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모에게 받은 상처’ 는 유독 우리 안에 깊이 남을까?

어린 시절 우리의 마음은 스펀지처럼 부모의 말과 행동을 그대로 흡수한다. 부모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이자, 가장 먼저 신뢰하고 의지하게 되는 인물이다.

그래서 부모로부터 긍정적인 말과 따뜻한 태도를 받으면, 우리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안정감을 키우며 자란다. 반면 부모에게서 받은 비난이나 무관심, 혹은 차가운 태도는 가슴 깊이 상처로 남아, 성인이 되어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적 관점에서 부모는 단순히 양육자가 아니라, 우리의 가장 초기에 형성되는 ‘기본적 대인관계’를 대표한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인생의 토대를 이루는 시기다.

이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사랑받고 인정받았는가가, 훗날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과 대인관계 패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부모의 태도나 말투, 행동은 곧 우리의 무의식에 자리 잡아 ‘나는 소중한 존재인가?’, ‘사람들은 나를 인정해줄까?’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이 된다.

하지만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것을 명확하게 ‘내가 상처를 입었다’고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론 “우리 부모님은 나를 무척 사랑하셨으니, 이런 감정은 내 착각일 거야”라고 생각하거나, “부모님도 힘들었으니 그럴 수 있지”라고 이해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물론 부모님을 이해하려는 태도 자체는 귀한 마음이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의 고통도 제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부모가 준 상처를 무조건적으로 덮어버리거나 왜곡해버리면, 어른이 되어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때 더 깊은 무력감과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부모가 자녀에게 언어적인 비난을 자주 했다면, 그 비난의 내용이 단순한 꾸지람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너는 참 부족하다”라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하지 않았다 해도, “왜 이렇게 못해?”라는 말이 계속 누적되면 아이 입장에서는 ‘나는 무가치한 존재’라는 느낌으로 각인될 수 있다.

이때 형성된 낮은 자존감은 성인이 되어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도록 만들거나, 연애나 결혼 생활에서 상대방의 비판에 과도하게 반응하게 만든다.

또 다른 예시로, 부모가 자녀에게 “너 때문에 내가 고생이 많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면, 자녀는 무의식적으로 ‘나는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새로운 인간관계에서 거절받는 것을 크게 두려워하거나, 무언가를 부탁하는 일 자체를 힘겹게 느끼게 된다.

누군가를 만나 대화를 할 때조차 늘 예민해지고,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면 어쩌나 하는 공포감이 뒤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는 잠재된 감정 패턴으로 굳어져, 성인기에도 반복적으로 발현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거나, 자기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처는 왜 계속 반복되는 형태로 나타날까? 그 이유는 우리의 무의식이 과거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않은 채로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마치 상처 입은 부위가 아물지 않아 만성통증을 유발하는 것과 유사한 원리다.

어른이 된 지금도 우리 마음속 ‘내면아이(Inner Child)’는 여전히 부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거나, 과거의 비난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상태일 수 있다.

본 칼럼은 부모에게 받은 상처가 어떻게 우리의 현재 감정과 행동 패턴에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심리적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글이 길고 세부적이지만, 천천히 하나하나 따라가며 읽다 보면 자신의 감정을 조금 더 명확히 이해하고, 회복을 위한 동력을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부모에게 받은 상처’ 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굴레

1) 부정적 자아상과 낮은 자기효능감

부모가 자녀의 잘못이나 실수를 질책만 하거나, 자녀의 노력을 당연시하면서 칭찬이나 인정은 제대로 해주지 않는 경우, 자녀는 “나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라는 믿음을 갖게 되기 쉽다.

잘하는 게 있어도 그것을 충분히 자랑스럽게 느끼지 못하고,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여기며 기쁨을 누리는 데 서툴러진다. 그래서 주변에서 “참 잘했네”라고 칭찬해도 무의식적으로 의심하는 경향이 생긴다.

