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의 습도 속에서 피어나는 종류의 인간이 있다. 햇살 아래 바삭하게 마른 일상보다는, 눅눅하게 젖은 감정의 이면을 헤집는 일에 유독 능숙한 이들. 연희동의 조용한 한옥 카페, 창밖으로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오후였다. 그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직이 읊조린다.

  • “사람들은 참 무신경해. 어떻게 저렇게 거친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지? 난 비 오는 날의 흙냄새까지 느껴져서 마음이 시린데 말이야.”

그 순간, 당신은 가슴 한구석이 찡해지는 것을 느낀다. 세상의 거친 무신경함에 상처받은, 여리고 섬세한 영혼이 눈앞에 있다. 남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미묘한 감정의 뉘앙스를 포착해내는 그 특별함.

당신은 기꺼이 그 특별함을 지켜주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싶어진다. 내가 그의 예민함을 이해하고, 이 거친 세상으로부터 그를 보호해주리라 다짐한다.

이것이 당신이 발을 들인, 길고 지독한 착각의 시작이다.

눅눅한 감정은 주변을 습하게 만든다

내현성 나르시시스트가 주장하는 ‘섬세함’은 우리가 흔히 아는 예술가적 감수성이나 타인을 향한 배려와 결이 완전히 다르다. 이들의 섬세함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에게만 향해 있는 시선이다.

자신의 감정 상태, 자신의 상처, 자신이 받는 대우에만 지나치게 과몰입하는 상태다.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는 레이더는 고장 났거나,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 “저 사람 아까 나보고 웃을 때, 눈가가 미묘하게 떨렸어. 나를 비웃은 게 분명해.”

이 말의 속내는 서늘하다. 당신이 보기엔 전혀 문제없는 일상적인 인사를, 그는 자신을 향한 공격이나 무시로 왜곡해서 받아들인다. ‘내가 너무 특별하고 섬세해서 남들이 무심코 던진 시선조차 상처가 된다’는 기괴한 우월감의 표현이다.

그의 곁에 있으면 당신의 일상은 서서히 눅눅해진다. 그의 시시각각 변하는 기분을 살피느라 긴장 상태가 지속된다. 당신이 맑고 건조한 기분으로 건넨 말도, 그의 눅눅한 마음을 거치면 축축하고 무거운 원망으로 되돌아온다.

당신은 끊임없이 미안해하고, 그의 상처를 달래주느라 진을 뺀다. 쾌적했던 당신의 정신세계에 끈적한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셈이다.

당신을 무신경한 가해자로 만드는 마법

관계를 유지할수록 당신은 서서히 예민하고 표독스러운 가해자가 되어간다. 건강한 관계라면 서로 의견이 다를 때 대화를 통해 조율한다.

하지만 그와의 대화는 언제나 당신의 사과로 끝난다. 그가 전매특허처럼 꺼내 드는 ‘상처받은 섬세함’이라는 방패 앞에서는 어떤 논리도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 “넌 칭찬이라고 했지만, 나한테는 비아냥으로 들렸어. 네가 내 섬세함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그렇게 말 못 해.”

억울해서 미칠 것 같다. 진심으로 축하해준 말인데, 어느새 당신은 그의 자존감을 짓밟은 무자비한 인간이 되어 있다. 이 교묘한 화법에 당하고 나면 당신은 스스로의 기억과 진심을 의심하게 된다.

내가 정말 그렇게 무신경했나. 내가 이 사람에게 또 상처를 줬구나. 자책하며 그의 눈치를 살피고 비위를 맞춘다. 그는 침묵과 한숨으로 당신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당신은 평생 그 죗값을 치르듯 그의 헌신적인 보모가 되기로 자처한다.

섬세한 건 그가 아니라 당신의 공감 능력이다

당신이 유난히 눈치가 없어서, 혹은 사랑이 부족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게 아니다. 그는 당신의 찬사를 먹고 살지만, 당신에게 고마워할 마음은 애초에 없다.

이제 그 어색함에 속지 마라. 그들은 겸손한 게 아니라 지독하게 오만해서 당신의 평범한 칭찬을 하찮게 여기는 것뿐이다. 당신의 그 귀한 진심을 몰라주는 사람에게 더 이상 찬사를 바치지 마라.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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