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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갖자 말하는 행동의 목적과 이유

– 시간을 갖자, 이별에 슬픔을 피하고 이별하다.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가 평소 행동이 이전과 같지 느껴지지 않은 모습을 보고 불안해 하고 있을 무렵 어느 날 갑자기 시간을 갖자 말한다. 이별도 아니고 그런다고 만나고 있지도 않은 이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이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이렇게 이별을 뒤로 미루는 듯한 행동엔 상황적인 이유가 분명하게 있지만 상대가 말한 시간이 지난 후 둘의 관계가 다시 돈독해 지는 경우는 찾아보기 매우 어렵다. 그들이 이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두가지로 나뉜다.

이별을 할 명분이 없을 때
이별에 대한 스트레스를 직면하기 싫을 때

시간을 갖자 말할 때 상대방의 심리

시간을 갖자 = “네가 없어도 되는지 확인해봐야겠어”

시간을 갖자 말하는 것은 결국 네가 없어도 되는지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봐야 겠다는 말과 같다.

이별은 통보하는 측이나 받아들이는 측이나 모두 힘들다. 이별 후 힘들어질 것이 예상될 때 자신이 혼자가 될 것이 두렵기 때문에 실제 혼자가 되는 상황을 직면하기 보다 혼자가 되어도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연인은 상대방이 말한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상대가 마음이라도 떠날까 노심초사하지만 예정된 시간에 연락을 하면 모두 비슷한 형태의 반응을 나타낸다.

“어.. 그동안에 정리 안하고 뭐했어..?”


왜 시간을 갖자 말하며 이별을 할까?

시간을 갖자 말하며 이별하는 이유.
그들은 결국 이별을 말한다. 다시 잘되는 경우는 매우 찾기 어렵고 문제는 눈치를 보기 때문에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직 이별을 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자신이 원하는 자유를 누리고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을 만나려는 시도까지 한다. 완전히 이별을 했다고 느낄 때 나타나는 결핍이나 공허함이 없으니 언제든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두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시행하게 되는데 문제는 이별을 직면하지 않고 서서히 이별하는 것으로 본인은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자유에 빠져 다시 만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별 방법은 잠수 이별과 마찬가지로 매우 비겁한 이별 방식이다. 잠수 이별 또한 이별을 직면하지 않고 혼자 홀연히 빠져나가며 끝이 없었음으로 끝나지 않는 영원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심리에서 비롯되듯 시간을 갖자 말하며 종국엔 이별로 가는 행동 역시나 동일한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잠수 이별과 다른 점은 끝을 결국 맞이한다는 것일 뿐이다. (잠수 이별은 끝이 없기에 이별을 당한 사람이 자기비난과 원인을 찾는 행동으로 더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받는다.)


시간을 갖자 말하기 전 행동 패턴

시간을 갖자 말하는 사람의 연인은 상대에게 이별의 명분이 없을 만큼 잘해주는 패턴을 보이게 된다.

결국 이러한 행동의 끝은 이별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들은 왜 이런식의 이별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이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연인을 보면 연인에게 매우 헌신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제 3자 혹은 스스로 생각해도 좋은 여자친구, 좋은 남자친구는 연인으로서의 불만이 생기더라도 잘하는 행동 하나 때문에 불만을 말하지 못한다. “비록 부족한게 있지만 그래도 잘 해주니..” 잘하는 행동 때문에 자신의 불만을 해소하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잘하는 행동에 고마움을 느끼기 보다. 그 잘해주는 행동에 도리어 분노를 느끼게 된다.

일방적인 호의는 상대로 하여금 부담을 주고 그 부담은 곧 분노로 연결되기 때문에 연인에게 트집을 잡고 바뀌기 어려운 습관이나 스타일, 행동, 직업적 특성에 불만을 갖기 시작한다. 바뀔 수 없거나 어려운 부분의 요구사항이기에 결국 이러한 문제는 명분이 되어 상대방에게 분노의 표출 대상으로 바뀌게 된다. 헌신적이고 연인을 위한 행동으론 더 이상 무마될 수 없게 될 때, 그리고 누가봐도 잘 해주고 헌신적인 행동이기 때문에 이별을 말하면 자신이 너무 매정한 사람이 되거나 주변 사람들과 연인에게 비난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권태기라는 명분으로 시간을 갖자 말하게 되는 것이다.


비겁한 이별에 대해

시간을 갖자 말하는 것은 결국 비겁한 이별이나 다름 없다. 잠수 이별과 맥락이 같기 때문이다.
시간을 갖자 말하는 행동은 결국 이별에 대한 고통을 줄이려는 비겁한 이별이다.

잠수 이별과 마찬가지로 시간을 갖자고 말하며 이별하는 것도 비겁한 이별이기에 이러한 행동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둘의 관계에선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가 없다. 이별을 막기 위해, 원하는 것을 해주기 보다 좋은 행동이라고 느껴지는 행동을 했던 것은 아닌지, 이별을 너무 두려워하기 때문에 상대의 눈치를 보고 상대를 불편하게 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내가 역할 역전(Reversal)의 방어기제에 빠진 것은 아니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우리가 시간을 갖자 말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어쩌다 다시 연결이 되더라도 시간을 갖는 스트레스를 다시 직면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전 보다 더 잘하는 행동으로 전보다 더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그 사람에게 잘 해주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닌, 상대방이 원하는 것’임을 꼭 기억해야 한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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