“내가 그 정도로 잘했나? 혹시 날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닐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더 나아가, 어떤 과업을 앞두고 있어도 ‘내가 이걸 해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크게 작용한다.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라고 부른다. 이는 스스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믿음과 관련된 개념이다. 자기효능감이 높으면 비록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도 도전해보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반면에 낮다면 시도하기도 전에 실패를 걱정하며, 도전 자체를 포기하거나 결과가 나빠질 거라고 확신해버린다.

즉, 부모가 자녀에게 지속적으로 ‘너는 무능해’, ‘넌 왜 그것도 못 해?’라고 메시지를 전달해왔다면, 그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무의식적으로 ‘나에게는 불가능해’라는 선입견을 갖고 살아가게 된다.

2) 타인 의존과 인정 갈망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건강하게 형성되지 못하면, 자녀는 스스로 자신을 돌보는 감각을 충분히 익히지 못한다.

그 결과, 어른이 된 뒤에도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아야 비로소 자신이 괜찮은 사람처럼 느껴지게 되기도 한다. 누군가로부터 칭찬이나 긍정적 피드백을 계속 찾아다니고, 비판이라도 받으면 과도한 불안을 느낀다.

또한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느낌이 강할 경우, 그 사랑의 결핍을 타인에게서 채우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기도 한다.

그래서 연애 상대에게 과도하게 매달리거나, 친구 관계에서도 상대가 자신의 연락을 조금만 늦게 받아도 ‘버림받았다’고 극단적으로 해석한다.

이는 어린 시절 부모의 사랑이 ‘불안정하거나’ ‘조건부’로 주어졌다는 메시지를 받았기 때문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성적이 좋을 때만 칭찬해주거나, 특정 행동을 했을 때만 “우리 아이 최고야”라고 말하는 식으로 자녀를 대했다면, 그 아이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누려본 적이 없는 상태다.

결국 어른이 되어서도 사랑이 늘 조건부라고 여기고, 늘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며 자신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확인하려 든다.

3) 관계 맺기에서의 불안과 회피

부모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 중에는 오히려 인간관계를 극도로 피하려는 형태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부모에게 매번 비판받고 상처받은 기억이 강렬하면,

“다른 사람들도 언젠간 나를 다치게 할 거야”라는 인식을 갖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이들은 애써 누군가와 친해지려 하기보다, ‘거리를 두고 지내면 상처받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된다.

이러한 패턴은 친구를 사귀거나 연인을 만날 때도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가 다정하게 다가와도,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못한다. 오히려 “어차피 떠날 사람인데, 깊이 얽히면 감정만 다칠 텐데”라는 식으로 선을 그어버린다.

그 결과 겉으로 볼 때는 매우 독립적이고 냉정해 보이지만, 내면은 “진정으로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라는 고립감과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게 된다.

4) 반복되는 ‘부모 닮은 사람’을 만나는 역동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부모에게 받은 상처 가 큰 사람일수록 어른이 되었을 때 연인 관계나 배우자 선택에서, 무의식적으로 ‘부모와 유사한 성격’을 가진 이에게 끌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반복 강박’ 혹은 ‘무의식적 재연’이라 부른다. 어린 시절 익숙해진 관계 패턴이, 비록 고통스러웠다 해도 무의식 안에서는 그것이 ‘익숙함’으로 자리 잡는다.

익숙함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에, 성인이 되어 비슷한 상황을 재현하려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적과 비난을 자주 받았던 사람이 성장하여 연인을 만날 때도 자신을 자꾸 몰아세우는 상대에게 끌릴 수 있다.

처음에는 “낯설게만 보이는데, 왠지 그 사람에게 끌린다”는 느낌을 받았다가, 막상 관계가 시작되면 부모에게 느끼던 감정이 고스란히 재현되는 식이다.

한편으론 고통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내게 당연한 모습’이라는 낯선 안정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쉽게 관계를 끊지 못하고, 또다시 상처를 되풀이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