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다
우리는 신분사회를 벗어나, 드디어 자유사회를 맞이했다. 그것을 아주 일상적인 사회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근대적인 생각인 결혼 이라는 제도 자체는 우리에게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결혼 전에 동거를 해봐야 한다는 대체제적인 생각이 부상하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사회는 연애가 길어진다면 결혼을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곤 한다.
특히 예비 배우자가 될 사람, 그리고 내가 어느 정도 연령이 찼다면 자연스럽게 결혼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내가 결혼을 하지 않는 사이, 주변 사람들도 결혼을 하나둘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도 이제 슬슬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예비 배우자 될 사람이 나에게 압박을 가해오기 시작하는 까닭이다. 하나의 예문을 들어보자.
오래 만난 커플의 흔한 대화.txt
“오빠, 우리 언제 결혼해?”
“결혼? 우리 아직 준비가 좀 덜 된 것 같은데.”
“준비는 언제 되는데?”
“우리 둘이 모아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을 정도?”
“그 사이에 우리 둘 다 나이가 차잖아. 그런데 여자는 서른 넘으면 결혼도 좀 힘들어. 그래서 나 무서워.”
“음….”
아마 남성분들이라면 정말 많이 겪는 일ㅁ일 것이다. 이해해야 한다. 실제로 여성들의 경우, 서른셋이 넘으면 정말 결혼이 좀 힘들다. 또한 남성에게 시간을 할애하고, 마음을 주는 것 역시 결혼 이라는 전제가 있다. 더불어 함께 안정을 누리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그러나 당신이 이를 기피하는 면모를 보인다면, 빛과 같은 속도로 차일 위기에 놓일 것이다. 예를 들자면 나를 만나면서 선을 보고 온다던지.
그러므로 시대는 말이야 자유시대라고 말은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근대적인 사고와 제도 안에서 ‘사회’가 인정하는 시선에 묶여 있으며, 결혼은 아주 중대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연애를 하고 있는가?
사랑이라 한다면 무엇을 생각하게 되는가? 각각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섹스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한다면, 다른 연인들 부럽지 않게 데이트를 하는 모습, 나 하나만을 봐주며 나를 위한 정서적인 지지를 제공하는 돌보미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산업사회까지만 하더라도 부르주아 계급은 사랑과 결혼을 결합하고자 하는 노력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계급 간의 추월차선이 생기면 안 되는 일이므로 같은 계급 내에서 이루어지는 사랑=결혼 이라는 공식을 만든 것이다.
18세기 사회적 변화에 의해, 계몽주의가 등장은 결혼 이라는 제도에 큰 파장을 미친다. 즉, 그 이전까지는 여성이 가사노동자로서 팔려가거나, 집안끼리의 혼담을 주고 받은 이후 의사와 상관 없이 결혼을 하는 케이스들이 주요였지만, 계몽주의 이후 ‘정열적 사랑’과 ‘낭만적 사랑’의 구분이 이루어진 것이다.
정열적 사랑이란, 말 그대로 성적으로 이끌리며, 육체적인 사랑에 가까운 의미이다. 반면 낭만적 사랑이란 결혼을 전제로 행복한 미래를 꾸려나가며, 각자 가정 내에서 역할을 분리하고, 그것에 충실한 사랑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이러한 분리를 통해 ‘낭만적 사랑’ 이전에 나를 이끌어 내는 강렬한 ‘정열적 사랑’을 경험하고, 나와 평생 맞추어 나갈 낭만적 사랑의 대상인지 확인하는 작업으로써 연애와 결혼이 분리된 것이다. 아마 당신도 이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지금 어떤 연애를 하고 있는가? 섹스를 위한 혹은 그냥 외로우니까 하는 연애? 아니면 결혼을 전제로 하는 연애?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내놓느냐에 따라, 당신이 지금 결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데이트 = 연애 라는 공식을 깨보자.
위의 질문에 스스로 답을 내린 사람이라면 이제 이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 것이다. 연애는 곧 데이트인가?
현대 사회에서는 연애와 데이트 라는 용어는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1920년대부터 ‘사랑(Love)’ 라는 단어가 일본으로 유입되어, 그것이 변역되어 온 말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연애’ 라는 말이다.
또한 부모-자녀 간의 사랑, 인류애 등등 많은 ‘사랑’의 의미를 조금 더 세분화 하여 ‘남녀 간의 사랑’ 혹은 ‘연인 간의 사랑’을 정의하는 말로써 ‘연애’ 라는 텍스트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남녀 간의 사랑 및 연애에서 현대 사회는 참 기형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더치페이를 외치긴 하지만, 많은 한국인 남성들은 데이트 비용은 자기가 부담해야 한다는 세뇌된 생각이 있다.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아마 진화론적인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여성에게 먹을 것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하는 것, 이것은 곧 경제적인 능력이므로 이성에게 자신을 어필하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어필은 생물학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니, 서로 사랑하는 마음인 ‘연애’와 별개의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데이트 비용을 쓴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을 아끼는 마음일 수는 있지만, 연애 초기의 데이트는 목적(?)이 있고, 연애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데이트가 의무가 되어버리는 양상이 나타난다. 또한 그것을 ‘사랑’ 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거나, 상대방이 믿는 ‘사랑’ 혹은 ‘믿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짐으로써 자연스럽게 ‘결혼’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 데이트를 통해 당신이 이루고자 했던 목적(섹스이건, 나에게 반하게 하는 목적이건)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그간 내가 투자했던 금액, 시간 등등의 것들을 회수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이는 집착으로 이어져 한 쪽에게 균형이 몰리는 불균형한 연애로 이어지기 쉽다. 그러니, 데이트와 연애는 별개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이 냉정하고, 이성적인 생각의 기반이 될 것이다.
당신에게 데이트는 어떤 의미인가? 이 질문에 답함으로써 당신이 스스로에게 걸어왔던 최면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이 사람에게 내가 왜 투자를 해왔는지 목적을 깨닫고, 결혼에 대한 의사결정을 확실히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