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낮은 사람을 사랑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오만…
늦은 밤, 어두운 방안에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그가 한참 만에 입을 뗀다.
- “나 같은 놈 만나서 네가 고생이 많다. 난 왜 이렇게 자존감이 낮을까. 넌 나보다 훨씬 좋은 사람 만나야 하는데.”
그 처연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당신의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보호본능이 치고 올라온다. 저렇게 착하고 여린 사람이 세상의 풍파에 시달려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걸 두고 볼 수가 없다.
내가 가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 주면, 언젠가 저 잔뜩 웅크린 어깨가 펴지지 않을까. 나의 넘치는 애정이 저 메마른 마음에 윤기를 돌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당신은 스스로 가시밭길로 걸어 들어간다. 당신의 사랑이 그를 구원할 수 있을 거라는 지독히도 순진하고 위험한 믿음을 안고서.
깨진 독에 물 붓기라는 잔혹한 형벌
내현성 나르시시스트가 보여주는 낮은 자존감은 우리가 아는 건강한 사람의 겸손이나 수줍음과 결이 다르다. 보통 사람의 낮은 자존감은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숨어들게 만들지만, 이들의 낮은 자존감은 타인의 에너지를 공격적으로 빨아들이는 강력한 진공청소기다.
- “난 아무것도 못 해. 다 망칠 거야.”
이 말은 순수한 자기 비하가 아니다. “아니야, 넌 할 수 있어. 넌 내가 아는 가장 대단한 사람이야”라는 찬사를 즉각 바치라는 돌려 말하기다. 당신이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그를 치켜세워주면 잠시 만족한 듯 미소 짓는다.
하지만 그 효력은 채 하루를 가지 못한다. 다음 날이면 또다시 똑같은 얼굴로 당신의 에너지를 요구한다.
밑 빠진 독도 아니다. 아예 바닥이 없는 거대한 싱크홀에 가깝다. 당신의 사랑과 관심, 칭찬을 아무리 들이부어도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사라져 흔적조차 없다.
채워지지 않는 그 공허함을 당신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할 때 진짜 비극은 시작된다.
- “네가 사랑을 충분히 안 줘서 내가 여전히 이 모양인 거야. 네가 날 더 이해해 줬어야지.”
사랑이 아니라 인공호흡
어느새 당신은 연인이 아니라 24시간 대기 중인 5분 대기조 구급대원이 되어 있다. 그의 기분이 조금만 가라앉아 보여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내가 뭘 잘못했나. 오늘 아침에 사랑한다는 말을 덜 해줬나. 온 신경이 그의 감정 기복에 곤두선다.
당신의 하루는 온전히 그의 위태로운 자존감을 떠받치는 데 소모된다. 정작 당신이 직장에서 힘든 일이 생겨 위로받고 싶을 때 그는 곁에 없다. 자기 연민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느라 당신의 고통을 돌아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 “나 지금 내가 너무 힘든데, 너까지 왜 그래? 꼭 나 힘들 때만 골라서 그러더라.”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건 사랑을 나누는 관계가 아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인공호흡을 해주는 일방적인 감정 노동이다.
당신의 숨을 불어넣어 그를 간신히 살려놓는 동안, 정작 당신의 뇌는 산소가 부족해 서서히 죽어간다. 당신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생기가 빠져나가는 걸, 그 사람만 모르고 있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한다.
구원자 콤플렉스라는 오만
인정해야 한다. 당신의 사랑으로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은, 어쩌면 당신의 지독한 오만이었다는 것을. 누군가의 뿌리 깊은 성격적 결함을 사랑이라는 이름의 반창고 하나로 고칠 수 있다고 믿었던 거다.
그들은 변하지 않는다. 애초에 변할 생각이 없다. 낮은 자존감이라는 가면을 쓰고 동정심을 유발해 타인을 조종하는 것이 그들이 평생 익혀온 생존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 전략이 당신에게 너무나 잘 먹혀들고 있는데 굳이 바꿀 이유가 없다.
이제 그 무거운 인공호흡기를 내려놓을 시간이다. 당신의 넘치는 사랑은 그 귀한 마음을 알아주고 돌려줄 줄 아는 건강한 사람에게 주어야 마땅하다.
밑 빠진 독을 끌어안고 같이 말라죽어가는 성녀가 되려 하지 마라. 그 사람의 불행은 온전히 그 사람의 몫으로 남겨두고,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러 가야 한다.
뒤돌아볼 필요 없다. 당신이 떠나도 그는 금세 에너지를 빨아먹을 다른 숙주를 찾아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표정을 지을 테니까.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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