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싸움 ‘소송 학대(Litigation Abuse)’

당신은 이혼 서류를 접수하며, 이것이 고통의 끝이기를 바랐다. 합리적인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의 공정한 판결을 기대했다. 당신은 ‘정의’를 원했다.

하지만 당신의 상대는 ‘승리’를 원한다. 아니, 승리보다 더 지독한 것. 그는 당신의 ‘파멸’을 원한다.

당신이 마주한 것은 법률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소송 학대(Litigation Abuse)’다.

이것은 법의 시스템을 무기 삼아 상대를 통제하고, 경제적으로 고갈시키며, 정서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다. 나르시시스트나 소시오패스 성향의 인간에게 법정은 완벽한 놀이터다.

그들은 이 게임의 규칙을 본능적으로 안다. 당신이 평화로운 종결을 위해 법원을 찾았을 때, 그는 당신을 죽이기 위해 전쟁터에 입장한다.

법정은 그의 새로운 무대다

그는 왜 이 싸움을 멈추지 않는가. 당신은 그가 단지 돈이나 양육권을 원한다고 생각한다. 틀렸다. 그는 그가 잃어버린 ‘통제권’을 되찾고, 감히 자신을 버린 당신을 ‘처벌’하기 위해 이 모든 짓을 벌인다. 당신의 고통 그 자체가 그의 목적이다.

그에게 법정은 자신의 우월함과 정당성을 증명할 완벽한 무대다.

그는 거짓말을 한다. 숨 쉬는 것처럼. 그는 판사와 조정위원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헌신적인 배우자였는지, 얼마나 상처받은 피해자인지 눈물을 글썽이며 연기한다.

그의 연기는 완벽하다. 그는 자신이 만든 거짓말을 스스로 진실이라 믿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당신은 어떤가. 당신은 수년간의 학대로 이미 지쳐있다. 당신은 진실을 말하지만, 그 진실은 너무나 끔찍하고 비상식적이어서 오히려 거짓말처럼 들린다.

당신은 억울함에 목소리를 높이고, 분노하고, 눈물을 흘린다. 판사의 눈에 당신은 ‘감정적이고 불안정한 사람’으로 비친다. 그는 ‘이성적이고 침착하게 상처받은 사람’으로 보인다.

이것이 ‘법정 가스라이팅’이다. 그는 당신이 제출한 모든 증거를 교묘하게 왜곡한다. 당신이 보낸 “제발 그만해, 죽을 것 같아”라는 문자 메시지는, 그가 당신을 학대했다는 증거가 아니라 당신이 원래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로 둔갑한다.

법은 감정이 아니라 증거로 말한다. 하지만 정서적 학대는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당신의 영혼에 새겨진 멍자국을 법원에 제출할 방법은 없다. 그는 이 사실을 알고, 법의 맹점을 정확히 파고든다.

승리가 아니라 고갈이 목적이다

당신은 이 싸움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한다. 그는 이 싸움을 최대한 ‘오래 끌고’ 싶어 한다. 이 근본적인 목적의 차이가 당신을 패배하게 만든다.

소송 학대 (Litigation Abuse)의 핵심 전술은 ‘고갈’이다. 그는 당신의 돈, 시간, 정신력을 완전히 바닥내려 한다.

첫째, 그는 ‘지연’시킨다.

그는 재판 기일을 앞두고 갑자기 변호사를 해임한다. 새로운 변호사가 사건을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기일은 몇 달 뒤로 밀려난다.

그는 서류 제출 기한을 어기고, 사소한 트집을 잡아 이의를 제기한다. 당신은 일상을 회복하려다가도, 몇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재판 기일 때문에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다. 당신의 삶은 통째로 정지된다.

둘째, 그는 ‘홍수’를 일으킨다.

그는 당신을 정보의 홍수 속에 익사시킨다. 그는 당신의 지난 10년간의 카드 내역, 초등학교 생활기록부, 친구와의 SNS 대화 내용까지, 사건과 아무 상관없는 자료들을 무더기로 요구한다.

당신은 그 자료들을 준비하느라 밤을 새우고, 그 과정에서 당신의 모든 사생활이 그에게 다시 한번 농락당하는 모욕을 견뎌야 한다. 변호사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다.

셋째, 그는 ‘사소함’으로 공격한다.

그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건다. 이혼과 상관없는 예전의 사소한 일을 트집 잡아 별도의 민사 소송을 걸거나, 당신의 부모를 고소하겠다고 협박한다.

당신이 아이 학원 문제로 문자를 보내면, 그는 10페이지가 넘는 답변서로 응수한다. 내용은 없다. 오직 당신을 지치게 만들려는 의도뿐이다.

당신은 깨닫는다. 그는 이기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는 그저 당신이 지쳐서 무너지기를 바란다. 당신이 가진 모든 자원을 소진시켜, 아이와 함께 길거리에 나앉기를 바란다.

그에게는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당신보다 단 10만 원이라도 더 쓸 각오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당신을 파괴하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삶도 기꺼이 담보로 잡는다.

아이는 가장 강력한 인질이다

만약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있다면, 전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 나르시시스트에게 아이는 사랑스러운 자식이 아니다. 아이는 당신을 통제하고, 당신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완벽한 무기다.

