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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희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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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희생을 기반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랑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연인 간의 사랑은 절대 희생을 기반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성숙한 사랑을 보이는 사람은 자신을 위하듯 상대를 위하며 상대의 기분이나 감정을 고려하여 자신의 행동을 결정한다.

연락을 하지 않으면 상대가 기다릴 것을 염려해 바쁘더라도 연락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바쁘니 연락하지 않아도 상대가 다 알아서 이해할 것으로 생각한다. 오로지 ‘나’ 자신밖에 모르는 나르시시스트는 성숙한 사랑의 기본인 서로 상호적이며 호혜성을 가진 연애가 아닌 상대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자신의 행동의 특별함만 강요한다.

나르시시스트와 연애를 하면 그 사람을 지원하기 위해 자신의 자아를 상대에게 흡수시켜 버린다. 겉으로 볼 땐 상대에게 모든 것을 헌신하는 사랑으로 보일 수 있으나 상대의 자아만 거대하게 부풀릴 뿐 결국 흡수된 사람의 자아는 끝없는 공허함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사랑의 호혜성

호혜성이란 서로 주고받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들과 연애를 하는 파트너는 자아를 흡수당해 상대의 욕구에 자신을 끼워 맞춘다.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어 감정을 이야기하거나 서운함을 토로하면 오히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더 많은 것을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내가 주말마다 찾아가는 노력은 왜 인정해 주지 않는 거야?” 사실 찾아오라고 말한 적도 없고 매번 찾아오지 않아도 서로 함께 있다는 그런 감정만 느끼게 해주면 충분하다는 말을 아무리 했어도 소용없다.

그저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주고 싶은 것만 주며 자신의 행동에 취해 있을 뿐 연인이 원하는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행동은 자신을 부풀리는 수단으로 결국은 ‘자신이 받는’ 행동으로 귀결된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이 그들에게 끌리다.

흔히 불안형 애착이 나르시시스트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가치를 낮게 평가하고 자기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언가 요구하거나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를 보완하기에 나르시시스트는 너무나 완벽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욕구만을 위해 행동한다 하더라도 결국 사랑에 대한 호혜성을 보이려면 둘 다 건강해야 한다는 조건이 요구된다.

서로 주고받는 관계는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는데 그들은 상대의 신뢰만 강요할 뿐 자신의 행동은 전혀 바꾸려 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안정감을 느끼는 연애를 이어가려면 당신의 속 마음을 그 사람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이 싫어할까 혹은 그 사람이 내 욕구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 예상되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면 그 관계는 이미 죽은 관계나 다름없다. 당신의 문제가 아니다. 표현을 어려워 하는 사람이라도 안정감을 주는 사람이면 표현할 수 있다.

참고 칼럼: 불안형 애착이 회피형 애착에게 끌리는 이유.


물론 어떤 관계든 당신이 안정적인 연애를 유지하려면 나르시시스트를 만나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어야 한다. 사랑에 희생하지 말고 절대 약해지지 말자,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라도 당신의 자아를 지켜야 한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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