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이 남긴 흉터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하는, 그 역설적인 개안(開眼)에 대하여
암실에서 현상되는 진실
사진을 찍어본 사람은 안다. 가장 선명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는 눈부신 대낮의 거리가 아니라, 빛 한 점 없는 캄캄한 암실에서 비로소 그 형체를 드러낸다는 것을. 인화지 위로 상이 맺히기 위해서는, 철저한 어둠과 독한 약품 냄새를 견디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는 당신의 인생을 통째로 암실에 가두는 일이었다. 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칠흑 같은 공포, 숨을 쉴 때마다 폐를 찌르는 독성 가스 같은 비난들. 당신은 그 안에서 영원히 갇힌 것만 같았고, 당신의 인생은 까맣게 타버려 재가 되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지독한 어둠의 시간은, 역설적이게도 당신이라는 사람의 해상도를 비약적으로 높여 놓았다. 당신은 이제 안다. 빛이 그저 공기처럼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촛불 하나의 온기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빛의 소중함을 모른다. 그들에게 태양은 매일 뜨는 천체일 뿐이고, 타인의 친절은 으레 받아야 할 권리이며, 평화로운 일상은 지루한 반복일 뿐이다. 그들은 행복을 ‘강도’로 측정한다. 더 자극적이고, 더 화려하고, 더 큰 쾌락만이 행복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당신은 다르다. 당신은 심연을 다녀왔다. 인간의 밑바닥, 그 차갑고 축축한 바닥을 기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제3의 눈을 뜨게 되었다. 당신이 겪은 고통은 당신을 망가뜨린 것이 아니라, 당신의 영혼을 예민하게 세공하여 세상의 미세한 빛까지 포착해내는 프리즘으로 만들었다.
맹물 맛을 알아버린 미각

나르시시스트를 만나기 전, 당신의 인간관계를 되돌아보라. 아마도 당신은 사람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단순하게 구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을 ‘좋은 사람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가정했을 것이다. 그것은 순수함이 아니라, 무지(無知)였다.
마치 설탕과 사카린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미각처럼, 당신은 진짜 호의와 가짜 호의를 구별하지 못했다. 나르시시스트가 던져주는 과도한 애정 공세(Love Bombing)를 사랑이라 믿고 삼켰던 것은, 당신이 진짜 사랑의 담백한 맛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당신은 독을 맛보았다. 혀가 마비되고 내장이 뒤틀리는 그 치명적인 독성을 경험한 후, 당신의 미각은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
이제 당신은 구별할 수 있다. 70번 글에서 언급했던 ‘좋은 사람’들의 그 심심하고 밍밍한 맛이, 사실은 가장 건강하고 귀한 맛이라는 것을. 누군가가 당신에게 화려한 칭찬을 늘어놓을 때, 예전의 당신이라면 기뻐서 어쩔 줄 몰랐겠지만, 지금의 당신은 그 말 뒤에 숨겨진 끈적한 의도를 감지한다. 반면 투박하지만 약속 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누군가의 행동에서, 당신은 그 사람의 묵직한 진심을 읽어낸다.
당신은 이제 인공 감미료의 역한 단맛과, 잘 익은 과일의 은은한 단맛을 본능적으로 가려내는 미식가가 되었다. 이 능력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 오직 독을 먹고 살아남은 생존자에게만 주어지는 훈장과도 같은 능력이다. 당신의 인간관계가 좁아졌다고 슬퍼하지 마라. 그것은 좁아진 것이 아니라, 알곡과 가라지가 걸러져 정수(精髓)만 남게 된 것이다.
그림자를 인정하는 힘

칼 융은 인간의 내면에는 자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측면, 즉 ‘그림자(Shadow)’가 있다고 했다. 나르시시스트를 만나기 전, 당신은 아마 자신의 그림자를 외면했을 것이다. “나는 착한 사람이야”, “나는 남을 미워하지 않아”라는 도덕적 자기상에 갇혀, 당신 안의 공격성과 이기심을 억눌렀을 것이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와의 진흙탕 싸움을 겪으며, 당신은 당신 안의 괴물을 목격했다. 75번 글에서 다루었듯, 당신은 그를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했고, 저주를 퍼부었으며, 살기 위해 비굴해지기도 했다. 당신은 당신이 생각했던 것만큼 성녀가 아니었고, 꽤나 지독하고 무서운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깨달음은 당신을 좌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완성시킨다. 자신의 그림자를 모르는 사람은 위험하다. 그들은 자신의 악을 타인에게 투사하거나, 위선자가 되기 쉽다. 하지만 자신의 내면에 악마가 살고 있음을 인정한 사람은, 그 악마를 통제할 수 있다.
당신은 이제 인간이 얼마나 추악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당신 자신도 상황에 따라 얼마나 날카로워질 수 있는지 안다. 이 냉정한 자기 인식이 당신을 겸손하게 만들고, 동시에 타인의 위선에 속지 않게 만든다. “나는 절대 그럴 리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나도 그럴 수 있어. 그러니 조심해야지”라고 말하는 사람이 훨씬 더 안전하고 강하다. 당신은 비로소 반쪽짜리 천사가 아니라, 빛과 어둠을 모두 품은 온전한 인간이 되었다.
일상의 재발견, 기적은 소리 없이 온다