그는 양육권을 원하지 않는다. 그는 당신이 양육권을 ‘못 갖게’ 하고 싶을 뿐이다. 그는 당신이 아이를 학대했다는 거짓 신고를 서슴지 않는다. 그는 경찰과 아동보호기관을 당신의 집에 출동시켜, 당신을 ‘문제 있는 부모’로 낙인찍는다.

당신은 아이를 지키려다, 오히려 아이 앞에서 아동 학대 조사를 받는 가해자로 전락한다.

그는 ‘부모 따돌림(Parental Alienation)’을 시도한다. 그는 아이 앞에서 당신을 비난한다. “엄마(아빠)가 우리 돈 다 가져가서 아빠(엄마)가 힘든 거야.”, “엄마(아빠)는 너보다 새 남자가 더 중요한가 봐.”

그는 아이에게 값비싼 선물을 사주며, 당신을 무능한 부모로 만든다. 아이는 혼란에 빠지고, 결국 당신을 원망하게 된다. 그는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당신의 존재 자체를 무너뜨린다.

그는 ‘공동 양육’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의 삶을 방해한다. 그는 아이의 병원, 학교, 학원 문제 등 모든 결정에 사사건건 반대한다(Counter-parenting). 그의 목적은 아이의 행복이 아니다.

오직 당신의 뜻을 꺾는 것이다. 그는 면접교섭일을 당신을 괴롭히는 도구로 쓴다. 약속된 주말에 아이를 데려가지 않아 당신의 계획을 망치고, 엉뚱한 날에 아이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당신의 삶은 이혼 후에도 여전히 그의 스케줄에 종속된다.

사회는 어떻게 ‘소송 학대’ 에 동참하는가

당신을 가장 절망하게 하는 것은, 이 모든 학대를 사화가 방조한다는 사실이다.

법원은 공정함을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감정 없이 서류만 본다. 판사는 두 사람이 ‘똑같이’ 갈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학대하고, 다른 한쪽이 그에 반응한다는 진실을 보지 못한다.

법원은 ‘합의’를 종용한다. 조정위원은 “아이를 생각해서 한발씩 양보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에게 양보란 없다.

그의 터무니없는 요구와 당신의 합리적인 요구 사이에서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은, 결국 당신만 양보하라는 말과 같다. 시스템은 학대자의 전략에 완벽하게 놀아난다.

시스템은 느리다. 당신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접근금지 신청을 해도, 결정이 나오는 데는 몇 주가 걸린다. 그 사이 그는 당신과 아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힌다.

시스템은 돈이 든다. 그는 당신의 돈을 고갈시키는 것이 목적인데, 시스템은 그 돈이 없으면 당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 변호사를 살 돈이 없는 피해자는, 가장 먼저 이 전쟁에서 패배한다.

이것은 승리가 아니라, 생존이다

나르시시스트와의 소송 전쟁에서 당신은 ‘승리’할 수 없다. 그의 사전에는 공정한 패배나 깨끗한 승복이라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이 싸움의 목표는 승리가 아니다. 오직 ‘생존’이다.

당신은 그를 이기려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은 그저 그와의 연결을 끊어내야 한다.

첫째, 당신의 변호사는 법률 지식뿐만 아니라 ‘성격 장애’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당신의 변호사에게도 거짓 연기를 할 것이다. 당신의 변호사가 그에게 휘둘리거나, “그냥 합의하시죠”라고 말한다면, 그 변호사는 당장 해고해야 한다.

둘째, 당신은 ‘회색 돌(Grey Rock)’이 되어야 한다. 그가 던지는 모든 비난과 도발에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마라. 당신의 분노, 슬픔, 억울함은 그에게 승리했다는 신호를 주는 트로피일 뿐이다.

모든 소통은 변호사를 통해서만, 혹은 이메일이나 양육 앱을 통해서만 건조하게 하라. 사실과 요구사항만 전달하라. 당신의 감정을 그에게 보여주는 것은, 불길에 기름을 붓는 짓이다.

셋째, 집착을 버려라. 당신은 법정에서 ‘정의’가 구현되기를, 그가 ‘벌’받기를 바란다. 그 기대를 버려야 한다. 법원은 정의를 구현하는 곳이 아니라, 갈등을 종결하는 곳일 뿐이다.

당신이 그에게서 완벽한 배상을 받아내려 할수록, 당신은 그의 늪에 더 깊이 빠진다. 최소한의 것을 얻고, 최대한 빨리 빠져나오는 것이 유일한 승리다.

이 전쟁은 그가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더 이상 그의 전쟁에 참전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순간 끝난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와의 싸움이 아니라, 당신의 삶을 재건하는 것이다. 그의 비난이 아닌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 연습을 하고, 당신의 감각을 다시 믿는 연습을 해야 한다.

법정에서 그가 이기든 말든, 당신의 일상을 행복으로 채우는 것. 아이와 웃고, 친구와 커피를 마시고, 당신의 일에 집중하는 것.

그가 당신의 삶에 더 이상 아무런 감정의 파문도 일으키지 못하는 순간, 비로소 당신의 길고 길었던 전쟁은 끝난다. 소송 학대(Litigation Abuse)로 부터의 진짜 당신의 승리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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