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실은 제단이었고, 당신은 그날의 제물이었다
조직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거행되는 그 세련되고 야만적인 마녀사냥에 대하여
양복 입은 원시인들의 의식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회의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만이 적막을 채운다. 프로젝트는 실패했고,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상석에 앉은 리더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패어 있고, 그 입가에는 비릿한 분노가 감돈다.
팀원들은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자신의 노트북 화면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들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모두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지금 이 방 안에 가득 찬 불안과 수치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피가 필요하다는 것을.
리더의 입이 열리고, 날카로운 고성이 터져 나온다. 그 화살이 누군가를 향하는 순간, 나머지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다행이다. 내가 아니다. 오늘 제단에 올라갈 제물은 바로 당신이다.
“김 과장, 자네가 문제야. 자네의 그 안일한 태도가 우리 팀 전체를 망쳤어.”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정말로 실수를 했는지, 혹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이었는지는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원인 분석이 아니라, 이 모든 재앙의 원인을 뒤집어쓸 구체적인 대상, 즉 희생양(Scapegoat)이다.
고대 부족 사회에서 전염병이 돌면 산 짐승을 잡아 신에게 바쳤던 것처럼, 현대의 사무실에서도 매일같이 희생 제의가 벌어진다.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맸을 뿐, 그 본질은 집단적인 광기이자 가장 비겁한 생존 본능이다.
리더는 자신의 무능을 감추기 위해 당신을 제물로 지목했고, 동료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침묵으로 동조했다. 당신은 일을 못해서 혼난 것이 아니다. 조직의 불안을 흡수하여 폐기될 쓰레기통으로 간택된 것이다.
리더의 수치심을 받아내는 하수구

나르시시스트 리더에게 실패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자아는 비대하지만 그 껍질은 달걀 껍데기처럼 얇다. 프로젝트의 실패나 조직의 위기는 그들의 얇은 자아에 치명적인 균열을 낸다. 그들은 이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을 견디지 못한다.
보통의 리더라면 “내 책임이다”라고 말하며 무게를 짊어질 것이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내면에 고인 수치심이라는 오물을 밖으로 배설해야만 살 수 있다. 그 오물을 받아낼 그릇이 바로 당신이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투사(Projection)라고 부른다.
그가 당신에게 “무능하다”, “게으르다”, “이기적이다”라고 소리칠 때, 사실 그는 거울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비난의 단어들은 정확히 그가 자기 자신에게 느끼는 혐오감이다. 그는 자신의 무능함을 당신에게 뒤집어씌움으로써, 자신은 여전히 유능하고 완벽한 리더라는 환상을 지켜낸다.
당신이 희생양이 된 것은, 당신이 가장 약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그 오물을 받아내기에 가장 적절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혹은 당신이 그의 치부를 꿰뚫어 보는 눈을 가졌기 때문에, 그 눈을 뽑아버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당신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심리적 안정을 되찾는다. 당신의 멘탈이 붕괴될수록 그는 기이할 정도로 차분해지고 생기를 되찾는다. 그는 당신의 생명력을 연료로 태워 자신의 추락하는 비행기를 다시 띄운 것이다.
동료들의 침묵, 공포가 만든 공범들

이 잔혹한 연극이 성공하려면 리더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하다. 관객들의 동조가 필수적이다. 당신의 동료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커피를 마시며 상사 욕을 했던 그들이, 회의실에서는 리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당신을 외면한다.
배신감에 치가 떨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심리 기제는 단순하다. 공포다. 그들은 보았다. 당신이 어떻게 발가벗겨져 난도질당하는지를.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계산한다. 지금 당신을 변호하다가는 다음번 제물은 자신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르시시스트 리더는 공포를 통치 수단으로 삼는다. 그는 희생양 하나를 본보기로 처형함으로써 나머지 구성원들을 통제한다.
“너희들도 줄 잘 서. 안 그러면 저 꼴 난다.” 동료들이 당신을 비난에 동참하는 것은, 리더에게 충성심을 증명하여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비굴한 몸부림이다.
그들은 당신이 미워서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돌을 맞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돌을 집어 든 것일 뿐이다.
내부 고발자의 숙명
그렇다면 왜 하필 당신이었을까. 업무 실수가 잦아서? 성격이 모나서? 아닐 가능성이 높다. 조직 내 희생양으로 지목되는 사람은 대개 업무 능력이 뛰어나거나, 도덕적 기준이 높거나,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는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다.
당신은 아마도 회의 시간에 모두가 침묵할 때 문제점을 지적했거나, 리더의 비합리적인 지시에 의문을 제기했을 것이다. 혹은 리더가 굳이 말하지 않고 은폐하려던 조직의 썩은 환부를 건드렸을지도 모른다.
나르시시스트 리더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일 못 하는 직원이 아니라, 진실을 말하는 직원이다. 당신은 왕이 벌거벗었다고 말한 죄를 지었다.
그들은 당신의 입을 막고, 당신의 발언권(Credibility)을 박탈하기 위해 당신을 ‘문제 사원’이나 ‘사회 부적응자’로 프레임 씌워야 했다. 당신이 이상한 사람이 되어야만, 당신이 지적한 그들의 문제가 헛소리가 되기 때문이다.
당신이 겪는 고립감은 당신의 결함 때문이 아니다. 썩은 물속에서 혼자 맑으려 했던 정수기의 필터가 감당해야 할 필연적인 오염이다.
제단에서 내려와 문을 박차고 나가라

이 희생양 만들기 게임에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오해를 풀려고 노력하는 것? 더 열심히 일해서 성과로 증명하는 것? 동료들에게 진심을 호소하는 것? 안타깝게도 이 모든 시도는 실패한다.
이미 당신은 마녀로 낙인찍혔고, 마녀가 하는 모든 말은 저주로 들릴 뿐이다. 당신이 억울함을 호소할수록 그들은 “거봐, 쟤는 감정 조절도 못 해”라며 비웃을 것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제단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그들이 당신을 묶어놓은 그 수치심의 기둥에서 스스로 밧줄을 풀고 걸어 나와야 한다.
“나는 당신들의 쓰레기통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순간, 그들의 비난은 당신의 피부를 뚫지 못한다. 리더가 소리를 지르면 ‘아, 저 사람이 지금 자신의 무능함을 견디지 못해 발작을 일으키는구나’라고 관조하라.
동료들이 외면하면 ‘겁쟁이들이 숨을 곳을 찾았구나’라고 생각하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조직을 떠나라.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조직은 이미 내부적으로 썩어 문드러진 조직이다. 자정 작용이 멈춘 곳이다.
당신이 떠나면 그들은 잠시 평화로울지 모르지만, 곧 다시 불안해질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희생양을 찾아낼 것이다. 그 지옥도는 영원히 반복된다.
당신은 그들이 뱉어낸 오물을 뒤집어쓸 이유가 없다. 당신은 제물이 아니라, 제 발로 걸어 나가는 존엄한 인간이다. 문을 박차고 나와라.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그 썩은 냄새 진동하는 제단을 떠나라. 바깥공기는 차갑지만, 적어도 비릿하지는 않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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