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삶을 송두리째 갈아엎고 싶은 충동. 저는 그것을 압니다. 그와의 흔적이 덕지덕지 묻은 이 방, 이 도시, 이 직장을 당장이라도 벗어던지고 싶겠죠.
지긋지긋한 기억에서 탈출할 수만 있다면,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낯선 곳으로 떠나고, 혹은 머리를 짧게 잘라버리는 것처럼, 무언가 ‘다른’ 내가 되고 싶을 겁니다.
이 모든 것을 끝냈다는 극적인 서명처럼, 당신은 당신의 삶에 거대한 변화를 주고 싶어 합니다.
이 충동, 지극히 당연합니다. 이것은 당신의 영혼이 보내는 절박한 구조 신호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은, 지진이 갓 끝난 뒤 자욱한 안개가 내려앉은 폐허의 한가운데입니다.
이런 곳에서 서둘러 집을 지으려 한다면, 그 집은 반드시 다시 무너집니다. 지금은, 당신 인생의 그 어떤 중대한 결정도 내려서는 안 되는 시기입니다.
당신의 나침반은 지금 고장 나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내려야 할 유일한 결정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겠다’는 결정뿐입니다. 왜냐하면, 그와의 관계는 당신의 삶뿐만 아니라, 당신의 내면을 지탱하던 모든 기준점을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뇌는 지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그가 주던 극단적인 롤러코스터, 즉 ‘트라우마 본딩’에서 막 강제로 하차한 상태입니다. 당신의 뇌는 여전히 그 지독했던 자극(고통과 환희의 반복)을 갈망하며 금단 현상을 겪고 있습니다.
이 상태에서 당신이 ‘끌린다’고 느끼는 것들은, 당신에게 정말 좋아서가 아니라, 과거의 그 자극과 비슷하게 ‘위험하고 강렬해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당신의 나침반은 지금, 안전한 북쪽이 아니라 익숙한 남쪽의 절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큰 결정, 예컨대 이직이나 이사를 한다고 생각해봅시다. 어떤 직장이 당신에게 맞을까요? 어떤 동네가 당신을 행복하게 할까요?
대답하기 어렵다면, 그게 당연합니다. 당신은 그와의 관계 속에서 당신의 취향, 당신의 가치관, 당신의 욕구를 모두 지워야만 했습니다. 그가 좋아하는 것을 당신도 좋아해야 했고, 그의 기준이 당신의 기준이 되어야 했죠.
그 결과, 당신은 지금 당신이 어떤 커피를 좋아했는지, 어떤 음악을 들을 때 마음이 편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일종의 ‘정체성 실향민’ 상태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내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 자신에 대한 데이터를 다시 수집해야 하는, 아주 기초적인 단계에 서 있습니다.
공허함은 나쁜 조언자입니다

이별 후의 공허는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우리는 무엇으로든 그 구멍을 급하게 메우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 나타나는 ‘빠른 해결책’들은 언제나 매혹적이죠.
가령, 당신의 상처를 금방 알아봐 주고 위로를 건네는 새로운 남자. 혹은 당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극적인 모험.
하지만 이것들은 당신의 공허를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구멍을 잠시 다른 것으로 덮어두는 것에 불과합니다. 당신은 아직 덜 아물었기 때문에, 또 다른 나르시시스트나 위험한 상황에 끌릴 확률이 통계적으로 매우 높습니다. 당신의 공허함이 내리는 결정은, 언제나 최악의 결정이 될 것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결정’이 아니라 ‘유예’입니다

그러니 제발, 스스로에게 시간을 주세요. 지금의 무기력과 혼란을 ‘실패’라고 부르지 마세요. 이것은 당신의 내면이 파괴된 구성 요소들을 재정비하고, 토양을 정화하며, 다시 집을 지을 땅을 고르는, 지극히 능동적이고 필수적인 유예 기간입니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그저 오늘의 끼니를 챙기고, 잠을 자고, 볕을 쬐세요.
안개가 걷히고, 땅이 단단해지고, 당신의 나침반이 다시 북쪽을 가리키기 시작할 때. 그때가 비로소 당신의 새로운 삶을 위한 첫 삽을 뜰 시간입니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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