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표현 없는 애인,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엄지손가락으로 검지의 거스러미를 거칠게 뜯어낸다.

애정을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 사람에게 억지로 표현을 쥐어짜 내면, 심이 부러진 뭉툭한 연필로 종이 위에 글씨를 쓰는 꼴이 된다.

선명한 검은색 궤적을 남기려 손아귀에 힘을 줄수록, 백지에는 뾰족하게 패인 자국만 남는다. 무리하게 긁어댄 자리는 결국 찢어진다.

다정한 말씨를 관계의 기본값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침묵하는 연인을 오답 취급하며 뜯어고치려 든다.

다정함을 증명하라는 독촉장

표현하지 않는 애인은 죄인이 아니다.

단지 당신과 구사하는 언어가 다를 뿐이다. “사랑해”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애정을 확인받았다고 믿는 맹신은 폭력에 가깝다. 나에게 익숙한 방식을 상대의 입술을 빌려 뱉어내라고 채무자 독촉하듯 구는 꼴이 제법 볼만하다.

마주 앉은 식탁 위, 묵직한 머그잔이 나무 테이블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낸다.

그들은 능숙하게 말하지 못한다. 낯간지러운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낼 때마다 물리적인 저항감에 부딪힌다.

기념일에 편지 한 장 써주지 않는 상대를 보며 허탈해하던 당신의 속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화창에 다정한 이모티콘이 없다는 이유로, 지난 주말 당신의 고장 난 우산 대신 묵묵히 비를 맞았던 상대의 어깨를 지워버릴 수는 없다.

행동으로 쏟아낸 애정을 굳이 문장으로 번역해 달라고 요구하다 보면, 곁에 있는 사람은 결국 지쳐 떨어져 나간다.

해석의 틀을 부수고 다시 짓기

사람을 고쳐 쓸 수는 없다.

상대를 내 입맛에 맞는 다정한 연인으로 개조하려는 헛된 시도부터 찢어버려야 한다. 관계의 틈은 타인을 닦달한다고 메워지지 않는다.

무뚝뚝한 사람 곁에서 평온을 유지하려면, 그들이 일상 곳곳에 흘려둔 투박한 단서들을 주워 담아야 한다. 그들은 횡단보도에서 당신을 도로 안쪽으로 끌어당기고,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며, 식당에서 말없이 물컵을 먼저 채운다.

바지 주머니 속 핸드폰의 짧은 진동에 얕은숨을 들이마신다.

사랑받는다는 증거를 소리 내어 확인받지 못해, 새벽 내내 천장 벽지의 무늬를 세며 뒤척이던 밤이 당신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묵묵한 행동들은 입에 발린 수사학보다 훨씬 단단한 실체다.

상대의 침묵을 방관으로 오독하는 버릇을 버려야 관계의 질감이 바뀐다. 원하는 타이밍에 듣고 싶은 단어를 내놓지 않는다고 해서 곁에 있는 사람을 깎아내리지 마라.

각자 손에 쥔 애정의 모양은 다르다. 그 차이를 인정할 때, 억지로 꾸며낸 가짜 다정함 대신 묵묵하게 자리를 지키는 상대의 발끝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요구해서 얻어낸 문장에는 생명력이 없다.

수시로 확인받아야만 유지되는 관계는 위태롭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곁에 머무는 법을 배운다. 상대의 입술만 쳐다보며 서운함을 적립하는 대신, 그 사람이 딛고 선 행동의 궤적을 짚어볼 시간이다.

억지로 긁어내어 백지에 구멍을 내지 않아도, 뭉툭하게 눌린 자국들조차 결국 누군가가 당신을 향해 꾹꾹 눌러 남긴 단단한 흔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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