가장 큰 선물은 일상을 감각하는 태도의 변화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에게, 따뜻한 물이 나오는 샤워기나 빳빳하게 마른 이불은 그냥 사물이 아니다. 그것은 기적이다. 언제 폭격이 떨어질지 모르는 참호 속에 있다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저녁을 맞이했을 때의 그 안도감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당신에게 평범한 일상은 더 이상 지루함이 아니다. 누군가가 문을 쾅 닫지 않는 것. 저녁 식사 자리에서 비난받을까 봐 체하지 않아도 되는 것. 내 돈을 내 마음대로 쓰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주말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어도 벼락이 떨어지지 않는 것.
이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이, 당신에게는 눈물겹도록 감사한 축복으로 다가온다. 당신의 행복 역치(Threshold)는 낮아졌다. 남들은 100만 원짜리 명품을 사야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당신은 4천 원짜리 커피 한 잔에서 느낄 수 있다.
이것은 패배자의 합리화가 아니다. 이것은 삶의 해상도가 높아진 것이다. 당신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미세한 행복의 입자들을 볼 수 있는 현미경을 눈에 달았다. 나르시시스트는 당신의 거대한 행복을 앗아갔을지 모르지만, 그 덕분에 당신은 세상 모든 곳에 흩뿌려진 먼지 같은 행복들을 주워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갖게 되었다. 결국 당신의 삶은 더 풍요로워질 수밖에 없다.
상처 입은 치유자의 탄생

마지막으로, 당신의 고통은 타인과 연결되는 가장 깊은 통로가 된다. 상처 없는 사람의 위로는 공허하다. 그들은 “힘내”, “다 잘 될 거야” 같은 깃털처럼 가벼운 말을 던진다.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무게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은 안다. 절망이 얼마나 무거운지, 사람이 사람을 파괴한다는 말이 은유가 아니라 물리적 실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당신은 함부로 조언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곁에 있어 주거나, 눈빛 하나로 “나도 안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 깊이 있는 침묵은 고통받는 다른 이들에게 강력한 진동으로 전달된다. 당신은 굳이 상담 자격증을 따지 않아도, 이미 ‘상처 입은 치유자(Wounded Healer)’다. 당신의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저 지옥에서도 살아 나올 수 있구나”라는 살아있는 증거가 된다.
나르시시스트는 당신을 고립시키려 했지만, 당신은 오히려 그 경험을 통해 인류의 보편적인 고통과 깊게 연결되었다. 당신의 품은 넓어졌고, 당신의 귀는 예민해졌으며, 당신의 언어는 깊어졌다. 당신은 이제 얕은 물가에서 찰랑거리는 사람이 아니라, 깊은 바다의 수압을 견딜 수 있는 잠수부가 되었다.
그러니 그 어둠을 헛되다 말하지 마라
물론, 선택할 수 있었다면 이런 배움 따위는 얻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평생 맹물 맛을 모르고 사카린만 먹고 살았더라도, 상처받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일어난 일이다.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지만, 그 물이 바닥을 적시고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다시 비가 되어 내리는 순환을 지켜볼 수는 있다.
당신이 통과한 그 긴 터널은, 당신을 괴롭히기 위해 설계된 미로가 아니었다. 그것은 당신을 껍질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한 산통(産痛)이었다.
당신은 어둠을 알기에 빛을 숭배하지 않고, 빛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당신은 고통을 알기에 쾌락을 좇지 않고, 평온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었다. 당신은 악을 알기에 선을 맹신하지 않고, 선을 지키기 위해 검을 들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보라. 당신의 흉터 위에 내려앉은 햇살이 얼마나 찬란한지. 그 빛은 어둠을 모르는 자들에게는 결코 비치지 않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스포트라이트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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