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이라는 말로 가려지는 강압적 통제

저녁 식탁에서 말다툼이 시작됐다.

한 사람은 더 이야기하면 후회할 것 같다며 밖에 나가 걸으려 한다. 배우자는 붙잡지 않는다. 두 사람은 다음 날 다시 이야기한다.

다른 집에서도 비슷한 말이 오간다. 그러나 한 사람이 밖으로 나가려 하자 배우자가 현관을 막는다. 자동차 열쇠를 감추고 휴대전화를 빼앗는다. 상대는 결국 방으로 돌아간다.

두 집 모두 “부부싸움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는 대화를 중단할 자유가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는 없었다.

갈등과 폭력의 경계는 바로 이런 장면에서 드러난다.

싸움이 끝난 뒤 누구의 생활이 달라지는가

부부갈등은 서로 다른 요구가 부딪치는 일이다.

돈을 더 아끼자는 사람과 지금도 충분히 아끼고 있다는 사람이 다툴 수 있다. 한 사람은 주말을 함께 보내고 싶지만 다른 사람은 혼자 쉬고 싶을 수 있다.

목소리가 높아질 수도 있고 서운한 말을 할 수도 있다. 건강한 모습은 아니지만, 갈등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폭력적인 관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갈등이 지나간 뒤에도 두 사람이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는가. 상대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돈과 외출, 인간관계를 제한받지는 않는가. 사과와 조율을 통해 새로운 합의를 만들 수 있는가.

강압적 통제가 있는 관계에서는 싸움이 끝나도 한 사람의 생활이 이전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한다. 카드 사용 내역을 미리 설명한다. 전화를 놓칠까 봐 샤워할 때도 휴대전화를 가까이 둔다. 상대가 싫어하는 옷은 입지 않는다.

다음 싸움을 피하기 위해 자기 삶을 조금씩 줄이는 것이다.

다툼은 끝났는데 한 사람만 계속 조심하고 있다면, 무엇을 두고 싸웠는지보다 왜 그 사람이 두려워하게 됐는지를 봐야 한다.

통제는 걱정과 사랑의 말로 시작된다

강압적 통제는 처음부터 무서운 얼굴로 나타나지 않는다.

“걱정되니까 도착하면 연락해.”

“부부 사이에 숨길 게 뭐가 있어?”

“내가 돈을 관리하는 게 우리 가족을 위한 일이야.”

“그 친구는 너한테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각각의 말만 들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연인이나 부부가 서로의 위치를 공유하고 통장을 함께 관리하는 일 자체가 통제인 것도 아니다.

차이는 거절했을 때 나타난다.

위치 공유를 끄면 화를 내는가.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으면 외도를 의심하며 추궁하는가. 혼자 쓸 돈을 요구하면 경제관념이 없다며 생활비를 끊는가. 친구를 계속 만나면 며칠 동안 무시하거나 모욕하는가.

동의해서 함께하는 것과 보복이 두려워 따르는 것은 전혀 다르다.

통제는 상대가 무엇을 선택했는지만 관리하지 않는다.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약하게 만든다.

나중에는 명령하지 않아도 된다. 상대가 화낼 만한 일을 스스로 피하게 되기 때문이다.

상처가 보이지 않아도 폭력은 존재한다

폭력을 떠올리면 대개 손찌검부터 생각한다.

그러나 신체적 폭력은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일부다. 물건을 부수며 겁을 주거나, 성관계를 강요하고, 가족이나 친구에게 연락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 일을 그만두게 하거나 병원에 가는 일을 막고, 돈을 쓸 때마다 허락받게 만드는 것도 통제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직접 때리지 않고 벽을 치는 사람도 있다.

“너를 때린 건 아니잖아”라고 말하지만, 그 장면을 본 사람은 다음에는 주먹이 어디로 향할지 생각하게 된다. 실제로 맞지 않았더라도 두려움은 이후의 행동을 바꾼다.

폭력의 흔적은 멍으로만 남지 않는다.

싫다고 말하지 못하게 된 생활에도 남는다.

둘 다 화냈다는 말이 놓치는 것

폭력적인 장면이 드러나면 사람들은 누가 먼저 욕했고 누가 먼저 손을 댔는지를 묻는다.

필요한 질문이다. 그러나 그 장면 하나만으로 두 사람의 관계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이 현관을 막고 휴대전화를 빼앗자 다른 사람이 빠져나가기 위해 밀쳤을 수 있다. 오랫동안 감시와 모욕을 당한 사람이 어느 날 고함을 지르거나 물건을 던졌을 수도 있다.

