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해서 마음이 갔다는 치명적인 착각
어둑한 조명이 깔린 카페 구석 자리. 탁자 위에는 다 식어버린 커피가 놓여 있다. 맞은편에 앉은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시선은 테이블 어딘가를 향해 떨어져 있고, 목소리는 가늘게 떨린다.
“난 늘 진심을 다하는데, 사람들은 결국 다 나를 상처 입히고 떠나더라고.”
그 쓸쓸한 얼굴을 보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쿵 내려앉는다. 세상의 모든 풍파를 혼자 다 맞은 듯한 저 처연한 어깨를 안아주고 싶어진다.
내 앞의 이 사람은 너무나 여리고 섬세해서 거친 세상이 자꾸만 생채기를 내는 것만 같다.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내가 이 사람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당신은 문을 열어준다. 비를 맞고 서 있는 처량한 사람을 기꺼이 지붕 아래로 들인 거다. 따뜻한 수건으로 닦아주고 차를 끓여 내어주며 온기를 나눈다. 기꺼이 그의 다정한 보호자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이것이 당신이 저지른 뼈아픈 착각이다.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기가 막힌 포장지
내현성 나르시시스트는 우리가 흔히 아는 오만방자한 부류와 결이 다르다. 목에 힘을 주고 자기를 과시하지 않는다. 대신 한없이 몸을 웅크리고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이들이 흔하게 꺼내는 카드는 잘난 척이 아니라 처절한 자기 연민이다.
이들은 지난 연애사를 이야기할 때 항상 억울한 피해자 자리를 선점한다. 전 연인들은 모두 이기적이거나 이상한 사람이었고, 자신은 상처받은 선량한 영혼이다.
- “나한테 이렇게 맹목적으로 잘해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이 달콤하고 슬픈 고백을 들으면 자신이 아주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 빠진다. 그가 겪은 과거의 불행한 연애사 속에서 마침내 그를 구원할 유일한 빛이 된다. 나만이 이 사람의 진가를 알아보고, 나만이 이 닫힌 마음을 열 수 있다고 믿는다.
숨은 뜻은 서늘하다. 당신이 정말 특별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앞으로도 내 입맛에 맞게 나를 떠받들고 챙겨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다.
조금이라도 그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행동을 하면 언제든 ‘너도 나한테 상처를 주는 똑같은 사람’으로 전락한다. 당신은 그가 던져준 ‘천사 같은 구원자’라는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스스로를 지워나가기 시작한다.
동정심을 먹고 자라는 밑 빠진 독
관계를 유지할수록 이상한 피로감이 몰려온다. 끊임없이 그의 기분을 살피고 우울함을 달래주려 애쓴다. 맛있는 것을 먹이고, 좋은 곳에 데려가고, 밤새 하소연을 들어준다.
대화의 주제는 언제나 그의 상처, 그의 우울, 그의 불만이다. 삶은 어느새 그를 위로하고 돌보는 보모의 역할로 쪼그라든다.
그가 조금 웃어주면 세상을 다 가진 듯 기쁘다가도 다시 우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내가 뭘 잘못했나. 내 위로가 부족했나.
-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진짜 쓸모없고 짐만 되는 사람 같네.”
용기를 내어 서운함을 표현하거나 지친 기색을 보일 때 그들이 내뱉는 말이다. 얼핏 들으면 자신을 탓하는 것 같지만 속내는 정반대다. ‘네가 감히 내 기분을 망치고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으니 당장 사과하고 나를 원래대로 달래놓아라’라는 윽박지름이다.
이 교묘한 화법에 당하고 나면 분명 상처받은 건 당신인데 어느새 쩔쩔매며 그를 위로하고 있다. 내가 너무 심하게 말했나. 이 사람 상처가 많은 사람인데 내가 또 상처를 줬구나. 자책하며 그들의 발밑으로 기꺼이 들어간다.
그들은 당신의 동정심과 죄책감을 영양분 삼아 자신의 덩치를 키운다. 물을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 밑 빠진 독에 대고 귀한 시간과 감정을 들이붓고 있는 셈이다.
눅눅하게 번져가는 죄책감이라는 곰팡이
그의 곁에 있으면 온몸이 젖은 솜처럼 무거워진다. 맑고 건조했던 일상에 끈적하고 습한 기운이 스며든다.
그들은 당신이 햇빛 아래서 웃고 떠드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친구들을 만나 즐겁게 지내거나 회사에서 좋은 성과를 내면 귀신같이 우울한 기운을 뿜어낸다. 직접적으로 가지 말라고 화를 내는 대신 깊은 한숨을 쉬거나 어딘가 아픈 척을 한다.
- “너는 참 밝아서 부럽다. 나 같은 건 아무도 신경 안 쓰는데. 재밌게 놀다 와.”
투정이 아니다. ‘네가 감히 나를 두고 행복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는 족쇄다. 당신이 문을 나서면서 죄책감을 느끼기를, 즐거운 자리에서도 온통 자기 걱정만 하기를 바라는 거다.
결국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를 줄이고 좋은 일이 생겨도 그 사람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게 된다.
이들의 우울은 전염성이 강한 곰팡이에 가깝다. 방 한구석에서 조용히 피어나 어느새 벽지를 다 까맣게 덮어버리고 숨통을 조여온다. 당신이 아무리 햇빛을 끌어다 비추고 바람을 통하게 하려 애써도 소용없다.
그들은 그 눅눅한 어둠 속에 머물며 당신마저 끌어내리려 할 뿐이다. 스스로 일어설 생각은 애초에 없다. 그저 누군가 불쌍한 자신을 평생 책임져 주길 바라는 지독한 이기심만이 웅크리고 있다.
구원자 노릇을 내려놓아야 할 시간
당신이 유난히 착해서, 혹은 바보 같아서 이 늪에 빠진 게 아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타인의 고통에 민감할수록 이들의 처연한 연기에 쉽게 넘어간다.
불쌍하다는 감정은 사랑이 아니다. 착취하기 좋은 구실일 뿐이다. 당신은 상처받은 영혼을 구원하는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 아니다. 현실은 그저 교묘하게 감정을 뜯어먹히며 서서히 말라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그 사람은 당신이 고칠 수 없다. 열 번을 잘해주어도 한 번의 서운함으로 모든 것을 당신 탓으로 돌릴 사람이다. 평생을 억울함 속에서 살며 주변 사람들의 기를 빨아먹는 생존 방식을 택했다.
그 쓸쓸한 뒷모습에,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그 눈빛에 더 이상 속을 필요가 없다. 미안해할 필요도, 죄책감을 가질 이유도 없다. 소중한 에너지는 밑 빠진 독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삶을 돌보는 데 써야 마땅하다.
불쌍하다는 핑계로 계속 그 곁에 머문다면 결국 가장 불쌍해지는 것은 당신 자신이 된다. 매정한 사람이 되는 게 낫다. 나쁜 년 소리 들어도 괜찮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 축축한 방에서 걸어 나오면 된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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