람의 운영체제 전체가 망가진 것과 같습니다.
사소한 일에도 심장이 쿵, 바닥까지 내려앉습니다. 늦은 밤 메신저 알림 소리 하나에도 온몸이 경직됩니다(과각성). 세상의 모든 색채가 빠져나간 것처럼 아무것도 즐겁지가 않고,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습니다(감정 마비).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그가 나를 경멸하던 그 눈빛, 내가 미친 듯이 매달리던 그 수치스러운 기억들(플래시백)이 수시로 당신의 현재를 덮칩니다.
당신은 스스로를 탓합니다. ‘내가 유난히 나약한가?’, ‘내가 그를 정말 지독하게 사랑해서 아직도 못 잊나?’, ‘다른 사람들은 다 잘 잊는 것 같은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이 모든 상황을 완전히 잘못된 단어로 부르고 있습니다. 당신이 겪은 것은 ‘이별’이 아닙니다.
당신은, 한 인간에 의한 ‘심리적 외상(Psychological Trauma)’의 생존자입니다.
‘이별’이라는, 너무나 무해한 단어

우리가 쓰는 단어는, 우리가 겪은 경험의 격(格)을 결정합니다. 그리고 ‘이별’이라는 단어는, 당신이 겪은 일의 폭력성을 순식간에 삭제해버립니다.
‘이별’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낭만적이고 무해한가요. 이 단어는, 두 개의 독립된 인격체가 만나 서로의 세계를 나누다가, 어떤 이유로든 그 여정을 마치고 각자의 길로 돌아가는, 슬프지만 자연스러운 과정을 전제합니다. 물론 아프죠. 하지만 그 아픔은 ‘상실’에서 오는, 지극히 인간적인 고통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경험은 상실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략이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이라는 영토에 무단으로 침입해, 당신의 자원을 약탈하고, 당신의 법(경계)을 무너뜨리고, 당신의 언어(현실 감각)를 교란시킨, 일종의 정신적 식민화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당신의 경계를 무너뜨렸습니다. 당신의 ‘아니’는 더 이상 ‘아니’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는 당신의 현실 감각을 조작했습니다. 당신이 본 것을 보지 않았다고, 당신이 느낀 것을 느끼지 않았다고 말하며, 당신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는 당신의 자아를 그의 필요에 맞게 해체했습니다. 당신은 더 이상 당신의 삶을 사는 주체가 아니라, 그의 기분을 살피고 그의 위대함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역할’로 전락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에게 “왜 헤어졌어?”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 속에는 이미 ‘너희 두 사람’의 문제였다는, 어쩌면 당신에게도 절반의 책임이 있다는 뉘앙스가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당신에게 이렇게 묻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살아남았어?”
사회는 이 관계를 여전히 ‘사랑싸움’의 범주로, ‘지독한 연애’의 에피소드로 취급합니다. 당신의 고통은 ‘미련’이나 ‘집착’이라는 단어로 폄하됩니다. 하지만 당신은 압니다. 당신이 잃은 것은 한때 사랑했던 남자가 아니라, 당신 자신이었다는 것을요.
이 경험을 ‘이별’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당신이 겪은 학대를 부정하고 당신의 고통을 사소하게 만드는, 가장 잔인한 2차 가해의 시작입니다.
당신의 뇌는 ‘전쟁’을 겪었습니다

당신의 회복이 그토록 더디고, 그토록 비참하게 느껴지는 것은, 당신의 의지가 약해서도, 당신의 사랑이 너무 깊어서도 아닙니다. 이것은 당신의 ‘마음’의 문제이기 이전에, 당신의 ‘뇌’와 ‘신경계’ 의 문제입니다.
당신은 그저 연애에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뇌는, 말 그대로 전쟁을 겪었습니다.
그와의 관계 속에서 당신은 단 한 순간도, 단 하루도, 온전히 안전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그의 분노, 언제 철회될지 모르는 그의 애정, 그가 던지는 미묘한 비난과 경멸.
당신의 신경계는 이 예측 불가능한 위협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항상 ‘투쟁, 도피, 혹은 경직(Fight, Flight, Freeze)’ 모드를 켠 채, 얇은 얼음판 위를 걷듯 극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단 한 번의 큰 충격(PTSD)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끝나지 않는 포로수용소, 벗어날 수 없는 가정 폭력, 혹은 광신도 집단에서 겪는 것과 같은, ‘복합성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C-PTSD)’ 의 핵심 기제입니다.
당신의 자율신경계는, 당신을 살리기 위해, 이 비정상적인 긴장 상태를 ‘기본값’으로 설정해버렸습니다.
이제 그는 떠났고, 전쟁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뇌와 몸은 그 사실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당신의 뇌는 여전히, 세상이 위험 신호로 가득 찬 전쟁터라고 인식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이제는 아무도 당신을 해치지 않는 안전한 일상 속에서도, 닫히는 문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상사의 평범한 지적에도 당신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듯한 공포를 느끼며, 다른 사람의 사소한 친절조차 ‘무슨 꿍꿍이가 있지?’라며 의심하게 되는 겁니다.
당신은 지금, 망가진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예민한 것도, 나약한 것도 아닙니다. 당신의 그 모든 반응은, 그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당신을 어떻게든 살아남게 하려 했던, 당신의 뇌가 당신에게 보낸 가장 처절하고 충성스러운 생존의 후유증입니다.
‘회복’이 아니라 ‘재건’이 필요한 이유

그러니 제발, 당신의 이 거대한 고통을, 보통의 이별을 겪은 친구의 그것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닦달하지 마세요. 그들은 잃어버린 팔을 그리워하는 것이지만, 당신은 뼈까지 녹아내리고 그 형체마저 알아볼 수 없게 된 상처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회복(Recovery)’ 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만나기 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당신은 불의 존재를 알아버렸습니다. 당신은 인간의 밑바닥과 악의를 경험했습니다. 당신은 그 모든 것을 몰랐던, 그 순진했던 당신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재건(Reconstruction)’ 입니다. 그가 무너뜨린 폐허 위에, 당신이라는 새로운 집을 처음부터 다시 짓는 일입니다.
그가 휩쓸고 간 자리는, 모든 것이 오염되고 불타버린 땅입니다. 그 위에는 아무것도 다시 자라날 수 없습니다. ‘재건’의 첫 번째 단계는, 이 땅에 남은 독성 물질(그가 심어놓은 자기 비난, 수치심)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내 잘못이 아니었다”고, “이것은 학대였다”고, 당신이 겪은 일에 정확한 이름을 붙여주는 이 작업이, 바로 오염된 토양을 정화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나서야, 당신은 새로운 집의 기초를 다질 수 있습니다. 어떤 땅이 안전한지, 어떤 사람이 믿을 만한지 다시 배우고, 당신의 경계선을 벽돌 한 장 한 장 단단하게 다시 쌓아 올려야 합니다.
당신의 ‘아니’가 어떤 타협도 없이 ‘아니’가 될 수 있도록, 그 누구도 다시는 당신의 영토를 함부로 침범할 수 없도록, 견고한 벽을 세우는 작업입니다.
이것은 더디고, 고통스럽고, 끔찍하게도 지루한 과정일 겁니다. 어떤 날은 벽돌 한 장을 겨우 쌓아 올렸다가, 어떤 날은 그마저도 무너뜨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 진실, 당신이 겪은 것이 ‘이별’이 아닌 ‘외상’이었다는 이 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당신은 비로소 진짜 치유의 첫걸음을 떼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별에 실패한 게 아닙니다. 당신은,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거대하고, 가장 숭고하며, 가장 중요한 건축을 막 시작했을 뿐입니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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