그 행동을 무조건 정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위협과 신체적 행동은 각각의 맥락에서 진지하게 살펴야 한다.

다만 행동의 개수만 세어 “둘 다 똑같다”고 말해서는 중요한 사실을 놓칠 수 있다.

누가 상대의 돈을 관리하고 있는가. 누가 인간관계를 끊게 했는가. 누가 이별을 말했을 때 협박하는가. 누가 상대의 반응이 두려워 일상을 바꾸고 있는가.

두 사람 모두 화를 냈다는 사실이 두 사람에게 같은 힘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폭력을 판단할 때는 한 번의 장면뿐 아니라 반복되는 행동, 힘의 차이, 보복에 대한 두려움과 그로 인해 달라진 생활을 함께 봐야 한다.

사과보다 다음 갈등을 봐야 한다

통제하는 사람도 후회할 수 있다.

울면서 잘못했다고 말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술과 스트레스 때문이었다고 설명하거나, 사랑하기 때문에 질투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눈물이 모두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후회와 변화는 다르다.

“미안하지만 네가 먼저 자극했잖아”라는 말에는 책임이 없다. 사과처럼 들리지만 결국 상대가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돌아간다.

실제 변화는 다음 갈등에서 나타난다.

화가 나도 출입을 막지 않는가. 휴대전화를 검사하지 않는가. 경제적 자유를 돌려주는가. 성관계와 만남을 거절할 권리를 인정하는가. 관계를 끝내겠다는 선택에도 보복하지 않는가.

선물과 다정한 말은 며칠이면 준비할 수 있다.

통제할 권리를 내려놓는 일은 훨씬 오래 걸린다.

사과를 믿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그 사람이 얼마나 간절하게 말했는지보다 이후의 행동이 얼마나 오래 달라졌는지를 봐야 한다.

부부상담보다 안전이 먼저인 관계

일반적인 부부갈등에는 공동상담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서로의 요구를 이해하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관계가 나아질 수 있다. 그러나 강압적 통제와 보복이 있는 관계에서는 같은 접근이 위험할 수 있다.

부부상담은 두 사람이 상담실에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진다.

하지만 상담에서 한 말을 집에 돌아가 추궁당한다면 두 사람은 동등한 조건에 있지 않다. 통제하는 사람이 상담자의 표현을 빌려 상대를 탓하거나, 상담 중에 들은 약점을 다음 싸움에 이용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진실을 말한 대가를 집에서 치러야 한다면 대화법보다 안전 확인이 먼저다.

이 관계가 두 사람의 소통 문제인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자유를 빼앗는 문제인지 개별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강압적 통제나 보복의 위험이 의심된다면 가정폭력 전문기관의 도움을 먼저 받는 편이 안전하다.

폭력은 피해자가 더 부드럽게 말한다고 멈추지 않는다.

통제하는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멈추고 책임져야 한다.

떠나지 못한다고 동의한 것은 아니다

밖에서는 쉽게 말할 수 있다.

“그런 사람과 왜 계속 살아?”

“당장 집을 나오면 되잖아.”

그러나 강압적 통제는 사람을 붙잡는 동시에 빠져나갈 때 필요한 것들을 없앤다.

혼자 쓸 돈이 없을 수 있다. 연락할 친구와 가족이 이미 멀어졌을 수도 있다. 아이와 반려동물이 걱정될 수 있고, 신분증과 통장을 상대가 보관하고 있을 수도 있다.

이별 의사를 밝히는 과정에서 위협이 심해지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준비되지 않은 이별 통보나 정면 대결을 무조건 권해서는 안 된다. 안전한 연락 수단과 머물 곳, 필요한 서류와 돈, 도움을 청할 사람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도움을 요청했다가 다시 돌아갔다고 해서 처음의 피해가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니다. 위험한 관계를 벗어나는 과정은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왜 떠나지 않느냐”보다 “안전하게 선택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는 편이 낫다.

마지막 기준은 거절할 자유다

모든 부부싸움이 폭력은 아니다.

반대로 폭력을 부부싸움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사적인 갈등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다.

구분하기 어렵다면 한 가지 질문에서 시작할 수 있다.

나는 이 관계에서 안전하게 싫다고 말할 수 있는가.

외출과 소비, 인간관계와 성관계에 대해 거절할 수 있는가. 잠시 대화를 멈추거나 다른 방으로 이동할 수 있는가. 관계를 끝내겠다는 말 때문에 생계와 아이, 신체의 안전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가.

갈등이 있어도 이 권리는 남아 있어야 한다.

결혼은 함께 살아가기로 한 약속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허가하는 권리를 얻는 계약은 아니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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