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이유 = 싫어하는 이유
우리가 어떤 대상을 만나고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의 장점을 보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게 된다.

“그 사람은 나를 너무 사랑하는 게 느껴져”
“그 사람은 내 주변 사람들도 잘 챙겨줘”
“그 사람은 너무 순하고 착해”
하지만 이별 후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하게 될 때 그를 좋아했던 ‘똑같은 명분’으로 그 사람을 미워한다.
“그 사람 너무 집착이 심해”
“그 사람 내 주변 사람들에게 간섭이 너무 많아”
“그 사람 재미가 없어!”
장점이 단점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아침에 사랑하고 저녁에 이별할 수 있는 것이 연인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제만 해도 날 사랑한다 말했는데..” 말하며 그 사람의 심리를 찾으려 하지만 찾을 수 없을뿐더러 알아도 의미는 없다. 매달리는 것은 더더욱, 왜? 나의 부정적인 모습만 보려고 하니까.
자신의 선택(이별)의 정당화

상대방은 자신이 이별을 ‘선택’ 했으므로 그에 대한 명분이 명확해야지 ‘책임’을 면하게 된다. 내가 선택한 행동이 올바르지 못한 판단이었다면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나에게 오게 됨으로 그 사람을 싫어할 명분을 계속 만들어 자신의 이별을 정당화시킨다. 실제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그러면 이별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는다. 이럴 때마다 답변은 항상 “선택을 대신할 순 없어요. 선택을 요청하는 것은 그 선택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동에서 나타나요”
선택은 책임이 따른다.
친구들과 처음 보는 술집에 가서 안주를 주문하려 하면 갑자기 말들을 안 한다. 그러다 정점이 잡히지 않는 경우 직원에게 메뉴를 추천해 달라 말하는데, 이는 직원의 추천 메뉴이기에 맛있음이 보장이 되어서가 아닌 음식의 선택의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들이 책임을 질 이유가 없기 때문에 모두 수긍한다. 하지만 책임을 지겠다 마음을 먹고 선택을 한 입장에서 이를 설득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더 부정적인 판단을 더하여 이별을 정당화하게 된다.

이별 후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감정이 생겨 매달리게 될 때 이는 기회로 인식되기 때문에 선택을 쉽게 하게 되지만 (다음 기약이 있음) 오히려 선택을 존중하게 된다면, 상대방이 책임을 고스란히 갖게 되어 선택이 신중해진다.
“오히려 내가 매달릴 땐 반응이 없더니 이제 정리하니까 상대가 매달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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