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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고통을 경시하지 마세요.

많은 사람들이 이별을 겪은 친구나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위로 한다.

“잘 헤어졌어 그 사람 별로야”, “널린게 남자(여자)야 다른 사람 만나면 되”, “만날 때부터 이상하더라니 그럴 줄 알았다 네가 너무 아까웠어”

물론 이별한 사람을 위한 진심 어린 말이다. 그래서 잘 선택한 것이라고 더 좋은 날이 있을 거라며 힘내라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을 하는 본인들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별의 고통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교류 한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어릴 때 한 번 보고 얼굴 기억도 없는 먼 친척의 부고 사실을 이야기하면 주변 사람들은 큰 위로를 해주지만 이별과 같은 어쩌면 더 큰 상실을 느낄 수 있는 고통엔 무덤덤한 반응을 보인다.


이별을 경험한 사람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나약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별은 죽음과 같은 맥락으로 다가온다.

이별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갖는듯 하다. ‘사랑을 아직 모르는 사람, 순진한 사람, 이별을 견디지도 못하는 나약한 사람..’ 이별 이라는 상실감을 느껴야 하면서도 이별로 인해 힘들어 하는 나약한 사람으로 인식되기 싫은 마음이 상실감을 버티면서 본연의 업무와 일을 철저하게 잘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믿게 만든다. 끔찍한 일을 경험하고도 제 할 일을 제대로 이행해야 한다는 믿음이 더 상실의 고통을 힘들게 만든다. 일은 어떻게 잘 넘어갈 수 있지만 문제는 일 이외의 시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저 이 고통의 시간을 외면하기 위해 잠에 빠져 버리거나 (과수면), 그저 이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만을 바라며 SNS 혹은 유튜브와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바란다. 이러한 현상은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과 동일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울증과 이별로 인해 나타나는 상실감에 대해선 관대하지 못하다. 그렇기에 더 견뎌야만하고 자신의 감정을 감춰야 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어린 아이들은 위로라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른’이라는 강박이 위로는 커녕 조금이라도 나약한 모습을 보이면 어른답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 한다. 이별로 인한 상실감은 어린 아이, 강한 사람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렇게 보일 뿐이다.


이별은 어떠한 형태로도 고통스럽다.

이별의 고통 수용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목표가 중요하다.

문자로 받는 통보든 상대의 변한 행동을 보고 예측했지만 외면했던 상황에서 이별 통보든, 갑작스럽든, 만나서 이별을 하든 이별 자체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덜한 이별 적당한 이별, 좋은 이별은 없다는 것이다. 강해지려 하지 말자, 고통을 인정하고 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다시 만나고 싶어서 재회를 목적으로 두고 있더라도 이별을 인정하고 내가 지금 많은 고통 속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별은 상상도 못할 만큼 정서적인 고통을 주고 올바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하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그리고 후회의 반복들..

[참고 칼럼: 이별의 고통을 외면하다.]

힘든걸 인정하고 나아갈 방법을 찾자, 힘든 것을 이야기 하고 우울하다 말해도 괜찮다. 이별로 인한 상실을 이야기 해야한다. 풀어지지 못한 이 감정이 도리어 주변에 부정적으로 표출되어 더 고립되고 더 의존할 사람 이전 사람을 찾아가려는 행동을 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지 않도록 표출되어야 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의 주변에 따듯한 친구들, 가족, 그리고 우리가 있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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