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스트 부모, 그들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아이의 의견이나 생각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한다. 아이가 가진 독립성, 개별성을 인정하지 않고 의지와 인성을 억압하기 때문에 아이는 자신의 정서를 형성해 나갈 기회를 박탈 당한다.
이 부모들은 아이를 자신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의지가 없는 도구로 인식하기 때문에 아이의 의견을 허용하지 않으며 아이가 원하는 욕구를 말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욕구를 표현하려는 기색만 보여도 처벌한다.
이러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며 독립적으로 무언가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는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오롯이 부모의 결정에만 따르다 보니 자신이 가진 힘이나 능력을 실험할 기회를 박탈 당한다. 부모의 지시만 잘 따르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도 결국 그들이 허락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아무도 모르게 교묘하게
나르시시스트 부모 는 극단적인 행동으로 자녀를 대하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독립적인 선택을 하거나 자신의 욕구를 이야기할 때 알 듯 말 듯 한 미소나 찡그린 표정만으로도 아이의 의지를 부수는데 충분하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돌이 독립성을 키우지만 그들은 “다 너를 위해서야”라는 말로 독립성이 자라나는 것을 방해한다. 아이는 점점 더 무능력해지고 무기력감을 느낀다. 부모의 나르시시즘이 아이에게 우울함을 만드는 요인이다.

돌봄이 분노가 되다.
심리 상담을 받다 보면 과거 부모를 떠올릴 때 분노가 생기는 경험을 한다. 입고 싶은 옷을 입지 못할 때, 날이 추우니 더 많이 입어야 한다고 강요받았을 때, 나를 위한다고 나를 편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청소년 시기 부모가 계속 등하교를 따라다닐 때 느끼는 무력감에 의한 분노이다.
아이를 어리석은 존재,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로 평가하는 부모는 아이를 인간적으로 일관성 있게 대하지 않는다. 자신의 말을 잘 들었을 땐 매우 따듯하고 친절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냉정하고 무시하며 극단적인 대처로 아이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아이는 자신의 힘을 증명할 도구
나르시시스트 부모 는 의식적으로 아이의 욕구를 무시하고 통제한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어떠한 평가를 받는지 매우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자신의 아이의 성적이나 행실까지도 통제하려 한다. 하지만 실상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아이에게 부여하는 무력감을 본인들도 느끼고 있다.
이에 대한 보상으로 자신보다 약한 사람, 아이들을 통제하며 강하다는 우월성을 느낀다. 단지 자신들의 이러한 행동은 부모가 없으면 생존이 어려운 아이들의 생물학적 무능력을 기반으로 정당화된다. 그래서 그들은 아이가 힘을 얻지 못하도록 아이의 선택이나 결정을 비난한다. 자신들의 힘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기에 옳은 결정이라 하더라도 그들에겐 의미가 없다.
참고 칼럼: 딸아, 넌 나의 꿈을 이루어줄 작품 이란다.

선택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다.
지속적인 통제와 선택에 대한 평가절하로 자신의 삶을 통제할 힘을 갖추지 못한 채 성인이 된다. 전공, 직업은 자녀의 결정이 아닌 부모의 결정과 권유로 이어진다. 그리고 곧이어 자신들을 빛내 기 위해 자녀가 만나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에 간섭한다.
스스로 선택하고자 하는 욕심은 나르시시스트 부모 의 비난이나 죄책감이라는 고통을 견뎌야 하지만 그럴 힘이 없는 자녀들은 상황을 묵묵히 받아들인 채 자신의 욕구 없이 끝없는 공허한 삶을 이어간다.

절대 뚫을 수 없을 것만 같던 그들이 만든 껍질은 그들의 무기력과 나약함으로 만들어졌기에 그들의 껍질(논리)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당신은 아주 약간의 힘만 주어도 깰 수 있다.
자신들의 열등감을 충족시키기 위해 당신이 도구가 될 필요는 없다. 스스로의 힘을 알지 못하는 자녀들은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선택을 대신해 줄 연인, 배우자를 찾게 된다.
당신은 선택할 힘은 충분히 있다. 단지 그 힘이 있다는 것을 잠시 잊었을 뿐이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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